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가난한 농부의 밭에 '수퍼 씨앗'을 뿌려라, 재앙 벗어나려면

Opinion 빌 게이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 이사장
입력 2015.09.12 03:04
빌 게이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 이사장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인도 동북부에 있는 비하르주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이곳은 갠지스강을 접하고 있어 비옥한 평야 지역이 크게 펼쳐져 있었다. 이곳 주민들은 쌀, 옥수수, 밀 등을 재배해 생계를 꾸려나갔다.

이들에게 농사는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지만, 밥벌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여름철 우기(雨期)에 접어들면 강이 범람해 농장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매년 이런 상황이 반복됐지만, 농민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물에 잠긴 농장에서 작물이 썩어 갈 때면, 농민들은 허드렛일이라도 하려고 도시로 떠났다. 그리고 그다음 해 떠나기 전보다 더 가난해진 채 농장으로 돌아왔다.

가난한 나라 농부들의 삶은 항상 위태롭다. 그들에겐 물을 가둬둘 댐도, 홍수를 이겨낼 수 있는 씨앗도, 땅을 비옥하게 만들 비료도 없다. 농사를 망쳤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은 들어본 적도 없다. 그들은 단 한 번의 가뭄 또는 홍수로 빈곤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이런 그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기후변화'다. '지구온난화'는 날씨를 더욱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어떤 날이면 비가 미친 듯이 왔고, 또 다른 날이면 가뭄이 지속됐다.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기온이 올라가던 날도 있었다. 사람들은 죽어갔고, 벌레들만 나날이 번식했다.

물론 부유한 나라 농민이라고 기후변화에 아무런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댐을 지어주고 저수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든든한 정부가 있다. 하다못해 농사를 완전히 망친다 해도 보험 회사에서 일부를 보상해준다. 가난한 나라 농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것이 가난한 나라의 농민에게서만 끝날까. 길게 본다면, 그 고통은 전 세계 인류에게 확산될 수 있다. 기후변화는 식량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픽=박상훈 기자
식량 문제 민간단체인 '글로벌 하비스트 이니셔티브'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 세계 인구가 오는 2050년이면 최소 90억명 수준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럴 경우 전 세계 식량 수요는 최대 60% 증가한다.

기후변화로 농사는 어려워지는데 인구가 계속 증가한다면 그 끝은 곧 '기아(饑餓) 상태'다. 인류는 늘 기아와 싸워왔고, 최근 50년간 그 싸움에서 어느 정도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 싸움에서 다시 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지금이라도 당장 행동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국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에 합의하고, 친(親)환경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면 말이다.

물론 지금 오르고 있는 온도 자체를 막을 순 없다. 내일 당장 전 세계 정상이 모여 '싸고 깨끗한 에너지'를 찾는다 해도, 기존 화석 에너지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인류의 삶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또 있다. 기후변화에 무방비로 방치된 가난한 나라 농부들을 돕는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홍수와 가뭄을 막을 수 있는 관개시설, 기후변화에도 잘 버틸 수 있는 씨앗,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비료 등이다. 이것만 주어져도 이들은 특유의 성실함을 발휘해 전 세계인을 위한 식량을 생산할 것이다.

이들이 부유해지면 이들의 식탁이 풍요로워지고, 농장은 커지며, 자녀들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한 가족의 풍요가 모이면 전 세계는 조금씩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아내가 최근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 부분이다. 우리가 운영하는 재단과 뜻을 같이하는 연구 기관은 기후변화에도 견딜 수 있는 종자 개량에 집중해왔다. 그리고 그 종자들은 조금씩 농민들의 삶을 바꿔놨다.

최근 비하르주를 방문했을 때 발전된 그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개발한 '스쿠버(scuba)'라는 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스쿠버는 물 밑에서도 2주간 생존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외에도 가뭄, 열, 추위, 염분 오염 등 다른 위험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품종들을 개발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도 있다.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건 인공위성 기술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인공위성 사진들을 이용해 아주 세밀한 토질 지도를 만든다. 그리고 이 지도들은 그들에게 어떤 땅에서 어떤 품종을 재배하는 것이 좋은지 알려준다.

이렇게 좋은 씨앗과 새로운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농부들이 활용할 수 없다면 그들의 삶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영리 단체인 '원 에이커 기금'은 그들에게 자금을 대출해주고 신기술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농부 20만명이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원 에이커 기금은 지원 대상을 2020년까지 100만명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올해 초 나와 아내는 연례 서신을 통해 앞으로 15년 안에 아프리카 국민들은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물론 어느 정도 허풍이라는 것은 안다. 기후변화도 진행되고 있다. 절실한 나의 바람이 그렇다는 것이다.

전 세계는 퍼즐과도 같다. 한 조각이라도 자리를 벗어나면, 그들의 삶 전체가 부서질 수 있다.

나는 가난한 농부들의 삶을 도울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 농부들도 자신들의 삶을 극복할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전 세계가 그들이 처한 현실을 도와야 할 때다.

화제의 Opinion 뉴스

'암흑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유럽 기업 빈부격차 줄이려면 '범유럽 주식형 펀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인들이 코로나 위험 무릅쓰고 직장에 복귀할까
WEEKLY BIZ가 새롭게 탄생합니다
테슬라 팬들은 좀 침착해야 한다

오늘의 WEEKLY BIZ

알립니다
아들을 죽여 人肉 맛보게한 신하를 중용한 임금, 훗날…
'암흑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유럽 기업 빈부격차 줄이려면 '범유럽 주식형 펀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인들이 코로나 위험 무릅쓰고 직장에 복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