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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달리는 한국 대기업, 혁신 불가능… 새로운 국내 경쟁자 만들어라

Opinion 온혜선 조선비즈 기자
입력 2016.06.11 03:06

[제7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한스 파울 뷔르크너 보스턴컨설팅그룹 회장이 말하는 혁신의 조건

김지호 기자
"한때 큰 성공을 거뒀던 기업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대부분 '기업이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한스 파울 뷔르크너(Bürkner·64)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회장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시장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는데 기존 기업들이 타성에 젖어 변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며 "이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새로운 경쟁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뷔르크너 회장은 1981년 BCG에 입사했다. 그동안 다양한 글로벌 기업과 각국 정부에 대한 컨설팅을 해왔고, 지난 2004년부터 BCG 회장직을 맡고 있다. 조선일보가 주최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뷔르크너 회장은 인터뷰가 끝나면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한다며 캐리어를 끌고 나타났다. 옷 고르는 시간마저 아끼려고 출장 가방에 늘 푸른 셔츠 10여 장을 챙겨 넣는다고 들었는데, 이날도 양복 안에 어김없이 푸른 셔츠를 입고 있었다.

1년 내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정부와 기업들의 고민거리를 접하는 뷔르크너 회장이 생각하는 혁신 조건은 무엇일까. 그는 "2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업들이 지금 혁신의 리더"라며 "정부의 역할은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를 끊임없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혁신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경쟁자

―모두가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이를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세계적 컨설팅 그룹 회장으로서 생각하시는 ‘혁신’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새로운 경쟁자를 만들어 주는 것이 진짜 혁신입니다. 그동안 한국 기업은 1등 기업을 모델로 삼아 그 기업보다 더 빨리 더 좋은 제품을 내놓는 방법을 사용했고, 이는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같은 방식으로 추격해오고 있어 다른 전략이 필요합니다.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이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기업에 새로운 경쟁자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구글이나 우버 같은 기업은 20년 전에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산업 구조를 바꾸고 있습니다. 가상현실(VR), 3D 프린터 분야를 선도하는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기업들이 하는 혁신은 기존 기업에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변화는 불편하고 불안한 것입니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기존 기업들이 뿌리부터 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새로운 기업가들이 새로운 기업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부 정책과 법규가 새로운 기업의 탄생을 막고 기존 기업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기존 기업에는 일단 변화를 좇아가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명확한 비전을 세우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따라가면서 구체적인 비전을 수립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뒤처지지 않습니다.

GE는 전형적 하드웨어 제조업 기업이었지만 급격한 기술 변화를 목격하면서 하드웨어 제조사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지만, GE는 소프트웨어 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결행했습니다. 2011년 소프트웨어센터를 세우고, 관련 분야 엔지니어 1000여명을 뽑았는데,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비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
Getty Images 이매진스
투명성-접근성 높은 기업이 성공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

“혁신은 매우 광범위하게 일어납니다. 단순히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비즈니스 모델과 직업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혁신의 바탕은 접근성과 투명성입니다.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소비자에게 더 많은 종류의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투명성이 높아지면 제품 및 서비스의 가격과 품질을 쉽게 비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품질이 향상됩니다. 그 덕분에 소비자의 소비 습관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실시간 무한 경쟁 시장에 던져진 셈입니다.

중국의 인터넷 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생산 원가가 낮은 물건을 찾아 나선 영미권 기업들과 저렴한 비용으로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중국 본토의 제조업자를 효율적으로 연결해 성공한 사례입니다. 과거에는 미국 기업가들이 중국 본토에 가서 공급업자를 찾으러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데이트 산업은 어떤가요. 파티에 가서 이성을 찾던 사람들이 이제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고 있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기술의 발전입니다.

