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173조원 규모 인수합병… 시장 점유율 20% 세계 1위 AB인베브 브리토 사장
"3~4년 근무하고 나갈 사람은 안뽑는다… 그것이 비용 절감"
1989년 브라질의 한 맥주 기업은 한 가지 꿈을 목표로 세웠다. '세계 최고의 맥주 회사를 세우고, 세계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 이 회사는 당시 세계 최대 맥주회사였던 '앤호이저-부시(Anheuser-Busch)'를 잡겠다는 계획도 만들었다. 언뜻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이들은 이 꿈 하나를 위해 혼신을 다해 달렸다. 그리고 20년도 지나지 않아 그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세계 시장점유율 20%, 연매출 470억달러(약 52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맥주 회사 '앤호이저-부시 인베브(Anheuser-Busch InBev·이하 AB인베브)'의 이야기다.
AB인베브는 버드와이저(Budweiser), 코로나(Corona),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 등 세계적인 맥주 브랜드를 가진 세계 최대 맥주 기업이다. 전 세계 25개국에 200개에 달하는 브랜드를 갖고 있다. 카스와 프리미어 OB 등을 생산하는 오비맥주의 모기업이기도 하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밀워드브라운이 조사한 '맥주 브랜드 파워 상위 10선'에서, AB인베브는 무려 7개의 브랜드를 올려놓으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맥주 기업임을 입증했다. 1등 맥주로 선정된 버드와이저의 브랜드 가치만 138억달러에 달한다. 맥주만 취급하는데도 P&G, 네슬레, 코카콜라 등과 함께 세계 5대 소비재 기업으로 꼽힌다.
이 회사의 행보는 마치 '정복왕'의 모습이다. '브라마(Brahma)'라는 작은 브라질 맥주 기업은 1999년 브라질의 또 다른 맥주 기업 '안타티카(Antarctica)'와의 합병을 통해 '암베브(AmBev)'로 거듭났고, 2004년에는 600년의 역사를 가진 벨기에의 '인터브루(Interbrew)', 2008년에는 20세기 최대 맥주 기업 '앤호이저-부시'마저 차례로 인수하면서 지금의 AB인베브가 됐다. 지난 10년간 이 회사의 인수 합병 규모는 무려 1600억달러(약173조원)가 넘는다. 이 기간 회사의 매출은 5배 이상 성장했다.
수많은 합병에 의한 성장에 따라 AB인베브가 얻은 것은 기존 기업들이 가져보지 못한 다양한 브랜드 라인이다.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브랜드를 통합하고 통일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보통 케이스와 달리, AB인베브는 합병할 때도 대부분 대등한 입장임을 강조했고, 브랜드도 역시 이전 회사의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런 점에서 AB인베브는 브랜드와 기업 통합 관리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 회사를 이끄는 카를로스 브리토(Carlos Brito·55) 사장(CEO)을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오비맥주 본사에서 만났다. 격의 없는, 장난기를 띤 듯한 미소가 인상적인 그는,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AB인베브는 각국의 대표적인 브랜드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브랜드가 너무 많으면 같은 회사 브랜드끼리 서로 시장점유율을 놓고 싸우는 '자기 시장 잠식(cannibalization)' 현상이 발생하지 않습니까?
"물론 시장 잠식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아주 세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맥주 브랜드마다 고유한 정체성을 만들고, 이를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버드와이저, 코로나, 스텔라 아르투아는 모두 보리로 만든 맥주지만, 서로 다른 영역을 갖습니다. 스포츠 경기를 볼 때는 버드와이저, 해변에 누워 바닷바람을 쐴 때는 코로나,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한 잔이 필요할 땐 스텔라 아르투아, 이런 식으로요.
만약 우리의 모든 맥주가 스포츠 경기를 겨냥한다면 서로 물어뜯고 싸우겠지만, 이렇게 브랜드를 구분해두면 상황에 따라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나면서 '아름다운 경쟁'이 펼쳐질 겁니다.
