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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년 내내 찾아 다녔다, 새로운 경쟁자… 남들이 못 보는 흐름 읽으니 세계 1등

People 홍콩=온혜선 조선비즈 기자
입력 2016.06.18 03:05 수정 2016.06.18 04:05

[Cover Story] 두 번의 경매로 4110억원 매출 올린 크리스티 최고경영자 유시 필카넨

"1억6000만달러, 팔렸습니다."

작년 5월 11일(현지 시각) 뉴욕 록펠러 플라자의 크리스티 경매장. 경매사(경매 진행자)가 '땅' 하고 망치를 내려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 입체파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은 1억7936만달러(경매 수수료 포함)에 판매됐다. 경매 역사 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이다.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
노련한 진행 솜씨로 새로운 기록을 세운 경매사는 유시 필카넨(Pylkkanen·53) 크리스티 최고경영자다. 그는 경영자이기 이전에 크리스티에서 30년을 일한 베테랑 경매사다. 작년 11월에는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를 1억7040만달러에 팔아 경매 사상 가장 비싼 그림 1·2위를 판 주인공이 됐다. 두 작품 가치는 3억4976만달러(약 4110억원)로 웬만한 중견기업 연매출과 맞먹는다.

지난달 31일 홍콩 크리스티 30주년 특별 경매를 위해 홍콩을 찾은 그를 만났다. 2014년 최고경영자에 오른 그는 핀란드 출신인데도 아주 유창하게 영국식 영어를 썼다. 필카넨 최고경영자는 아라비아어와 영어로 쓴 명함을 건네면서 "다양한 나라에서 온 고객을 상대하다 보니 명함도 여러 종류가 있다"며 웃었다.

세계 최고 경매 업체 크리스티는 올해로 창립 250주년이다. 세계 경매 업계는 크리스티와 소더비라는 두 대형 경매 업체를 중심으로 수세기를 지내왔지만 최근에는 크리스티의 약진이 돋보인다. 작년 크리스티의 매출은 74억달러로 소더비(67억달러)를 10% 이상 앞섰다. 250년 동안 기업이 살아남은 것도 놀라운데 계속 세계적 명성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필카넨 최고경영자는 "새로운 경쟁자를 찾았더니 시장도 커지고 혁신도 따라왔다"고 말했다.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흐름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을 이어갔다. 필카넨 최고경영자는 직원 시절 크리스토퍼 대비지 전(前) 크리스티 회장에게서 '1년에 적어도 4번은 직접 경매를 진행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경매사의 존재를 알려야 다양한 고객을 만날 기회가 생기고, 사무실에서는 절대로 감지할 수 없는 변화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필카넨 최고경영자는 "가장 유망한 시장을 먼저 찾아 흐름을 타는 것이 크리스티의 성장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20년 먼저 설립된 소더비 넘어서다

―25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세계적 경매 회사로 명성을 유지했습니다.

"크리스티가 처음 설립됐을 때 경매 시장에는 소더비라는 선두 주자가 있었습니다. 20여 년 먼저 탄생한 소더비는 유럽 귀족들의 고서나 골동품을 팔면서 사세를 확장했습니다. 소더비를 주(主) 경쟁자로 생각하고 전략을 세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티는 처음부터 미술품 경매 시장에 전략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 정부는 귀족 계급에게서 압수한 미술품 대부분을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팔았고, 크리스티는 이름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티는 와인 경매도 최초로 실시했습니다. 경쟁자를 경매 업체가 아닌 와인 거래상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다각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경쟁자를 다시 설정해 새로운 시장을 찾아내는 크리스티의 전략은 시간을 초월해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크리스티의 경쟁자는 누구인가요.

크리스티 최고경영자 유시 필카넨
"지금은 온라인 상거래 업체와도 경쟁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가 최근 가장 신경 쓰는 분야는 디지털 경매입니다. 디지털 경매는 여러 국가의 다양한 고객에게 다채로운 물품을 파는 데 매우 효율적인 플랫폼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스마트폰과 PC 등 디지털 경매를 통해 물품을 구매한 고객은 전년 대비 10% 늘었고, 매출 역시 11% 증가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 크리스티에서 첫 거래를 시작한 새 고객 가운데 20%가 디지털 경매를 통해 유입됐다는 점입니다. 특히 아시아의 성장세가 가파릅니다. 지난해 아시아의 디지털 경매 고객 숫자는 12% 늘었고, 매출은 34%나 뛰었습니다. 최근에는 모바일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크리스티 홈페이지(christies.com) 방문객의 83%가 첫 방문자였는데, 이 가운데 모바일을 통해 접속한 방문객이 전년 대비 27%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크리스티의 경쟁력은 유명한 컬렉터들이 고가의 작품을 매매할 때 드러나는 게 아닌가요.

