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김형태의 '예술과 금융'] 美경제 프레임, 들라크루아 그림처럼 바뀐다

Opinion 김형태 조지워싱턴대 객원교수
입력 2014.11.15 03:02

新고전주의 한동안 득세… 선과 색 분명한 그림처럼 질서있고 이성적인 경제가 금융위기 이후 세상을 지배 실물·금융 사이엔 칸막이 양적완화 종료의 의미… 현실경제는 때론 狂的 이성·격정 충돌하며 발전 디오니소스적 예술처럼 속박과 경계 허물어질 것

김형태 조지워싱턴대 객원교수
그림을 보다 보면, 주제는 비슷한데 확연히 느낌이 다른 그림이 있다. 니체는 예술 작품을 '아폴론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로 구분했다. 아폴론은 빛의 신(神)이며 순수하고 고상하며 이성적인 절제의 신이다. 바쿠스라고도 하는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의 신이다. 충동적이고 광적이며, 속박과 경계를 허무는 해체의 신이다. 니체의 기준에서 보면 그리스와 로마를 동경하는 신고전주의는 아폴론적 예술이며, 격정적 낭만주의는 디오니소스적 예술이다. 예술의 역사를 보면, 마치 호황과 불황, 정상과 위기가 거듭되는 경제처럼 아폴론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앵그르의 질서 정연한 아폴론적 작품

19세기 초·중반 프랑스의 두 거장 앵그르와 들라크루아는 각각 아폴론적 미술과 디오니소스적 미술을 대표한다. 앵그르는 당시 주류였던 신고전주의의 거장이었고, 들라크루아는 신고전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던 낭만주의의 선봉장이었다.

'왕(王)'이라는 비슷한 주제를 얼마나 다르게 그릴 수 있는지 살펴보자. 앵그르의 '왕좌에 앉은 나폴레옹 1세'는 황제로 즉위하는 나폴레옹 1세를 묘사하고 있다. 근엄하게 앉아 기다란 황제봉 두 개를 들고 있는 구도는, 전통적으로 제우스신을 그릴 때 화가들이 썼던 것 그대로다. 나폴레옹의 모습은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곧고 빳빳하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거나 휘지 않을 자세다. 하얗고 붉은 황제복에 휘감겨 있는 얼굴은 검정 배경에 대비되어 과장되게 빛난다. 인체의 윤곽선이 명확하기 때문에 인물과 배경의 경계가 확연히 구분된다.

수직으로 선 꼿꼿한 자세, 그리고 사선으로 길게 뻗어 있는 두 황제봉이 역삼각형 구도를 이룬다. 전형적 직선 구도다. 형태와 색이라는 회화의 기본 골격에서 보면, 선과 형태가 색을 지배하는 그림이다. 그림에 쓰인 하얀색, 검은색, 진홍색은 채도가 매우 높아 탁하지 않고 맑고 순수한 느낌을 준다. 구성도 질서 정연하고 한 치 흐트러짐이 없기 때문에, 물리학 용어로 표현하면 엔트로피가 매우 낮은 작품이다.

들라크루아의 격정적인 디오니소스적 작품

인위적이고 이성적인 앵그르의 그림을 참지 못하고 극복하고자 한 화가가 바로 들라크루아다. '사르다나팔로스의 죽음'이란 작품을 보자. 사르다나팔로스는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이다. 반란군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 궁전 하렘의 여인들을 몰살하는 장면을 상상해 그렸다.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요, 전형적인 디오니소스적 그림이다. 격정적 몸부림, 마치 피가 흐르는 것 같은 진홍색 침대보, 여기저기 어지럽혀져 있는 보물… 모두가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다. 그래서 엔트로피가 높은 작품이다.
팔을 괴고 비스듬히 누워 몰살 장면을 바라보는 왕의 모습은 앵그르가 표현한 곧고 뻣뻣한 나폴레옹과 뚜렷이 대비된다. 윤곽이 희미해 사람들과 배경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고, 격정적 색이 뒤섞여 몸부림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화면을 주도하는 검은색과 붉은색도 채도가 낮아 탁하다. 색의 흐름과 조화만으로도 그림이 될 것 같은 그림, 즉 색이 형태를 주도하는 그림이다. 미 연준 의장을 역임한 그린스펀이 처음 말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란 경제 용어가 꼭 들어맞는 그림이다. 빅토르 위고는 이 그림을 낭만주의 시대로 접어드는 전환점이 되는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순환하는 아폴론경제와 디오니소스 경제

경제에도 앵그르 그림처럼 정적이고 이성적인 경제가 있고(아폴론 경제), 들라크루아 그림처럼 격정적이며 비이성적인 경제가 있다(디오니소스 경제). 시기적으로 보면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전 10년간은 광기와 격정이 넘쳐 흐르는 디오니소스 경제였다. 마치 죽음을 눈앞에 둔 사르다나팔로스 왕의 요동치는 궁전처럼 말이다. 이후 세계경제는 안정과 정적인 질서가 강조되는 아폴론 경제로 복귀했다. 앵그르 그림의 뚜렷한 윤곽선처럼 정부와 시장 간, 실물과 금융 간, 그리고 은행과 자본시장 간에 칸막이가 높게 쳐졌다.

그런데 합리적으로 잘 돌아가는 경제만이 정상이고, 격정이 넘쳐나는 경제, 위기에 빠진 경제는 비정상이라는 생각은 그릇된 생각이다. 앵그르와 들라크루아가 서로 충돌하고 서로를 극복하며 발전하듯, 정상과 위기가 서로를 극복하고 순환하며 돌아가는 게 바로 정상적 경제다. 때로는 질서 정연하고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무질서하고 비이성적이고 광적이기도 한 것이 엄연한 현실 경제다. 두 힘이 충돌하며 발전하는 예술처럼, 경제도 이성과 격정, 질서와 무질서가 충돌하며 발전한다.

신고전주의가 들라크루아의 격정적 그림의 도전을 받았듯이, 현시점은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절대적 주도권을 잡았던 아폴론 경제가 도전받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미 연준의 양적 완화 종료는 아폴론 경제의 쇠퇴, 그리고 좋든 싫든 디오니소스 경제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경제의 낭만주의, 그리고 이를 선도하는 경제의 들라크루아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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