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월보다 0.2%p 낮춘 3.2%로 하향 조정했다.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까지 낮아졌고, '양적 완화'라는 비상조치까지 도입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중앙은행이 쓸 수 있는 금융완화 정책의 효과가 점점 나지 않게 되자 각국 중앙은행은 양적 완화 이외에도 다양한 비전통적인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약발이 듣지 않아 더욱더 강한 약을 찾게 되는 상황이다. 일본 경제지(誌) 도요게이자이(東洋經濟)는 '금융완화 중독(中毒)'이라고 표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다양한 시도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다. 도입 초반엔 시장에 충격을 주면서 효과를 보지만 시간이 지나면 거의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한계가 왔다며 정부의 재정정책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양적 완화 : 미국은 대체로 성공, 일본은 별 효과 못 봤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춘 상태에서 국채·회사채 등 자산을 매입해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 완화는 금융위기 이후 여러 나라가 도입했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총 3차례에 걸쳐서 2014년 10월까지 3조7000억달러 규모의 양적 완화를 집행했다. 그 중 3차 양적 완화가 가장 효과적이었는데 '무기한'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이 주효했다. 미국의 양적 완화가 끝날 무렵 실업률은 5.9%까지 떨어졌다.
반면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日本銀行)은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국채를 사서 은행 대출 여력을 늘리는 방식으로 가장 먼저 양적 완화를 시도했지만 경기 부양에 실패했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2014년 10월부터 다시 양적 완화를 시작해 돈을 풀고, 엔화 약세를 유도하려 했지만 최근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역시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독일의 반대와 유럽연합(EU)의 제약 때문에 양적 완화 정책이 늦어진 편이지만 최근 적극적으로 시도 중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2015년 3월 1조1000억유로의 국채 매입을 시작했고, 매입 규모를 서서히 늘리고 있다. 올 들어 투자등급 회사채를 사기 시작했는데,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낮춰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선진국들의 양적 완화 정책은 자국 경기엔 도움이 됐지만 신흥국 입장에선 자산 거품, 자본 유출 우려가 컸기 때문에 보는 시각이 곱지 않았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은 신흥국 통화 가치의 상승을 가져오고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한 국가는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ECB, 일본이다. 지난달 헝가리도 마이너스 금리 대열에 합류했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중앙은행의 예치금에 대해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이자를 주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돈을 묶어두지 않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다.
국가마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효과와 양상에 대해선 찬반이 갈린다. 덴마크의 경우엔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후 크로네화 강세가 진정됐다. 덴마크 경제는 2012~2013년 마이너스 성장 했지만 2014년 이후 1%대 성장세를 회복했다.
유럽에서도 실물 경기부양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란 평가가 나오지만, ECB는 마이너스 금리와 양적 완화 정책을 병행한 덕분에 유로존 곳곳에서 소비자와 기업의 대출 비용이 낮아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들의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반발도 심하다. 채권왕 빌 그로스는 "미래에 더 적은 돈을 받게 될 게 분명한 상황에서 왜 돈을 꿔주겠나"라고 지적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ECB가 유로존 시민들로부터 퇴직 후의 소득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마이너스 금리가 "실물경제에서 투자를 왜곡하고 자본을 남용하게 만들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중앙은행 발권력 동원 주장도
양적 완화를 하면 결국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돈이 흘러 혜택이 소수에게만 돌아간다는 비판이 나왔다. 최근엔 지금의 양적 완화보다 더 파격적이고 비전통적인 정책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헬리콥터 머니'는 중앙은행이 직접 돈을 찍어 뿌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을 전 국민의 계좌에 입금해주거나, 모든 국민에게 3개월 유효 기한이 있는 상품권을 나눠줘서 단기간 내 소비를 진작시키자는 것이다. 헬리콥터 머니는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2006년 사망)이 만든 개념인데 요즘 같이 저성장, 저금리 기조에서 쓰이면 소비를 진작시키고 물가 상승을 이끌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란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헬리콥터 머니는 기존의 양적 완화와 달리, 돈을 뿌리면 일단 현금을 받는 사람은 영원히 갚을 필요가 없어 부채를 유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재정정책의 보조 도구로 전락할 수 있어 중앙은행들은 반기지 않는 정책이다. 일각에선 이런 헬리콥터 머니를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쥐여준다는 의미에서 '민중을 위한 양적 완화(QE for people)'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통화정책 한계 왔나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중앙은행들이 '할 만큼 했다'는 무용론(無用論)도 제기된다. 이제 중앙은행들의 손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재정정책을 담당하는 정부기관들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중앙은행을 이끌었던 두 수장은 '통화정책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최근 미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이나 다른 국가에서 통화정책이 점점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경기 회복을 위해선 통화정책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재정정책까지 감안한 종합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뜻이다"고 말했다. 머빈 킹 전 영란은행 총재는 "전 세계 경기 회복의 해답은 중앙은행들의 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며 "통화정책은 가면 갈수록 효과가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지난 2월 "중앙은행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세계 경제는 훨씬 더 최악의 수렁에 빠졌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앞으로 중앙은행들이 시도하는 통화완화정책으론 세상을 바꾸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구리아 총장은 "한 국가의 노력만으론 통화정책이 작동하지 않는다"며 "더욱 긴밀한 정책 공조를 통해 수요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