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Cover Story] 직원 30% 자르고 회사 살린 JAL 회장… "小善은 大惡"

People 최원석 기자
입력 2013.09.28 03:07

2010년 파산 일본항공 3년 만에 부활… 오니시 마사루 회장 이나모리 前회장의 조언 大善은 非情과 닮아 있어 많은 피를 흘리지 않으면 회사는 재생할 수 없어 험난한 구조조정… 회생 4만8000명 직원 가운데 1만6000명 내보내는 매머드 구조조정 단 1년 만에 끝내 年 2조원대 흑자 내며 日 증시에 재상장 "구조조정 단칼에 했다… 안그랬다면 직원들 마음 전부 조각났을 것" 망하기 전 JAL은? 무늬만 민영… 비효율 온상 포퓰리즘 정치에 휘둘려 적자인 줄 알면서도 전국 각지에 노선 늘려 정년 퇴직한 스튜어디스에 月600만원 연금 주게 한 강성 노조의 입김 기업 이념·정책 노선 없이 직원들 제멋대로 움직여

기업은 왜 망할까?

역대 일본 기업 가운데 가장 크게 망했다가 3년 만에 부활한 일본항공(JAL)의 오니시 마사루(大西賢·58) 회장은 "망해 보고서야 무엇이 정작 중요한지 가슴으로 깨닫게 됐다"면서 망해 본 기업 CEO만이 들려줄 수 있는 절절한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아시아 최대 항공사 JAL은 누적 적자를 견디지 못해 2010년 1월 파산 보호(한국의 법정관리 격)를 신청했다. 그다음 달엔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한 사람인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81) 교세라 창업자 겸 명예회장이 구원투수로 영입돼 월급 받지 않고 일하는 회장이 됐다. 당시 사장으로 발탁된 사람이 JAL에서 주로 정비 분야에서 일해 온 지금의 오니시 회장이다.
오니시 마사루(大西賢·58) JAL 회장은 지난 10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망해 보고서야 무엇이 정작 중요한지 가슴으로 깨닫게 됐다”면서 망해 본 기업의 CEO만이 들려줄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 이덕훈 기자
두 사람은 그해 8월 도쿄법원에 회생 계획을 제출했고, 전 직원 4만8000명 가운데 1만6000명을 내보내는 일본 기업사에 전무후무한 매머드 구조조정을 단 1년 만에 끝내 버린다. 그 뒤 2011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2조원대 영업 흑자를 내면서 증시에 재상장한다.

종신 고용이 살아있는 일본, 그것도 직군별로 강성 노조 총 8개가 버티고 있는 노조 왕국 JAL에서 어떻게 전 직원의 3분의 1을 구조조정할 수 있었을까. 이달 초 서울에서 열린 세계여행관광협회(WTTC) 아시아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오니시 회장에게 들어봤다. 작년 2월 이나모리 회장이 JAL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물러나면서 그는 회장이 됐다.

JAL이 망한 이유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무늬만 민영 기업이었던 비효율의 온상, 정부 낙하산의 천국, 포퓰리즘 정치에 휘둘려 적자인 줄 알면서도 전국 각지에 노선을 늘려야 했던 속사정, 정년퇴직한 스튜어디스에게까지 연금을 월 500만~600만원 지급하도록 만들어 놓은 강성 노조, 문제가 자기 재임 기간에 터지는 게 두려워 메스를 대려 하지 않았던 경영진이 그것이다.

오니시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망하기 전 JAL의 경영진은 '조금 손을 대면 아마 조금이라도 좋아지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해 왔어요. 피를 많이 흘리지 않도록 하면서도 개선될 방법을 생각해 왔죠. 하지만 사실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어요. '피를 많이 흘리더라도 당장 수술을 해!'라고 말해야 했어요."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당시 이나모리 회장은 제게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있다'고요. 몇몇 사람에게 작은 선을 베푼다고 한 것이 전체적으로 보면 좋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에게 아주 쓰라린 것을 얘기하는 것이 전체적으로는 아주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전의 경영자들은 '이렇게 하면 피를 조금만 흘리고도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 믿으며 소선(小善)을 반복해 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이 옳지 않았다는 겁니다. 많은 피를 흘리지 않으면 회사는 재생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이며 자비(慈悲)를 경영 철학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이나모리 회장이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있다'며 구조조정의 결단을 촉구한 것은, 기업 경영의 어려움을 새삼 깨닫게 한다.

