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CEO의 함정… 다 챙기려다 다 놓친다

People 최현묵 기자
입력 2015.05.23 03:03 수정 2015.05.24 18:11

[Cover Story] 글로벌 경영 컨설팅 회사 AT커니 요한 오릭 회장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빌딩 40층 AT커니 한국사무소 회의실. 커다란 통유리 너머로 한강과 주변 고층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요한 오릭(Aurik·56) AT커니 회장은 인터뷰 시작 전 창가로 가서 한참 동안 경치를 보며 "환상적(fascinating)"이라고 감탄했다. 그는 "한국이 이뤄낸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넥타이는 매지 않았고 드레스셔츠 맨 윗단추는 풀어놓은 채였다. "평소에도 노타이 복장인가?"라고 묻자 오릭 회장은 "금융인들을 만날 때를 빼곤 노타이 차림으로 다닌다"며 "요즘 구글 등 IT 기업은 물론, 대부분의 소비재 기업인들도 노타이 복장"이라고 답했다.

AT커니는 40개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경영 컨설팅 회사로, 총 직원이 3500여명에 이른다. 월마트와 코카콜라 등 글로벌 기업들을 컨설팅하고 있다. 2014년 경제 매체 24/7 월스트리트가 선정한 '직원 평균 연봉이 높은 미국 기업' 4위(13만5000달러)에 올랐으며, CNN머니 선정 '2014년 MBA 스쿨 졸업자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하는 100대 기업' 중 49위에 랭크됐다.

토픽 이미지
오릭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뭘 묻고 싶으신가요?"라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사 수장으로 각국 비즈니스 리더, 정책 결정자들을 상대해온 그런 모습일 것이다. 1989년 AT커니에 입사한 그는 2013년 AT커니 회장직에 올랐다. 그는 "회장이 된 후 1년에 35주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고객들과 만나고 있다"고 했다.

"아무도 CEO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대표로서 일반적으로 CEO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십니까?

"20년 전에 비해 요즘은 CEO로 일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CEO는 매우 고독한 직업입니다. 회사 내의 그 누구도 그에게 불편한 진실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CEO는 업무 시간의 80~90%를 행정적 업무에 쓰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하루 종일 이메일 답장만 쓰고 있는 겁니다. 물론 그런 업무도 중요합니다만, CEO에게 필요한 건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겁니다. 행정 업무를 아랫사람들에게 위임하고, 다른 회사 사람들,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할 시간을 갖는 게 좋습니다. 대학교수, 석학들을 만나서 전혀 다른 시각을 접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회사가 속한 산업 분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체적 관점에서 넓은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습니다. 당장의 현안뿐 아니라 내년, 내후년에 우리 회사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전략적 사고가 중요합니다. 물론 매우 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게 바로 제가 CEO들에게 하는 조언의 핵심입니다."

―수십년간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CEO들을 지켜보셨는데,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우선 CEO들의 수명이 매우 짧아졌습니다. 20년 전엔 5~6년씩 재임했는데 요즘은 2~3년에 불과합니다. 권위적인 리더십 스타일도 예전엔 잘 통했는데 이제는 통하지 않습니다. GE의 잭 웰치 전 CEO도 요즘같으면 성공 못했을 겁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기보다는 그들이 사랑하는 일, 꿈꾸던 일을 한다고 느끼도록 영감을 주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CEO를 하기에 더 힘들어진 동시에 더 재미있어진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컨설턴트는 본래 오만한 사람들, 우린 조금 덜 오만하다"

오릭 회장의 부친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작은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했다. 집안에서 대학을 나온 건 오릭 회장밖에 없을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는 "다른 가족들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경영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다른 컨설턴트들과 달리 오릭 회장은 역사학과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갖고 있다.

―역사학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컨설턴트가 됐습니까?