"경매 회사의 명성은 얼마나 비싼 작품을 많이 팔았느냐로 결정납니다. 지난해 크리스티는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과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 그림을 경매로 팔았습니다. 두 그림은 나란히 경매 사상 가장 비싼 그림 1·2위 자리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세계 미술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얘기죠."

메릴린 먼로 소장품 예상가보다 200배 높게 팔아

―주목받지 않았던 작품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크리스티는 작품 가치를 찾아내고 검증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내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감정 기구를 운영하고 있지만, 필요하면 외부에 맡겨서라도 작품의 진위와 예술적 가치를 가려냅니다. 유통 과정도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그리고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나온 작품의 진위는 크리스티가 100% 보장합니다.

경매에 나오는 작품들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피카소 작품 중에서도 '한 번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이라고 설명하면서 경매에 부치는 식이죠. 작품과 연관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작품 가치는 올라갑니다. 1980년대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포함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었던 것도, 메릴린 먼로의 소장품을 예상 가격보다 100~200배 높게 판 것도 이런 전략 덕분입니다. 경매는 단순히 물품을 파는 사업이 아닙니다. 물건에 담긴 가치와 희소성을 파는 비즈니스죠. 그래서 무엇을 파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파느냐도 중요합니다."

유시 필카넨 크리스티 최고경영자는 1986년 크리스티에 입사했다. 입사 초기에는 16~18세기 대가의 작품을 다루는 부서의 스페셜리스트(경매 회사에서 작품 평가와 판매를 담당하는 전문가)로 활동하다가, 1990년에는 근대 미술 부서로 옮겨 스페셜리스트로 명성을 날렸다. 2005년 크리스티 유럽 지역 사장을 맡은 후에는 중동과 인도 등 신규 시장을 개척했다.

―한 기업에서 30년 동안 일했습니다. 서구 기업인으로선 드문 일 아닌가요.

"크리스티에서 처음 제안이 왔을 때 거절했는데, 아버지가 설득해서 입사하게 됐습니다. 입사 후에는 굳이 다른 기업을 찾을 필요성을 못 느꼈습니다. 직원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볼 수 있도록 놔두는 회사는 흔하지 않거든요(웃음). 게다가 업계 최고 기업 아닙니까. 크리스티에는 수십 년 동안 일한 직원이 적지 않습니다. 경매 비즈니스는 첨단 기술이나 대규모 투자와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대신 좋은 인재가 성패를 결정합니다. 경매 회사에는 'VIP 고객'을 많이 확보한 스페셜리스트가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최고 고객을 끌어들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고객에게 정확한 정보와 믿을 수 있는 조언을 주는 것입니다. 1000만달러에 산 그림을 갖고 있는 고객이 아무에게나 판매를 의뢰할 수는 없죠. 대개 오랫동안 알고 지내고 능력에 대해 확신이 있는 전문가들에게 판매를 부탁합니다. 전문가가 많은 기업이 경매 시장에서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다수 스페셜리스트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갖고 이 길을 택한 사람입니다. 돈은 그다음 문제죠.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해주는 게 정말로 중요합니다.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기업과 경영자의 역할입니다."

―경매 분야가 특수한 점이 많습니다. 채용하는 인재나 기업 문화가 다른 기업과 차이가 있습니까.

"경매 비즈니스에서 필요한 인재의 자질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일단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적절한 가격에 팔 수 있는 비즈니스 감각도 필요합니다. 고객과 네트워크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필요한 인재도 '찾는다'는 말보다 '길러낸다'는 말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물론 밖에서 뛰어난 인재를 데려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조직 내부에서 인재를 키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핵심 보직에 있는 직원들의 이동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인재가 성장할 수 있도록 조직이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내부 시스템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크리스티는 스페셜리스트를 길러내기 위해 자체적으로 미국과 영국 대학이 인정하는 대학원 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 역할은 직원들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여기에 방해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아시아 출신 크리스티 최고경영자도 나올 것

