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만 그룹 조사에 따르면 기업에 대한 나쁜 뉴스는 2시간 30분 만에 전 세계의 25%에 퍼지고, 나머지 75%에는 24시간 내로 퍼집니다. 기업의 위기를 전 세계 사람들이 아는 데 하루밖에 안 걸린다는 것이지요. 지난 5년간 리스크의 확산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고, 정부와 기업은 아직 이런 속도에 낯설어합니다. 평판과 관련된 리스크는 지난 10년간 400% 증가했습니다."
롭 할란(Harlan·53·사진) 노스웨스턴 로스쿨 교수 겸 세계 최대 PR(public relations) 그룹인 에델만 위기관리 부문 사장은 25년째 엔론과 GE헬스케어, 미쓰비시, 로슈, HSBC 등 글로벌 대기업의 위기와 평판 리스크를 관리하는 위기관리 전문가다.
할란 교수는 "위기관리의 첫째 단추는 대중과 어떻게 소통하는지에 달렸다"며 "위기에 허둥대지 않고 프로답게 침착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이미 대중에게 알려진 소문이 전 세계로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사고 이후 회사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소비자의 신뢰 회복 여부가 달렸다는 것이다.
―과거보다 기업의 리스크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습니다.
"기업이 글로벌화되면서 하나의 위기가 많은 도시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기업의 위기를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지도록 하기 때문에 기업의 평판에 치명타를 입히는 리스크가 됐습니다.
이로 인해 기업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습니다. 기업과 정부의 평판에 타격을 주는 사건·사고가 최근 잦았는데, 이런 소식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꾸준히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고, 몇 년이 지나도 콘텐츠로 재생산되기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최근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중 산업 혁신의 동기가 사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응답자 중 37%에 불과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소비자를 위하기보단 기업이 스스로의 이익 창출을 위해 일한다고 보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기업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기업이 위기에서 정상 상태로 회복하는 전략의 최우선은 '사전 준비'입니다. 만약 아직 위기대응 매뉴얼이 없다면, 지금 당장 만드세요. 누가 위기대응팀에 들어가고, 최우선 결정을 내릴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팀은 가능하면 작게 만드세요. 이 사람 저 사람 각계 전문가들을 모조리 끌어모은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IT팀, 보안팀, 법률팀, 커뮤니케이션팀의 대표들이 한 사람씩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 CEO가 최종 결정을 내려야지요. 외부 법률 자문단을 늘리거나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의 일은 의사결정 과정이 더뎌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PR팀 지원은 필요합니다. 24시간 동안 쏟아지는 대중의 반응을 모으고, 그들의 질문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기 이후 언제 미디어와 직접 소통하고, 성명을 내야 하나요?
"우선 어떤 정보든 공식 발표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예컨대, 사고로 발생한 피해자의 숫자, 피해 규모 등 정확한 데이터가 집계된 이후에 대중과 소통을 시작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처음 발표한 메시지를 절대 바꿔선 안 돼요. 만약 질문을 받았을 경우, 아는 내용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해야 합니다. 대부분 사고 직후에 기업은 미디어와 소비자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초조하고, 불안하고, 한시라도 빨리 그들과 대화로 풀어가고 싶겠지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비난은 더 거세질 것입니다. 하지만 공식 성명을 내기 전까지 커져가는 부정적인 시각과 비난은 상대적으로 해결하기 쉬운 문제입니다. 정말 큰 위기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위기에 누가 회사의 대변인으로 적당한가요?
"회사의 대변인이라고 해서 굳이 CEO를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에델만의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CEO는 별로 전문가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술적, 혹은 법률적 문제에 대해 CEO가 잘 알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오히려 잘 알지도 못하는 문제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워서 급하게 브리핑하고,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못 한다면, 사고 수습을 제대로 못 한다는 비난을 얻기 쉽습니다. 더군다나 CEO는 기업의 사고와 관련해 신뢰의 대상도 아닙니다. 대중은 CEO가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태를 수습하려는 그의 발언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CEO가 말이라도 바꾸거나 정정하면 큰일 나죠. 최근 하나의 사건으로 끝날 문제가 오랜 시간 지속되는 경우는 CEO의 말실수와 잘못된 태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선의 방법은 CEO가 나와서 비즈니스 상황을 설명한 후 고객에게 사과하고, 기업 내 전문가가 나와서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설명하면 됩니다. 그리고 사건이 모두 마무리된 시점에서 한 번 더 공식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면, CEO가 마무리지으면 됩니다."
―기업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해야 대중에게 제대로 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가 중요합니다. 물론 모두가 좋아할 만한 100점짜리 메시지는 없겠지만,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충분한 사고 조사를 한 뒤 사고의 원인을 규명해 누구의 잘못인지 가려야 합니다. 대중 앞에서 회사 내부에서 논쟁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모든 논의가 끝나고 합의점에 도달하고 나서, 공식 발표를 해야 합니다.
둘째로, 미디어와 SNS 등을 통해 대중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예상하고 지켜보세요. 발표 내용에 부정적인 반응이 나와도 말을 바꿔서는 안 됩니다. 일관된 모습으로 처음 메시지에 집중하세요. 셋째로, 고객이 당신의 길잡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꾸준히 그들과 소통하며, 입장을 이해시키는 동시에 입법자들, 규제 당국, 주주들의 반응도 살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