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지성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년 초판 발행) 6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여기까지 읽어 오면서 이미 한참 전부터 수많은 어려움과 맞닥뜨렸을 것이다. 그중 일부는 너무나 심각해서 지금까지도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신중을 기해 언급하건대 그런 난점들 대부분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며, 정말로 문제인 것이 있다 해도 나의 이론에 치명적일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윈은 아예 한 장(章)을 할애하여 반대자 입장에서 어떤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지까지를 검토하고 있었다. 만일 '과학적 회의주의자'를 논리와 증거에 기초하여 충분히 의심해본 후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라고 규정했을 때, 자신의 이론까지를 의심해보는 다윈이야말로 과학적 회의주의의 '끝판 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성찰적 태도는 성공을 위한 좋은 전략이기도 하다. 실제로 다윈의 이런 지나친 공정성 때문에 반대자들은 새로운 문제 제기를 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의 자연선택 이론은 당대의 지적 권위와 주류 사회에서 온갖 의심과 박해를 받았음에도 지난 150여년 동안 성숙한 과학 이론으로 진화해 왔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철옹성 같던 창조론을 혁파한 진화의 증거와 논리의 힘이지만, 그 힘을 장롱 속에 묻어두지 않고 끄집어낸 것은 다윈의 지적 용기였다.
다윈만이 아니었다. 16~17세기 천문학 혁명(지동설)의 주인공인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는 거의 1500년을 지배해온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천동설)에 계란을 던졌고, 결국 바위는 깨졌다. 코페르니쿠스는 천문 현상을 더 단순하게 설명하는 논리 체계를 고안함으로써, 그리고 갈릴레이는 손수 만든 망원경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관찰함으로써 과학적 회의주의자의 고단한 길을 걸었다. 이들의 꼼꼼한 용기가 없었다면 인류의 지성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Wis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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