어떻게 전 직원의 3분의 1을 구조조정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오니시 회장은 몸을 앞으로 내밀고 한마디 한마디 힘을 실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계속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요. 저는 일본항공이 살아남기 위해선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득했습니다. 비교적 나이 많은 사람으로 한정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 회사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싶습니다. 일본항공을 사랑한다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십시오' 하고 계속 얘기했어요. 그런데 대부분이 'JAL을 사랑한다. 내가 그만두는 것으로 JAL이 살 수 있다면 그만두겠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오니시 회장은 "그 뒤 남은 3만2000명은 모두가 그만둔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절대 이 회사를 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부활을 성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를 다지게 됐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상황이 떠오르는 듯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다시는 되풀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자르는 일을 다시 해서는 결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경영진이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계속 얘기해 왔고, 지금도 계속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적자 행진을 벌이는데, 고비용 구조 일본에서 어떻게 실적 개선을 이룰 수 있었습니까.

"글쎄 JAL의 비밀 같은 것은 없습니다. 아마도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도 적자 노선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왜 없애지 못합니까'라고 물으면 '직원들 얘기를 듣고, 현지 사정을 생각하면 없앨 수 없다'고 할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망하기 전 일본항공과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노력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훨씬 더 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겁니다. 물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우리가 했던 방법 이외에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쪽이 절대적으로 행복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끌면 JAL처럼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은 꼭 해주고 싶습니다."

오니시 JAL 사장(현 회장·왼쪽)이 작년 2월 기자회견하는 장면. 오른쪽은 이나모리 전 회장. / 블룸버그
―이나모리 회장의 애제자라고 들었는데, 그로부터 배운 교훈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나모리 회장이 항상 얘기한 것은 '어떻게 되고 싶은지'를 항상 강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결과가 갑자기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고 싶다. 그렇게 하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행동으로 나오고, 그것이 시작이 돼 결과로 연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옛날 옛적 인류가 어느 날 갑자기 불을 일으킨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불을 피우고 싶다, 불을 피우고 싶다'고 계속 강렬하게 원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불을 피울 수 있었을 겁니다. 이나모리 회장이 항공 업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 알 리가 없지요. (그는 1959년 교세라를 창업한 이래 소재·전자 업계에서 반세기를 보냈다.) 그는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식의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어요. '사람으로서 올바르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기본에 관한 것을 계속 강조했어요. 마치 부모의 가르침을 받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전문가들이라면 일본항공에도 얼마든지 있었는데, 이들이 못한 것을 이나모리 회장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결정적인 것은, 이나모리 회장 얘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닌가였습니다. 예전에 JAL은 다른 사람이 조언해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망한 다음에야 처음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정말 솔직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백지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에 이나모리 회장이 여러 얘기를 한 것이 정말 가슴속에 사무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나모리 회장이 JAL에 오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지요. 하지만 망하기 전에 이나모리 회장이 왔다면 JAL 구성원들이 그가 말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겼을까요?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년 걸릴 구조조정 1년 만에 끝내

―이나모리 회장과 다른 CEO의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역시 강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나모리 회장이 JAL에 왔을 때, 그는 세 가지 대의(大義)를 강조했습니다. 첫째 이 회사를 재생시켜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일본 경제에도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남은 3만명 넘는 직원의 고용을 반드시 지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일본 항공 업계를 경쟁 환경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항공이 망하면 전일본공수(全日空·ANA) 독점 체제가 되니까 소비자를 위해 좋지 않으며, 경쟁 관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지요.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 그가 일본항공 회장으로 왔을 때는 이미 79세였는데, 하루 24시간 일본항공을 재생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것만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가 결과로 나타난 거지요."

―구조조정을 빠른 속도로 진행하셨는데, 일본 문화에서는 이례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나모리 회장과 제가 오기 전까지 당초의 구조조정 계획은 3년에 걸쳐 서서히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체제 즉 이나모리 회장과 저의 체제에서 경영진 간에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결론은 '구조조정은 단번에 빨리 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조조정을 서서히 3년에 걸쳐 했더라면 직원들 마음이 전부 조각나 버렸을 겁니다. 단번에 끝내버려서 남은 직원이 전원 일치단결해서 새로운 목표로 나아가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 구조조정 계획을 뜯어고쳐야 했기 때문에 법원에 회생 계획을 내는 것도 늦어졌다. 당초 2010년 6월에 제출하기로 돼 있었는데, 2개월 늦어져 8월 말에 제출했다.