―경매란 업종을 떠나 기업으로서 크리스티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유시 필카넨. /크리스티 제공
"다양성과 개방성, 그리고 팀워크입니다. 크리스티에 있는 전문가들은 보통 서너 가지 언어를 의사소통에 문제 없이 구사하고, 출신 지역도 매우 다양합니다. 이들은 어떤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지역에서 경매를 열어야 가장 잘 팔릴지 가감 없이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현장 직원의 목소리를 경영에 빠르게 반영합니다. 일찌감치 미술 시장 흐름의 변화를 읽고 현대 미술에 집중했던 것도 이 덕분입니다. 와인이나 비싼 명품 시계, 가방, 스타의 애장품까지 경매에 부친 것도 고객들 욕구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공개 경매 시장에 나오지 않는 희귀 작품을 사고 싶은 고객들의 요구를 반영해 개별 판매 시스템도 도입했습니다. 오는 10월에는 중국 베이징에 새로운 경매장도 개설할 예정입니다. 제가 크리스티에 입사했을 때 제 상사는 제가 크리스티에서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국 출신도 아닌 데다 이름도 이상해 절대 주류가 될 수 없다고 했죠. 그런데 제가 최고경영자가 됐습니다. 크리스티가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증거가 바로 저입니다. 두고 보세요. 최근 아시아 시장의 성장세가 무섭습니다. 아시아 출신의 크리스티 최고경영자를 볼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미술품 시장 전망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은 미술품 투자 붐이 불면 호황의 끝물이라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일반적 경제 논리로 경매 시장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특히 크리스티가 다루는 고가 미술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수요와 공급이 아니라 희소성입니다. 피카소나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살 기회는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합니다. 그래서 천문학적 가격이 매겨지는 것입니다. 저는 미술품 시장이나 경기의 큰 흐름을 보려면 구매자보다는 판매자를 보라고 말합니다. 어차피 미술품을 사는 사람들은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여유 자금이 충분하니까요.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작품이 경매에 나오느냐입니다. 주식 투자를 예로 들어 볼까요. 주가가 떨어지면 투자자들은 오히려 팔기를 주저합니다. 지금 파는 것은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작가의 유명 작품이 이번 시즌 경매에 나오지 않는다면 경기가 더 좋아질 것으로 보는 고객이 많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해 판매자가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다고 판단할 때 좋은 물건이 나옵니다. 경기가 궁금하면 경매 시즌에 어떤 작품이 나왔는지 살펴보세요."

젊은 부자들이 새로운 고객으로

―크리스티의 매출은 2014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작년에는 전년 대비 감소했습니다. 미술품 시장 경기가 꺾인 것인가요.

"작년 매출이 전년 대비 줄어든 것은 개별 판매 부문의 매출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공개 경매를 통한 매출은 오히려 65억달러로 전년보다 소폭 늘었습니다. 이번 봄에 나온 경매 물품은 작년 연말과 올해 초 결정된 것입니다. 가을에는 더 많은 작품이 크리스티 경매에 등장할 것입니다. 연말로 갈수록 경기가 더 좋아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여러 지역 출신의 젊은 부자들이 미술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이들은 기존 고객들과 생각도 다르고 취향도 다릅니다. 젊은 부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정신을 보여주는 현대미술에 관심을 보입니다. 원하는 작가와 지역도 매우 다양합니다. 뭉칫돈이 있고 예술품 수집에 관심이 큰 신시장 발굴에 크리스티는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인도 뭄바이의 경우, 2013년 첫 경매를 열었고 2015년에 다시 경매를 열었는데, 2년 만에 매출이 23% 늘었습니다."

―미술품 경매에 고액이 몰리면서 투자 상품처럼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미술품에 대해 너무 투자 관점으로 접근하지 말라고 말하는 편입니다. 미술품 투자는 자기 만족입니다. 객관적 기준은 크게 중요하지 않죠. 작품에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온전히 고객 몫입니다. 남편이 생일 때 사준 보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내가 보석을 당장 팔아 치우지는 않습니다. 개인에게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선물이니까요. 고가의 미술품을 사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물론 투자를 염두에 두고 미술품을 살 수도 있습니다. 저는 고액 자산가들에게는 특정 작가의 대표작을 사라고 하고, 가능하다면 생각해 둔 가격보다 조금 더 무리해서 사라고 권합니다. 경매 시장에서 가격이 높다는 것은 작품 질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인기 작가의 대표작은 언제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은 값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초고액 투자자가 아닌 다음엔 이런 투자 전략을 권할 수 없습니다. 너무 많은 돈이 드니까요. 여유 자금이 있는 투자자가 경매를 통한 투자를 원한다면 크리스티는 미술품 외에도 와인, 골동품 가구, 사진, 자동차, 보석 등 매우 다양한 물품을 판매합니다. 최근에는 10만달러에서 200만달러 사이 시장에서 경매를 많이 성사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미술품 투자는 리스크도 크고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마음에 드는 것을 사서 간직하세요. 진심입니다."


☞ 크리스티

1766년 제임스 크리스티가 영국 런던에서 설립한 경매 회사로 현재 32개국에 54개 사무소를 두고 있다. 1973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했지만 1999년 구찌·보테가베네타 등을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PPR그룹 오너 프랑수아 피노가 인수하면서 개인 소유 회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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