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체면 구기고 있는 구로다… 시라카와 경고 생각나나

Opinion 윌리엄 페섹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입력 2015.07.18 03:04 수정 2015.07.18 03:06

엔화 찍어내도 경제 안 사는데… 日銀 "부양책 효과 있다" 낯뜨거운 보고서만 쏟아내 전임자 시라카와 마사아키 "문제는 자금부족이 아니라 경직된 경제구조와 고령화"

일본 경제를 부활시키겠다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계획은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구로다 총재는 그의 전임자인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前) 일본은행 총재의 경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라카와 전 총재는 2013년 3월 퇴임한 후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상반된 행보를 보였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퇴직 후 수시로 TV에 나와 재임 당시 자신이 펼쳤던 정책을 옹호했다. 반면 시라카와 전 총재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재임 중 디플레이션(경기 침체에 따른 물가 하락) 타개에 너무 소극적이었다고 아베 신조 정부가 아무리 비난해도 시라카와 전 총재는 침묵을 지켰다.

시라카와 전 총재는 재임 기간 내내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진 것은 자금 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직된 경제 구조와 인구 고령화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구로다 총재는 아직 시라카와 전 총재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수긍하지 않았지만, 최근 일본은행의 움직임을 보면 사실상 이를 인정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행이 쏟아내는 자화자찬성 보고서는 구로다 총재가 주도한 통화 부양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일본은행은 일본은행이 내세우는 논리에 물가지표가 들어맞도록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측정 방식을 바꾸기까지 했다.

구로다 現일본은행 총재, 시라카와 前일본은행 총재. /블룸버그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아베 총리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다. 시라카와 전 총재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잃어버린 10년'을 끝내기 위해 더 공격적인 방향으로 전환한 아베 총리의 결정도 정당화될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를 수정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인도는 2014년 경제성장률을 4.7%에서 6.9%로 돌연 수정해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다. 루치르 샤르마 모건스탠리 이머징마켓 부문 대표는 "정부 공무원들이 인도의 신인도를 무너뜨리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통계청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렸다"며 분노했다. 하물며 세계 3위 경제 대국인 일본이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창의적'으로 처리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최근 일본은행이 발표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일본은행이 2013년 도입한 물가 안정 목표제(2년 내 소비자물가 상승률 2% 달성)와 양적·질적 통화 완화 정책이 기대 인플레이션을 고정하는 데 기여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통계와 채권 금리 모두 일본은행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현재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약 0.43%로, 1년 전 금리(0.54%)보다 낮다.

공인 통계를 바꾸려는 일본은행의 로비 시도도 실패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정부의 통계 전문가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임대주택의 질이 떨어지는 현상을 수치에 더 반영해주길 원했다. 이렇게 하면 소비자물가지수에 생계 비용이 더 반영되면서 투자자들에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2%)에 더 빨리 가까워지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 통계청의 우에다 세이 물가 통계 책임자는 통계청이 이미 주택 비용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로다 총재 팀은 2013년 4월 이후 두 차례의 대규모 통화 공급을 통해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했다. 일본은행은 매년 7000억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 외에도 자산유동화증권(ABS)부터 상장지수펀드(ETF)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그 결과 증시에서 닛케이 평균이 56% 오르긴 했으나, 임금 인상이나 대기업의 자본 투자 같은 지속 가능한 경기 회복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시라카와 전 총재가 예견한 일들이 현실화된 것이다.

요즘 일본은행은 리플레이션(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화량을 늘려 물가를 끌어올리는 것)을 이루기 위한 조치들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보고서를 연신 내놓고 있다. 모든 보고서에는 일본은행의 정책이 물가상승률을 높이고 경기를 부양시켰다는 주장이 일관되게 담겨 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은 다르게 생각하는 듯하다. IMF는 최근 올해 일본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월 제시했던 1%에서 0.8%로 낮췄다.

구로다 총재가 할 일은 아베 내각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전임 총재들이 과거에 경고했듯, 디플레이션을 끝내려면 엔화를 찍어내거나 멋대로 통계 원칙을 바꾸는 것 이상의 조치들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기업 지배 구조를 개선하는 것 외에는 그동안 일본 정부가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한 게 별로 없다.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 육성,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 철폐, 여성 인력 활용 계획은 여전히 검토 단계를 못 벗어난 실정이다. 구로다 총재는 실패하고 있는 정부 정책을 칭찬하는 행동이 그에 대한 신뢰도 회복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화제의 Opinion 뉴스

'암흑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유럽 기업 빈부격차 줄이려면 '범유럽 주식형 펀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인들이 코로나 위험 무릅쓰고 직장에 복귀할까
WEEKLY BIZ가 새롭게 탄생합니다
테슬라 팬들은 좀 침착해야 한다

오늘의 WEEKLY BIZ

알립니다
아들을 죽여 人肉 맛보게한 신하를 중용한 임금, 훗날…
'암흑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유럽 기업 빈부격차 줄이려면 '범유럽 주식형 펀드' 만들어야 한다
WEEKLY BIZ가 새롭게 탄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