"일반적인 선택은 아니었죠. 대부분의 컨설턴트는 엔지니어링이나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들입니다. 80%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컨설팅 분야도 변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회사나 경쟁사들은 물리학, 우주공학, 정치학, 법학, 역사학 전공자를 뽑습니다. 고객사의 미래 전략 수립과 그 실행을 도와주려면 다양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필요합니다. '대인관계 기술(people skill)'도 중요합니다. 전략 수립은 서류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실제로 고객사가 전략을 실행하는 걸 도우려면 좋은 대인관계 기술을 가진 컨설턴트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전공자들을 한 팀으로 묶어서 고객들에게 컨설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역사학을 전공한 제가 이 업계에서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지만, 갈수록 덜 특별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 독일 베를린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AT커니 사내 축구 월드컵’ 시상식 모습. /AT커니 제공
―어떻게 최고의 인재를 유치하십니까?

"우리가 경쟁사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일하는 방식입니다. 우리 회사가 컨설팅해온 고객사들과 만나서 '왜 우리랑 일하는가?'라고 물으면, 그들은 항상 '당신들이 일하는 방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채용하는 사람들의 유형, 우리가 일하는 방식 등이 다르기 때문이란 겁니다. 우리는 협업에 강합니다. 우리 회사 내부의 협업이나 고객사들과의 협업에서 모두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 오만하지(arrogant) 않습니다. 대부분의 컨설턴트들은 매우 오만합니다. 그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회사가 고객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봐온 데 따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AT커니 사람들은 다른 회사에 비해 약간 덜 오만합니다.(웃음)"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컨설팅 회사에서 어떻게 팀워크를 이끌어 내십니까?

"우선 팀 플레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예 뽑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컨설턴트는 25~30세 때 일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채용할 때 학점도 보지만 소통 능력, 팀플레이 능력도 중요한 채용 기준으로 삼습니다. 지원자가 어렸을 때 체스를 잘했는지 혹은 축구를 즐겼는지를 보는 것 등입니다. 축구를 즐겼다면 사회성이 좋다는 의미이고, 체스를 잘했다면 대체로 머리만 뛰어난 괴짜일 경우가 많으니까요."
AT커니의 지난 20년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과 같았다. 1926년 창업 이래 파트너십으로 운영되던 이 회사는 1995년 IT(정보기술) 기업 EDS에 인수된 후 10년간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합병 당시 기대했던 시너지는 미약했던 반면, 컨설팅사의 근간인 컨설턴트들의 사기는 곤두박질쳤다. 결국 2006년 파트너 177명이 공동출자해서 EDS로부터 경영권을 되찾아왔다. 그 이후 회사는 2배 가까이로 커졌다. 현재 파트너 수는 320명, 작년 매출은 11억 달러를 넘는다.

10년 새 2배로 성장 “비결은 주인의식”

―최근 급성장한 요인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설명 가능합니다. 주인의식(ownership)입니다. 우리는 매우 수평적인 지분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지분은 거의 균등하게 배분돼 있고, 대표를 뽑을 때나 회사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파트너당 한 장씩 투표권을 갖습니다. 저 역시 파트너들의 투표로 뽑혔습니다. 매우 민주적 구조죠. 이런 민주적 구조 때문에 리더로서 힘들기도 하지만, 민주적이기 때문에 파트너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갖습니다.”

―조직의 수장으로서 파트너들이 싫어하는 일을 지시해야 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파트너들 간의 연합체가 아니라, 파트너들이 하나로 뭉쳐있는 회사입니다. 모두가 한배에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죠. 만약 우리 일본 법인이 망한다고 하면 파트너들 전체가 그 손실을 분담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모든 파트너가 어려움에 처한 동료들을 도와야 하는 처지에 있는 겁니다. 그게 스스로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죠. 이런 조직 구조가 통일적인 리더십을 행사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보다는 설득을 주로 합니다. 그게 제 스타일입니다. 전 격식을 따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 성장 배경 때문에라도 그렇습니다. 때때로 일이 잘못돼가고 있다고 느낄 때에도 지시를 하기보단 설득에 나섭니다. 파트너를 설득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모두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고 매일 CEO를 만나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강압적으로 나간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고 비생산적일 겁니다. 저는 동료 파트너로서 그들을 설득합니다.”

