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가 과거처럼 눈부시게 성장하기 어려운 시대에 진입했다. 이는 대단히 극단적인 생각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급진적인 이론은 아니다.
몇 년 전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 침체는 2008년 금융 위기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고 말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서머스는 가계 부채가 쌓이고 부의 불평등이 커지면서 소비가 감소하고 성장이 아주 더뎌지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가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버트 고든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도 기술이 발달하는 속도에 비해 경제가 성장을 못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소수파 독일 경제학자는 지난 20여 년간 이보다 더 극단적인 주장을 해왔다. 기하급수적 성장을 전제로 한 경제학 자체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기하급수적 경제성장은 매년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몇 퍼센트씩 커지는 것을 말한다. 독일 학자들은 몇몇 신흥국엔 기하급수적 성장 모형을 도입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경제가 성숙한 국가엔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들은 경제 선진국들의 성장률이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란 주장을 해왔다.
최근엔 또 다른 유럽 경제학자들이 저성장과 관련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독일 학자들의 주장에 힘이 실렸다. 유럽 경제·통계학자들은 미국, 유럽 등 18개 경제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을 1960년부터 2013년까지 조사했다. 그 결과 18개국 중 2개국은 기하급수적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나머지 국가는 1인당 GDP 증가율이 떨어졌다. 실제로 경제가 성장할수록 1인당 GDP 증가율은 점점 하락했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를 감안하면 오늘날 경제학은 상당 부분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전통적 의미의 경제학은 '경제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는 전제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예산을 짜거나 정책을 만들 때 항상 전통적 경제학 이론을 토대로 한다. 사회복지에 들어갈 예산을 편성할 때, 정부 사업에 필요한 비용과 그에 따른 사회적 혜택을 계산할 때,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 비용이나 가치를 환산하는 수식 등은 완전히 잘못됐을 수 있다. 현대 경제학 이론이 미래 경제의 가치를 잘못 평가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기하급수적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은 대부분의 현대 경제학 이론의 주춧돌 역할을 한다. 해당 이론들은 자본과 노동력이 향상하고 기술이 발전하면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장 근간에 있는 경제성장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데, 경제성장을 전제로 한 이론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난 수백여 년간 인류가 쌓아온 기하급수적 경제성장은 단발적 현상이고 어느 때와 견줄 수 없는 호황이었다는 서머스와 고든의 주장은 옳다. 앞으로 경제는 훨씬 더 느린 속도로 나아갈 것이란 말도 옳다. 다시 생각해보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것은 좋은 소식일지도 모른다. 다만 사람들이 저성장이란 개념에 익숙해지는 게 어려울 뿐이다.
과거와 같은 폭발적 성장이 계속되면 인구가 포화 상태가 되고 자원이 고갈해 제2의 지구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사람이 사는 지구는 아직 하나뿐이다. 기하급수적 성장 패턴이 이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