문제는 새 브랜드가 기존의 브랜드를 잠식할 때입니다. 반드시 집안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면, 새 브랜드는 일종의 프리미엄 전략으로 가격을 높게 잡고 차별화합니다. 수익성을 높여서 최소한 생산성 있게 싸우자는 전략입니다. 실례로, 스텔라 아르투아가 독일에서 급성장하면서, 유서 깊은 독일 맥주인 '벡스(Beck's)'의 지위를 조금씩 잠식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스텔라 아르투아의 가격을 벡스보다 약간 높게 정했습니다. 그 덕에 스텔라 아르투아가 더 팔리고, 벡스가 덜 팔리더라도 수익이 남는 상황입니다. 완벽한 분리가 최선이지만,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술'이라는 식문화는 각각 나라의 특성을 따라 발전한다고 합니다. 브랜드가 무척 많은 AB인베브는 회사 자체의 통일된 이미지 확립이나 각국 법인의 사내 문화 관리가 어렵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한국에는 카스 브랜드가 있습니다. 어딜 가든 한국 레스토랑에 가면 카스가 나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 경우 한국 사람들은 '카스는 한국 맥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스텔라 아르투아는 벨기에 맥주'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마도 흔치는 않을 겁니다. 중요한 건 브랜드마다 해당 브랜드를 관리하는 전략이 서로 다르다는 겁니다.
우리는 전 세계를 6개 지역으로 나누고, 각각을 지사장에게 맡깁니다. 그 밑에는 또 각국 지사가 있고요. 예컨대 카스가 한국식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토대로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브랜드라면, 당연히 한국 지사장이 그 브랜드를 관리해야 합니다.
한국 문화는 미국이나 브라질, 벨기에, 일본 문화와는 다릅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국가관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래서도 안 되고요.
그러나 만약 카스가 글로벌적인 브랜드로 성장한다면, 그때부터는 본사가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게 될 겁니다."
AB인베브는 2009년 일단 오비맥주를 매각했다가 5년 뒤 다시 매입했다. 브리토 사장은 "매각 당시엔 앤호이저-부시를 매입하기 위해서 일부 자산을 처분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오비맥주를 매각했던 것"이라며 "그때 5년 뒤 다시 사들일 수 있는 '바이백(buyback)' 조항을 걸었고, 약속대로 다시 사들였다"고 말했다.
―각 브랜드의 우열은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물론 모든 브랜드를 '최우선 순위'에 둘 순 없습니다. 이 경우에는 글로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우열을 가리는 핵심이 될 겁니다.
예컨대 지역적 특성이 너무 강한 경우에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이른바 '골수팬'들은 남아있을 테니, 투자는 줄이되 현상을 유지하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반면 잠재력이 큰 브랜드도 많습니다. 예컨대 '벡스'가 독일과 유럽을 벗어나 아시아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벡스를 홍보하는 데 더 투자하고 이를 글로벌 브랜드로 격상(格上)시킬 수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방식으로 브랜드를 관리합니다. 그래서 브랜드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것이죠."
비용을 줄일 곳은 언제나 있다
브리토 사장의 별명은 '라 마키나(La Maquina)', 포르투갈어로 '기계'라는 뜻이다. 기계나 다름없을 만큼 철저히 비용을 절감하는 모습에 붙여진 별명이다. 인터브루와의 합병 당시에는 각 지방에 있던 전통적인 양조장을 폐쇄하고, 본사 공장에서 맥주를 생산해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였다. 큰 공장에서 한 번에 맥주를 대량생산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비용 절감 원칙과 기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정답은 늘 비용을 줄일 방법을 찾아보는 겁니다. 예컨대, 한국이 지난해 효율적인 경영 전략을 통해 비용을 줄여냈다면, 중국 직원들에게 '한국 가서 배우라'고 합니다. 글로벌 직원 전부가 가장 최적화된 시스템을 찾아서 맞춰갑니다. 그 외에도 쓸모없는 혜택이나 허례허식을 찾아 없애버립니다.
사실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옛날에는 효율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컴퓨터가 없을 땐 모두 수작업으로 서류를 처리했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컴퓨터 덕분에 지금은 같은 일을 더 빠르고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삶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계속 진화합니다. 결코 '완벽한 효율'을 달성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늘 찾아봐야만 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우리 성과가 완벽하지 못한 이유가 뭘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AB인베브가 가장 먼저 줄이겠다고 마음먹은 비용은 '허례허식'이었다. AB인베브에는 임원들에게 제공되는 특권이 거의 없다. 브리토 사장이 대부분 폐지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임원이라고 무조건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끊어주지 않는다. 회사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 자리를 지정해주는 일도 없다. 구내식당 임원석을 없애버렸고, 직원들과 함께 먹도록 했다.
그래선지 이날 브리토 사장의 옷차림은 아주 가벼웠다. 이날 그는 감색 면바지에 베이지색 셔츠를 입었다. 구두는 이름 모를 갈색 로퍼. 셔츠의 가슴팍 한편에는 '버드와이저(Budweiser)'라는 상표가 찍혀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냥 과장급 직원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회사 고위직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폐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회사에서 돈을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회사가 '남의 것'이라면 돈을 막 써도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이 회사의 주인입니다. 즉 회사 비용이란 '내 돈'이란 말입니다.