"회생 계획 제출이 늦어지자 언론에서는 '역시 일본항공은 재생 불가능이다. 회생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는 것 봐라' 하는 식으로 엄청나게 때려 댔지만, 어차피 각오한 것이었어요."

JAL이 구조조정한 것은 인력뿐만이 아니었다. JAL은 이전까지 정치인 눈치 보느라 울며 겨자 먹기로 유지하던 적자 노선을 대폭 없앴다. 2009년 67개에 이르던 국내 노선 중 수익이 안 나는 20개 노선을 1년 만에 없애 버렸다. 국제선까지 포함해서 247개에 이르던 노선이 2012년 초 173개로 30%가 줄었다. 항공기는 대형, 중형, 소형에 각각 한두 기종으로 가짓수를 줄여 규모의 경제를 키웠다. 이를 통해 구매는 물론 부품·정비 비용까지 낮출 수 있었다. 보유 비행기의 평균 운행 비용을 20% 낮췄다.

―JAL이 부활에 성공한 데는 물론 이나모리 회장의 리더십이 중요했지만, 결국 성공하려면 구체적 실행력이 필요했을 텐데요.

"JAL을 맡을 당시 이나모리 회장은 78세였습니다. JAL 직원들도 이나모리 회장의 메시지를 모두 글로는 읽어봤겠지만, '정말 어떤 기분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하는 부분까지는 잘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메일이나 편지로도 어렵지요. 역시 직접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나모리 회장과 저, 특히 저는 처음 사장이 된 이후 3년 동안 전혀 쉬지 않고 현장에 가서 직원들을 만났습니다. 쉬는 날은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제로'였습니다."

그는 "3년 동안 회사에 나가지 않은 것은 딱 5일뿐이었다"고 덧붙였다.

"그중 사흘은 아들 결혼식 때문이었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했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또 일본 항공사에서는 12월 31일과 1월 1일 이틀간, 고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공항에 가서 이틀간 거의 자지 않고 인사하는 행사를 엽니다. 이틀간 잠을 못 자 1월 2일 하루만 쉬었습니다(웃음). 그게 2011년과 2012년 이렇게 두 번입니다.

지난 4월 도쿄 하네다(羽田) 공항의 JAL 격납고에서 열린 JAL그룹 입사식 장면. 파산으로 신입채용을 중단했던 JAL은 3년 만에 신입채용을 재개했다. / 블룸버그
모두 제멋대로 이야기하는 회사에서 이념을 공유하는 회사로

―인력 구조조정 후 인사 제도나 신입 사원 채용에서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망하기 전까지 JAL은 직원들에게는 아주 자유로운 회사였습니다. '자유로운 회사란 직원들이 여러 가지를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회사다. 그게 좋은 회사다'라고 모두 생각했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한 가지에 대해 모두가 집중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었어요. 다들 제멋대로 얘기해 버리는 회사, 그것을 자유로운 회사라고 착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업 이념, 즉 우리 회사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이념과 정책을 새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채용할 때에도 '이 아이디어에 찬성합니까' 하고 후보자들에게 묻습니다. (그는 갑자기 양복 안주머니에서 흰색 수첩을 꺼내 보였다.) 이게 우리 직원 모두가 가지고 다니는 수첩인데, 기업 이념이 쓰여 있어요. 우리 마음의 거점, 믿는 구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대를 걸고 JAL에 응시한 이들에게 이것을 보여주고 '우리는 이런 회사입니다. 당신은 여기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습니까. 이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습니까. 충분히 이해했습니까' 하고 묻고 '그렇다'고 답한 사람 중에서만 채용합니다. 다시 말해 '이렇게 되고 싶다'는 목표가 모두 일치하는 회사가 된 것이지요. 예전엔 달랐어요. '아, 선망하는 회사 일본항공' '손 들어! 능력 있나. 음, 능력이 있으니까 채용' 뭐 이런 식이었지요. 그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가는 전혀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는 도쿄대 공학부 출신으로 35년 전 입사했다. 2002년 정비기획실장, 2009년 JAL 자회사이자 소형 항공사인 일본 에어커뮤터 사장을 역임했다. 파산 전이었다면 영업·관리 파벌이 강했던 JAL에서 엔지니어 출신인 그가 사장이 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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