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다른 신흥국과 차별화된 신흥국' 별명 붙었듯이… 해외자본이 안 빠져나가게 할 전략과 맷집 중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우리 경제 상황은 그런대로 좋은 편이었다. 특히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27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도 우리 경제를 받쳐주는 긍정적 요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9월부터 12월까지 무려 700억달러의 해외 자금이 우리 경제에서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국내 주식시장이 잘 버텨주는 바람에 한국이 주식 처분하기 좋은 시장으로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당시 한국은 신흥국의 ATM(현금자동지급기)이라고 불렸다. 자금 인출하기가 편하다는 의미를 담은 자조적인 별명이었다. 1997년 외환 위기 때는 우리 경제 사정이 워낙 안 좋아서 자본이 유출되었다면, 2008년에는 우리 경제 상태가 상대적으로 좋은데 남들이 힘들어지니까 자본의 대량 유출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이후 정부는 미국 중앙은행과 통화 스와프 협정을 추진하여 성사시켰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300억달러가 유입되면서 우리 시장은 안정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유한 2000억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보다 미국이 제공하는 300억달러의 위력이 훨씬 컸던 것이다.
2013년 6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벤 버냉키 의장은 양적 완화 종료 가능성에 대해 지극히 원론적인 언급을 했다. 그런데 전 세계 주식시장이 충격에 빠지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당시 신흥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갔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자금 유출은 터키·인도네시아 등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돼 있고 외환보유액 규모가 작은 5개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이 5개국을 F5라 불렀다. F는 취약하다는 뜻의 'fragile'이라는 단어의 머리글자였다. 그런데 이렇게 신흥국들을 빠져나간 자금 중 일부가 그 해 8월부터 국내로 유입되기 시작했고 결국 상반기 순 유출을 기록한 해외 자본이 하반기에 순 유입으로 전환되면서 우리 금융시장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이때 우리나라는 다른 신흥국과 차별된 신흥국이라는 의미로 '신흥국의 스위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세계경제가 거의 하나처럼 연결되어 경제가 글로벌화된 시대에 해외 자본의 유출·입을 막기는 매우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자본 이동 '자유화'가 아니라 자본 이동 '관리' 정책을 거시 건전성 정책의 일환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해외 자본의 급격한 유출을 막기는 어렵고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한 나라 경제는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이 자본들이 유입될 때는 각자 알아서 하나씩 둘씩 천천히 들어오지만 국내에 문제가 생기거나 해외에 위기 상황이 발생해 밖으로 유출될 때는 단시일 내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빠져나간다. 이런 해외 자본의 행태에 대해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고까지 표현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해외 자본의 급격한 유출은 커다란 부작용을 낳는다.
최근 미국 금리 인상 등으로 글로벌 시장의 자금 흐름 변화가 심상치 않다. 신흥국에서의 자금 유출도 심각하다. 유가 하락의 부정적 영향도 만만치 않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작년 10월 한 달동안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2조원 가까운 주식을 매도한 바 있다. 재정 수입이 줄어들다 보니 그동안 사들였던 해외 자산을 매각하고 있는 것이다. 유가 하락이라는 악재가 우리 주식시장에서 매도세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석유 가격 하락의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는 반감되고 부정적 영향만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해외 자본에 대한 유입 전략은 매우 중요하다. 다들 힘든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나은 모습이 우리 경제에 나타난다면 위기 가능성이 대폭 줄면서 글로벌 악재들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무디스 신용등급 상향 조정 등 다양한 긍정적 요소를 활용하여 우리 경제가 다른 경제와 차별화되어 있음을 부각시키는 '신흥국 스위스 전략'이 절실한 상황이다. 또한 외부 상황이 매우 안 좋은 가운데서도 안전벨트를 매고 맷집을 키워서 위기시 피해를 줄이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충분한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면서 완화적 거시 정책 기조와 함께 경제의 맷집을 키울 수 있는 각종 미시적 정책들을 효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금은 '큰 것 한 방'식의 정책은 어렵다. 글로벌 경제의 여러 가지 악재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현 국면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다양하고 복합적인 처방들이 동시다발로 추진되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