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억만장자 예술품 컬렉터인 로렌스 그라프는 경매 도중 '노(no)'를 외쳤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꽃장식 모자를 쓴 여인'의 가격이 4000만달러까지 오르자 경매를 포기한 것이다. 당시 경매를 진행하던 유시 필카넨 크리스티 최고경영자와 그라프의 눈이 마주쳤다. 그라프는 손을 들어 포기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필카넨 최고경영자는 "확실하냐"고 다시 물었고, 잠시 망설이던 그라프는 '4200만달러'를 불렀다. 그라프는 결국 5000만달러에 그 작품을 샀다. 참가자의 심리를 절묘하게 자극하는 경매사(auctioneer)의 한마디가 경매 결과를 크게 바꿔놓은 셈이다.
경매사는 경매의 꽃이다. 경매사는 경매 현장 진행만 하는 게 아니다. 작품 평가를 하는 큐레이터의 능력, 판매를 담당하는 영업 능력을 합해 스페셜리스트의 능력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노련한 진행 능력이 더 붙는다. 정해진 각본이 없는 경매장에서 노련한 경매사는 손짓과 음성, 단호한 눈빛, 미묘한 심리전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경매를 진두지휘한다.
성공적인 경매는 미술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 피카소로 대변되는 입체파 미술, 마티스로 대변되는 야수파 미술이 대중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도 191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매가 계기가 됐다. 컬렉터 13명이 모인 '곰가죽'이라는 모임은 10년 동안 2만7500프랑을 투자해 총 145개 작품을 사들였는데, 이 작품들을 4배 가까운 가격에 팔았다. 구입 때 1000프랑짜리였던 피카소의 '곡예사 가족'은 1만1500프랑에 팔렸다. 당시 경매를 진행했던 알폰소 벨리에라는 경매사는 중간 중간 농담을 던지는 여유 있는 진행으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며 경매 성공을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전문 경매사 숫자는 20여 명 안팎이다. 경매 회사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는데, 초봉은 중소기업 신입사원 연봉 정도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티·소더비 등 해외 경매 회사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배혜경 크리스티 한국사무소 대표는 "인맥을 쌓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접할 수 있는 매력 때문에 늘 지원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직접 작품을 가져오고 경매를 기획하는 스타 경매사의 경우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차가 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