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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富의 지도' 바꾸는 중국 영웅호걸들… 그들에겐 6가지'야망의 DNA'가 있다

Analysis 이나리 제일기획 비욘드제일본부장
입력 2015.02.07 03:03
중국이 세계 부(富)의 지도를 바꾸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앞세운 신흥 창업가들 덕분이다. 이들에겐 여섯 가지 공통점이 있다.

1. '천하제패'를 향한 열망

중국 역사 속 영웅호걸의 꿈은 중원을 제패해 천하 통일을 이루는 것이었다. 주원장, 유방, 마오쩌둥이 그랬다. 야망의 DNA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마윈(馬雲·50)은 1999년 항저우의 20평 아파트에서 알리바바를 창업할 때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인터넷 회사가 될 것이다. 글로벌 회사를 만들어 이베이를 뛰어넘겠다."

이런 엄청난 포부와는 달리 당시 알리바바의 실제 상황은 식대가 부족해 마윈의 아내 장잉이 삼시 세 끼를 직접 지어 날라야 하는 정도였다. 15년 뒤, 정말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을 일궈낸 마윈은 기업공개를 앞둔 투자설명회에서 또 한 번 호언장담한다. "102년간 지속되는 기업을 만들겠다." 1999년 창업했기 때문에 102년을 견디면 3세기를 지속한다는 의미다.

중국 검색시장의 75%를 장악한 바이두는 애초 B2B 서비스 기업이었다. 하지만 창업자 리옌훙(李彦宏·46)은 네티즌을 직접 상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주주들은 바이두가 직접 검색사이트를 시작하면 기존 고객이 떨어져 나간다며 거세게 반대했다. 이사들의 반대가 이어지자 평소 온화하고 이성적인 리옌훙이 돌연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외쳤다. "새 사업을 못 할 거라면 다 때려 치워!" 이사회는 두 손 들고 말았다.

2. 겁 없는 실행, 폭풍 같은 공격력

땅 넓고 인구 많은 중국은 무한 경쟁이 일상화된 곳이다. 창업가들은 종종 비즈니스계를 무협지 세계에 비유한다. 한번 전쟁이 시작되면 가용 자원을 모두 투입해 폭풍같이 몰아친다. 승부수를 띄우는 것이다. 이는 당장의 매출보다 시장 장악력 확대가 중요한 ICT 비즈니스에 잘 맞는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기업 JD닷컴의 류창둥(劉强東·41) 회장은 애초 오프라인에서 전자제품 유통업을 했다. 2002년 사스(SARS) 공포가 시작되면서 극심한 불황이 시작됐다. 그는 온라인으로 눈을 돌려 전광석화 같은 실행력으로 뛰어들었다. 오프라인 매장은 모두 정리하고, 유치한 자금의 대부분을 중국 최고의 물류 시스템 구축에 쏟아 부었다.

샤오미는 '어떻게 저 가격이 가능할까' 싶은 고사양 초저가 전략으로 단번에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뒤흔들었다. 알리바바와 이베이의 한판 승부도 유명하다. 2003년 이베이는 중국 내 주요 포털들과 독점 광고 계약을 맺는 등 대대적인 대륙 공략에 나섰다. 자금과 영향력 모두 약세이던 알리바바는 유료 회원제를 3년간 무료로 전환하는 초강수를 썼고, 이베이는 중국에서 철수했다.
3. 힘의 흐름 타는 융통성과 적응력

지난주 알리바바와 중국 정부의 갈등이 세계의 주목을 모았다. 정부가 '짝퉁' 유통, 뇌물 수수 등 알리바바의 불법 행위를 적시한 백서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알리바바는 하루 이틀 불만을 표시하는 듯했으나, 결국 마윈이 직접 담당 국장을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중국 기업들은 어쩔 수 없는 '정부 리스크'를 안고 있다. 중국 신흥 창업가들은 결코 정부에 반(反)하지 않는다. 양회 같은 정치 행사에도 적극 참여한다. 정의감이나 원칙 고수보다는 철저히 실리를 따른다.

중국 둥화대 우수근 교수는 저서 '중국을 이해하는 9가지 관점'에서 "전란, 기아, 약탈과 살해, 숙청으로 얼룩진 가혹한 역사에서 수천 년간 거대한 대륙에 존재했던 건 단지 '개인'이었다. 중국인은 절대 남을 신뢰하지 않는다. 믿는 건 오직 돈뿐"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인의 배금주의 이면에는 자유와 안전에 대한 갈망이 숨어있다.

