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된 조선 3사의 인력 감축안만 2020년까지 최대 8만명. 여기에 해운·철강까지 포함하면 10만명은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인력 구조조정은 떠나는 사람뿐 아니라 남는 사람에게도 큰 고통이다. 회사도 득(得)이 될지 실(失)이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데이브 얼리치(Ulrich·63)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인사관리 분야의 대가(大家)'로 불린다. 2001년 미국 경제지 비즈니스위크의 '세계 최고 경영사상가' 순위에서도 1위에 뽑혔다. 경영학계의 오스카 상인 '싱커스 50'에도 2007~2015년 연속 순위에 포함됐다. 얼리치 교수는 4년 전 위클리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위기라고 감원하지 말라"며 "불황일수록 더 많은 인재를 뽑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위기일수록 증원하라'는 말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에게 구조조정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물었다.
①감원이 최선인가 고민하라
―위기일수록 감원하지 말고 증원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기업이 감원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 방법을 찾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 경영을 하다 보면 때때로 감원을 해야 할 순간이 옵니다. 기업은 물건을 팔아야 이익이 남는데, 더 이상 팔 수가 없다면 감원을 통해 인건비를 줄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감원이 최선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감원을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글로벌 보험사 '악사 에쿼터블'의 마크 피어슨 최고경영자(CEO)는 2011년 매출 하락으로 경영 위기가 오자 인력 감축 대신 워크아웃(work out·재무구조 개선작업) 조치를 통한 조직 재정비를 시도했습니다. 모든 직급의 직원들이 불필요한 업무와 비용이 무엇인지 찾고 그것을 제거한 다음 수익성 높은 상품 개발에만 매달리도록 한 것입니다. 직원들은 회사가 위기라는 상황을 공감했기 때문에 비용 절감 아이디어만 3개월 만에 수백 가지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중 상당수가 실행에 옮겨졌습니다. 결국 악사는 감원 없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②로드맵을 세부적으로 정해놓고 진행하라
―최후의 수단으로 감원을 해야 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로드맵을 세부적으로 정해놓고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합니다. 회사는 이 과정에서 '왜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직원들에게 내놓아야 하고, 그다음으로는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변화 전략을 어떻게 수행할지를 체계적으로 결정해야 하고, 마지막으로는 각각의 업무는 누구의 책임이 될지 정확하게 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구조조정은 잡음만 많이 나올 뿐 성공할 수 없습니다. 2010년 힐튼 그룹이 본사 직원의 상당수를 교체한 구조조정은 잡음 없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힐튼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사를 이전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는 등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힐튼의 원칙은 단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탁월한 글로벌 서비스 기업이 되겠다.' 뻔할 수도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채용 환경, 직원 이동, 역량 개발과 평가, 퇴직 직원의 재고용과 보상, 인정 등의 분야에 세부적인 원칙을 만들어 놓고 진행했습니다. 힐튼은 인력 구조조정 직전인 2009년부터 직후인 2011년까지 연 30%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③불황일수록 남은 직원들에게 잘해줘라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기업마다 명예퇴직 형태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평가는 나뉩니다.
"떠나는 사람을 잘 보내는 것도 좋지만, 남아 있는 사람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경기 침체기에 많은 기업이 인력관리를 소홀하게 합니다. 여기 저기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그저 직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안 좋은 기억은 경기 침체 기간 이후에도 오래 남습니다. 불황에 의기소침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좋은 성과를 내긴 어렵습니다. 그 시기에 회사로부터 홀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은 호황기에는 너도나도 이탈을 할 것입니다. 불황일수록 회사는 남아 있는 직원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불황에는 최고인사책임자(CHRO)가 CEO를 맡는 것이 좋습니다."
④최고인사책임자(CHRO)를 CEO로
―실제로 CHRO 출신의 CEO가 많나요.
"보통 위기일수록 조직의 수장은 재무나 마케팅 출신이 많아요. 하지만 조직의 수장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로 유능함을 증명하려고 하기 때문에 재무 분야 출신이 CEO가 되면 인력관리는 소홀할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CEO가 해야 할 일과 가장 많이 겹치는 자리가 CHRO입니다. 이건 제가 지난 10년간 CE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운영책임자(COO),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 CHRO,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등 6가지 직위에 해당하는 수천 명의 최고경영진을 대상으로 다면평가를 하고 이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입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 CHRO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과거엔 CHRO가 CEO 대신 COO나 CFO에게 보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어요. 취리히보험그룹, 네슬레, 필립모리스, 도이치은행 등 일부 기업은 최고경영진이 될 유망주들을 인사팀의 고위급 업무에 순환 보직으로 투입합니다. 미국 자동차 기업 제너럴모터스(GM)를 살린 메리 바라 CEO가 대표적으로, 그는 인사 담당 부사장으로 18개월을 근무했지요."
⑤CHRO는 사내·외 비즈니스 탄탄하게
―하지만 CHRO는 정작 돈 버는 법을 모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제가 바라는 방향은 인력관리(HR) 담당자도 사업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는 직원들을 재배치할 때도 필요합니다. 의료 유통 전문기업 '매케슨'의 HR 담당 부사장 트레이시 채스테인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 부서를 철수하면서 소속된 정보통신 직원 200명을 내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유능한 직원을 잃어버린다는 것, 회사의 고용 브랜드에 나쁜 영향이 미친다는 것, 조직의 사기에 타격을 준다는 것 등을 고려해 이를 막고 싶었습니다. 대규모 해고에 들어가는 수백만 달러의 비용도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채스테인은 회사 내 다른 부서의 장들과 긴밀하게 협조해 필요한 자리를 만든 후 직원을 재배치했습니다. 직원을 해고하는 비용보다 재배치하는 비용이 적게 들었기 때문에 회사는 돈을 절약할 수 있었고, 사업 혼란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만약 회사 내 다른 부서의 일들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그 부서의 리더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면, 쉽지 않았을 겁니다. 만약 이런 관계를 사외 비즈니스 리더들과도 맺을 수 있다면 해고를 하더라도 그 직원들의 재고용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