―회장님이 말하는 ‘최고’는 어떤 의미입니까?

“직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려서 최고가 되도록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입 직원부터 파트너들까지 모든 구성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직무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 요인이 올해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소
요한 오릭 회장 /이진한 기자
―올해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정학적 요인입니다. 가장 염려되는 요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입니다. 러시아 경제는 외부 투자자들의 자금이 유출되면서 급격히 나빠지고 있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장 우려하는 건 서방과의 갈등보다 국내 정치적 영향력의 상실입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힘이 없는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경기 악화로 국내 여론이 나빠지는 것을 우려한 것이 더 컸다고 봅니다. 러시아가 미국과 견줄 만한 핵강국이기 때문에 러시아 문제는 전 세계에 가장 큰 지정학적 위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중동 정세가 우려스럽고, 다음으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우려합니다.”

―일본 아베노믹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2년 전에는 긍정적이었으나 지금은 부정적으로 봅니다. 아베 총리는 실제로 구조개혁을 이뤄낸 게 없습니다. 아베 총리는 높은 정치적 지지율을 갖고도 제대로 된 개혁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미국 경제에 대해선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매우 긍정적(bullish)입니다. 첫째, 인구가 급증하고 있고, 둘째,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가장 혁신적인 문화를 갖고 있고, 셋째, 셰일 석유·가스 등 에너지 산업이 호황입니다. 넷째, 경제 개혁이 비교적 잘 이뤄졌습니다. 정치는 엉망이지만 경제 제도는 정치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개혁을 이뤄왔습니다. 미국은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시장이자 가장 성장이 빠른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문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리스는 매우 작은 경제입니다. 따라서 그렉시트의 충격도 우려하듯이 그리 크진 않을 겁니다. 더 큰 문제는 그리스가 나토(NATO) 회원국이란 점입니다. 경제적으로 그리스는 중요하지 않지만 지정학적으로 그리스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기업 지배구조, 한국의 경제 발전을 따라잡지 못했다

―요즘 한국 대기업들은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꼭 그렇게 보진 않습니다. 현대기아차는 언젠가 도요타를 꺾을 만한 성장 경로를 밟고 있습니다. 폴크스바겐 사람들에게 ‘누구를 제일 두려워하나?’라고 물으면 그들은 현대기아라고 말합니다. 물론 예전과 같은 고속 성장은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한국이 저임금에 기반한 생산성 증대를 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지식산업에서 경쟁해야 합니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이를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의 구조가 이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아우르는 재벌 구조로는 지식경제 시대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습니다. 재벌이 혁신을 할 수 있는 유연한 기업 구조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기업 지배구조가 한국의 국가 발전이나 경제 발전을 따라잡지 못했다고 봅니다.”

―재벌기업 관계자들은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린 GE의 예를 들며 항변합니다만.

“GE가 여전히 생존해 있기는 하죠. 하지만 GE의 주가는 몇 년 전에 비해 3분의 1로 떨어졌습니다. 10년 후에도 삼성은 살아남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얘기하는 건 생존 차원이 아닙니다. 문제는 한국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고 새로운 기업들을 키워낼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런 혁신이 삼성과 같은 회사에서 나오진 않을 겁니다. 새로 창업하는 스타트업에서 나올 겁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대기업이 변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괜찮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좌절감을 겪고 있습니다.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부모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현재 젊은이들의 부모 세대는 대기업들이 급성장하던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삼성, 현대에 들어가라’고 말할 겁니다. 부모 세대에겐 거대한 건물에서 일하는 게 성공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라면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창업을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부모님들은 말릴지 모르지만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옳은 길이다’라고 당당하게 밀어붙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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