사람들은 휴가 때 자기 돈으로 여행을 갑니다. 비행기 티켓 한 장 구할 때도 이게 저렴한지 아닌지 신중하게 고르고 계획합니다. 대개 3개월 전에 비행기 티켓을 결제합니다. 그게 저렴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약간만 신경 쓰면 저렴한 비용으로 출장을 다녀올 수 있는데, 왜 단지 회사 돈이라는 이유로 출발 전날에 결제하고 전액을 지불합니까? 자기들 돈이라면 그렇게 안 쓸 겁니다.
저희는 무조건적인 비용 축소를 장려하는 게 아니라, 검소(frugal)하고자 합니다. 예컨대 저희는 사무실 벽을 꾸밀 때, 맥주병 같은 것으로 장식합니다. 굳이 그 자리에 '모네' 작품이 걸려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런 돈이라면 제품을 개선하는 데 쓰겠습니다."
인재가 회사를 키운다
브리토 사장은 궁극적으로 회사가 이만큼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주인 의식을 갖춘 인재가 핵심이라고 전했다. "저희에겐 세 가지 성공 비결이 있습니다.
꿈, 사람, 그리고 꿈꾸는 사람들이 만드는 기업 문화입니다. 이를 'DPC(Dream·People·Culture의 약자)'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기업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서 회사를 이룹니다. '회사의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 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꿈은 현실이 됩니다. 저희는 꿈의 '주인 의식(ownership)'을 갖춘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게 저희가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었던 노하우입니다. 그러나 매일 그런 차이를 유지하면서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저는 오늘도 인터뷰에 앞서 오비맥주 직원들과 DPC에 대해 30분간 강연했습니다. 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런 강연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의 언어는 세계 맥주 시장의 지배자라기보다는 마치 사춘기 소년 같았다.
"주인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회사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을 하고, 더 오랫동안 회사를 위해 헌신합니다. 우리는 회사에 전문가들이 아닌 주인 의식을 갖춘 사람들을 끌어모았습니다. 전문가들은 회사를 경력 쌓기의 대상으로 봅니다. 삼성에서 2년, LG에서 4년 근무하고 또다시 회사를 옮기죠. 이들은 스스로가 좋은 커리어를 쌓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런 사람들을 원치 않습니다. AB인베브에서 10년, 20년 계속 함께 일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들, 그들이 주인 의식을 갖춘 사람들이죠."
―어떻게 그런 인재를 모을 수 있겠습니까?
"뛰어난 인재는 더 뛰어난 인재를 끌어들입니다. 뛰어난 인재들은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서로에게 배워가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전시킵니다. 기업은 이런 인재를 모음으로써 더 뛰어난 인재를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이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며,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 겁니다.
그런데, 기업가들이 꼭 명심해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2류 직원은 2류 직원들을 모은다(The mediocre people attract more of the same)'는 점입니다. 재능이 없는 사람들은 쉬운 목표와 편안함을 추구합니다. 도전하지 않고, 안전지대에 머물려고 합니다. 욕구도 없고, 동기 부여도 없이, 그저 자리만 유지하려고 합니다. 회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굴러가는 조직입니다. 2류 직원들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회사도 안전지대에 머물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1류 직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저희는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스카우트합니다. 바로 지난주, 프레드(Frederico Freire·한국 오비맥주 사장)가 고려대에서 DPC를 설명하는 채용회를 열었습니다. 학생들 가운데 이런 기업 문화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싶어 하고, 회사에 입사한 다음 떠나지 않습니다.
보통 회사는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먼저 입사한 사람이 항상 자신보다 선배입니다. 우리는 그 반대입니다. 프레드가 저보다 낫다면, 그는 제 자리를 충분히 차지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제가 이 회사에서 10년 더 근무했다고 하더라도요. 훌륭한 인재는 자신들이 한 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이를 인정받기 위해서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합니다. 그것이 뛰어난 인재가 좋아하는 환경입니다. 보통의 연공서열대로 선임자를 상사로 모셔야 하는 보통 회사는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난 다음, 브리토 사장에게 오늘 계획이 어찌 되는지 물었다. 그는 신나는 목소리로 "지금부터 프레드와 함께 서울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시장조사를 간다"고 답했다. 그는 출장 때마다 현지 시장을 찾아다닌다. 한 번 나가면 서너시간씩 돌아다니면서 레스토랑이나 호프집 30~40곳을 찾아간다.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는 세상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브리토 사장은 1년에 절반 정도 해외 출장을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