기술에 따른 변화 방향성을 전망한다면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컴퓨터를 통해 생산·효율성을 극대화한 디지털 혁명에 이어 통신의 융합과 빅데이터, 인공지능이 또 한 차례 사회와 경제 전반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흐름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신산업을 키우기 위해 지역 곳곳에 창조경제센터를 만들고 민간 기업 지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정부 투자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든지, 정부가 완벽한 선견지명을 통해 혁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창조경제센터가 여러 곳에 있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한 곳이면 충분하지 않은가요.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입니다. 본원적 기술에 대한 국가적 투자가 충분하다면, 그리고 지원이 속도감 있게 이뤄진다면 정부가 할 일을 다했다고 봅니다. 정부의 역할은 거기까지입니다. 그 다음에는 민간이 혁신의 주가 되어야 합니다. 알아서 하게 놓아 두세요.

민간에 필요한 것은 다양성과 개방성입니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왜 혁신의 중추가 되었을까요. 미국은 물론 유럽, 중국,인도 등 세계 각국 인재가 다 모입니다. 유능한 인재를 뽑는다고 서울대나 하버드대를 기웃거리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한국은 좀 더 개방적인 문화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인재에 대해, 그리고 남다른 아이디어에 대해 개방적이지 않으면 혁신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학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양한 인재가 섞여 있는 팀이 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여러 변수에 잘 대응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혁신은 개인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산업 흐름은 변하고, 경제 구조도 결국 달라져야 할 텐데, 이를 어떤 방법으로 현실에 맞춰야 할까요. 한국에서는 조선업 등 기존 산업의 구조조정이 큰 이슈입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증 때문에 기존 강점을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 독일, 중국 같은 경제 강국의 힘은 새로운 기업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기존 제조업의 성공에도 강력히 기대고 있습니다. 오바마 2기 정부는 제조업 부흥, 에너지 경쟁력 강화 등 산업 경쟁력 부활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만 구조조정은 필요합니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쟁력이 과거 같지 않은 산업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 새로운 자금 투입이 불가피합니다. 중요한 것은 원칙입니다. 기존 산업 보호에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높이고 생산 능력을 축소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특히 해운, 조선, 철강 등 주요 산업은 경쟁력 회복을 위해 다 바꿔야 할 시점인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 철강 산업은 과거와 같은 호시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철강의 주요 소비처 중 하나인 자동차를 예로 들어 볼까요.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는 연비 절감을 위한 차량 경량화를 핵심 전략 중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많은 부품을 철강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대체했거나 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 역시 핵심 구조물에 복합 재료나 플라스틱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공급 과잉은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해당 기업들은 생산 능력을 시장 상황에 맞춰 최적화하고 제품 경쟁력을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미래형 인재 육성하려면 교육 바꿔야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기존 일자리가 위협받을 뿐 아니라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5년 뒤 일자리 510만개가 없어진다는 예상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기계의 역할이 커지면서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입니다.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일은 앞으로 기계가 담당할 것입니다. 애널리스트 같은 직업은 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인간의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헤어 디자이너 같은 직업은 당분간 유지될 것입니다.

고용 구조 자체가 달라지게 되면 정부 역할이 중요합니다. 정부는 두 갈래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선 기존 일자리에 대한 구조조정 등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합니다. 고용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산업이나 직군을 대상으로 충격을 최소화하는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둘째는 신규 일자리 대상 교육 등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한편에서는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생기지만, 또 한쪽에서는 새로운 고용 수요가 넘치는데 적합한 인력을 구하지 못해 곤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교육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창의력을 배양하고 기업가 정신을 갖춘 미래형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 정책을 이미 바꾼 나라들이 있습니다. 핀란드에는 ‘이노루키오(Innolukio)’라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모든 핀란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로 학생과 기업, 대학이 연계돼 있습니다. 8월 중순에 시작해서 3개월간 지속되는데, 학생들이 창조적이고 혁신적이고 비판적이 될 수 있도록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팀워크 기술을 익히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북돋우며 미래의 일자리에서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도 가르칩니다.

미국의 K12(미국 교육청 승인을 받은 초·중·고 교육과정)는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을 반영한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교육은 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들었는데,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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