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산유국들, 원유 생산 늘리고 수요는 부진… 美금리인상도 한몫
"저유가 쇼크는 영구적" "하반기엔 유가 상승" 향후 전망 엇갈려
"국제 유가 가격은 올해 더 낮아질 것이다. 이는 세계경제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헤르만 지몬 지몬-쿠퍼&파트너스 회장)
"올해 전 세계 경제성장률이 작년보다 높아진다면 그것은 저(低)유가 때문이다. 하지만 낮은 수요에 따른 원유 공급 과잉 문제가 장기적으로 전 세계 산업군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렵다."(팀 하포드 FT 칼럼니스트)
지난 7일 싱가포르 시장에서 3월 인도분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27.2달러까지 하락하면서 전문가들의 예측은 현실이 됐다. 두바이유는 지난해 11월 중순 배럴당 40달러 선이 무너진 뒤 두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30달러 선이 붕괴됐다. 브렌트유와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등의 가격도 32달러대로 추락했다. 2003년 이후 1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감소와 전 세계적 원유 공급 과잉 상태로 저유가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이 7일 단행한 위안화 평가 절하도 저유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앵거스 니콜슨 IG 애널리스트는 "국제 유가가 중국 런민은행의 위안화 추가 절하 이후 더욱 하락했다"며 "위안화 절하는 경기가 나쁘다는 방증이므로, 원유 시장에 악재가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까지는 저유가가 지속될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등 중동 원유국들은 지속적으로 원유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반면 수요는 부진하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미국 휘발유 및 중간유분(中間溜分) 재고는 전주보다 각각 1058만배럴과 631만배럴 증가했다. 휘발유 재고 증가 폭은 1993년 3월 이후 가장 큰 것으로 이는 미국 내에서 석유제품 소비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들어 미국과 이란이 원유 수출 재개에 나서는 등 공급 증가 요인이 추가됐다. 미국이 올해 추가 단행할 것으로 보이는 금리 인상 역시 저유가 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미 달러화 가치와 국제 유가는 반대로 움직인다.
노무라 증권은 브렌트유도 향후 10일 안으로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내려설 것으로 내다봤다. UBS 그룹은 시장의 과잉 공급 탓에 가격이 이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고 점치고 있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 이후 유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저유가 쇼크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영구적인 흐름"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금을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저유가라는 상황에 적응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루비니 교수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단기적으로 더 많이 자금을 지출하면서 저유가 쇼크를 극복하려고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우디는 정부 지출을 줄이고 보조금도 삭감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속 불가능한 공공 채무를 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유가가 오랜 기간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 전망하며 "나이지리아 같은 산유국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통화정책에 유연성을 보태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 당국은 너무 엄격한 원칙 때문에 국가의 외환 보유액이 고갈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도 "유가 하락은 장기적인 요인에서 비롯한 만큼 오래갈 것"이라며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나 이라크, 캐나다 등은 수입을 유지하려고 유가가 내려갈수록 더 많이 생산하고, 핵 협상 타결로 제재가 풀린 이란도 증산 채비를 하고 있다. 유가가 오를 만한 요인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 양대(兩大) 에너지 조사기관 수장인 대니얼 예긴 미국 HIS 부회장과 데이비드 모리슨 영국 우드매킨지 에너지 부문 회장은 올해 하반기에는 유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예긴 부회장은 "미국 등 비(非)OPEC 국가들이 원유 생산량을 감축하면서 올 하반기부터는 원유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며 "하지만 OPEC의 감산 합의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그 상승세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모리슨 회장도 "미국 경기 회복과 중국 정부의 소비 촉진 정책으로 올해 석유 수요가 하루 평균 130만배럴 증가할 것"이라며 "저유가로 셰일 업체들이 시장에서 쫓겨나기 시작한 것도 유가를 올리는 주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