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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원 세금 들어가는 정책을 6개월 만에 평가하다니…

Opinion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16.09.03 03:05 수정 2016.09.03 03:09

정부에서 쏟아내는 수천 개의 정책 효과 제대로 알고나 있나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조직은 무엇일까? 아마 정부가 아닐까 싶다. 아무도 세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은 수천 개에 이를 것으로 생각한다.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중앙정부의 사업 수만 헤아려도 200개가 넘는다고 하니,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수행하는 모든 분야의 크고 작은 정책을 모두 합치면 정말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정책이 하나하나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어려워 보이지만,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떤 정책에는 수조원의 세금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그만큼의 돈을 들여 그 정책이 의도했던 목적을 잘 달성하고 있는지 모든 납세자가 궁금해할 사항이다. 그리고 평가를 제대로 해야 현행 정책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고, 또 새로운 정책을 입안할 때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에 대한 평가가 과학적으로 이루어지고 새로운 정책이 실증적 근거를 바탕으로 입안되는지가 선진국의 시금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사리사욕이나 정략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거나 대충 감으로 국가를 졸속 운영하다가 대망한 국가들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았는가?

이렇게 중요한 정책 평가를 누가 하고 있는가? 우선 정책을 실제로 담당하는 부처에서 성과지표를 선정하고 자체 평가를 수행한다. 그러나 행정 부처에서 직접 하는 평가는 기초적인 통계나 추세 정도를 나열하는 식이어서 분석적인 평가는 아니다. 또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 부처에서 하는 평가는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고 대통령 임기에 따른 제약이 있어 근시안적이다. 이러한 한계는 행정 부처의 성격상 거의 필연적인 것으로, 쉽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도 딱히 없어 보인다.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국가 정책을 수립하는 중앙행정기관이 밀집한 정부세종청사의 모습./조선일보 DB
정책 평가를 수행하는 또 하나의 그룹은 정부 출연 연구소의 박사, 대학의 교수, 연구원 등 외부 전문가 그룹인데 이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정도는 다르지만 행정 부처에 비하면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어서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결국 얼마나 정확하고 엄밀한 정책 평가가 이루어질 것인가는 이들의 능력과 노력에 달려 있다. 얼마나 능력이 있는 연구자가 정책 평가를 할 것인지, 이들이 맡은 정책 평가에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는 정책 연구자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하는지에 달려 있다.

능력이 있는 연구자를 정책 평가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회사에서 경영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것과 같다. 높은 보상을 해줄수록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고 능력 있는 연구자가 정책 평가를 하게 될 것이다. 보상이 낮으면 싸구려 컨설턴트만 지원하고 정부도 이를 알고 평가에 대한 가치를 낮게 보는 악순환이 시작되니, 결국 싸구려 정책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 출연 연구소의 연구원은 정책 평가가 본연의 업무이니 보상이 따로 필요 없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이들 역시 동기 부여가 없다면 상투적인 평가만 하게 될 것이다. 정책 평가 보고서는 양보다는 질로 평가받아야 한다. 연구자가 하나의 정책을 파고들어 심도 깊은 정책 평가를 하도록 보상 체계가 변해야 할 것이다.

또 양질의 정책 평가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연구 기간을 충분히 줄 필요가 있다. 2006~2007년 자료를 보면 정책 평가에 주어진 연구 기간이 6개월 이하인 경우가 60%였다. 좀 오래된 통계이긴 하지만 지금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 6개월의 연구 기간은 하나의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정책의 학문이라고 하는 경제학 분야를 예로 생각해 보면, 논문 한 편을 쓰기 위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논문을 작성하고 세미나에서 발표하면서 코멘트를 받아 논문을 수정하는 과정이 짧게 잡아도 2년은 족히 될 것 같다.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행정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현실감 없는 학자의 생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으로 정책을 왜 그렇게 빨리 집행하려고 하는지, 그런 조급증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

이른바 '덕후'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가 보통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한 가지 분야에 인생을 바칠 정도로 몰두하여 범인(凡人)들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수준의 지식을 자랑한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이런 덕후, 정책 전문가가 나와야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일반적인 덕후는 자기가 좋아서 그렇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쉽지만 정책 전문가는 그렇게 자생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정책 전문가를 육성하고 지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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