힘의 흐름을 탈 줄 아는 예민한 감각은 앞선 트렌드를 재빨리 잡아내는 데 유용하다. 샤오미의 레이쥔(雷軍·46)은 이런 말을 했다. "성공은 성실함만으로 이룰 수 없다. 가장 유망한 시장을 찾아 흐름을 타야 한다.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 그가 찾은 '태풍'은 모바일 인터넷이었다.

4. 배우고, 모방하고, 재창조한다

마화텅(馬化騰·44)의 텐센트가 처음 내놓은 온라인 메신저 OICQ는 미국 AOL의 ICQ를 이름에서부터 대놓고 베꼈다. 이후 벤치마킹한 건 한국 싸이월드의 유료 아바타 서비스였다. 2012년엔 카카오에 720억원을 투자한 뒤 그 노하우를 속속들이 파악해 자사 서비스인 위챗에 적용했다.

샤오미의 레이쥔 또한 옷차림부터 프레젠테이션 기법까지 애플의 스티브 잡스 창업자를 노골적으로 카피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대단한 건 단지 모방에 머물지 않고, 영리한 '재창조'를 통해 중국 시장에 최적화된 제품을 재빨리 내놓는다는 사실이다. 텐센트의 마화텅은 "많은 중국 기업이 외국 모델을 모방하지만 대부분 망한다. 텐센트가 성공한 건 남들이 고양이를 보고 고양이를 그릴 때, 고양이를 본떠 호랑이를 그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윈은 이베이와 치열한 경쟁 당시 "우리는 양쯔강 악어이고 이베이는 바닷속 상어다. 바다는 몰라도 강에서라면 우리가 이긴다"고 자신했다.

5. 포기를 모르는 집념과 인내심

중국의 신흥 창업가들은 실패에 굴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갈수록 외려 더 큰 판을 벌인다.

JD닷컴의 류창둥은 대학 3학년 때 아버지 돈을 빌려 식당을 차렸지만, 몇 달 안 돼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러나 일본계 보험회사에 취직해 2년 꼬박 돈을 모은 뒤 아버지 빚부터 갚고 다시 창업에 나섰다.

쥐메이닷컴 창업자 천어우(陳歐·31)는 싱가포르 유학 시절이던 20대 초반, 온라인게임 플랫폼 가레나(Garena)를 창업했다. 승승장구 중이던 2008년 돌연 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투자자가 매력을 느낄 만한 학벌과 네트워크가 필요함을 느낀 것이다. 그는 경영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유학을 감행했고, 거기서 만난 다이위썬(戴雨森)과 새 회사를 창업했다. 처음엔 온라인 광고 서비스를 내놨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대로 파산할 순 없다는 생각에 그는 3일 밤낮을 매달려 화장품 판매 플랫폼을 구축했다. 오늘날의 쥐메이닷컴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나스닥 상장을 통해 2억5000만달러를 거머쥐었다.

6. 응집력 강한 관시 네트워크'

마윈은 알리바바 출범 당시부터 함께한 18인의 '창업 공신'들과 지금도 사적으로나 사업적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윈은 아직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도 전인 2000년, 고향 항저우에서 인터넷 포럼을 개최했다. 마윈은 바쁜 창업자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무협소설의 거장 김용을 사회자로 초청한 것이다. 그의 열성 팬인 넷이즈의 딩레이, 시나닷컴의 왕즈동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마윈은 2006년엔 저장성 출신 사업가들을 위한 사교클럽 '장난후이(江南會)'를 설립했고, 중국 산업계 최고의 관시 네트워크로 작동했다.

레이쥔은 창업할 때 구글 출신 엔지니어 린빈(林斌)을 시작으로 6명의 인재를 끌어모았다. 회사 이름을 샤오미(중국어로 '좁쌀'이란 뜻)라 지은 것은 이들 초기 멤버와 좁쌀 죽을 나눠 먹으며 사업 구상을 함께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중국 ICT 창업가들이 일취월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실리콘밸리 화교 네트워크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마윈이 투자자이자 멘토인 손정의 회장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중국계 제리 양 야후 창업자 덕분이었다. 세월이 흘러 세계적 거부가 된 창업가들로 인해 실리콘밸리의 중국계 파워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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