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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사모펀드 大家의 폭탄선언, 재산 95% 기부 빈말로 들립니까

People 워싱턴=이신영 기자
입력 2013.08.31 03:05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그룹' 창업자이자 CEO 本紙에 처음으로 밝혀 "나는 파라오가 아니다 무덤에 돈 가져간들 뭘 할 수 있겠나" 이번 결심은 워런 버핏 등과 함께 2010년 기부서약한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 52년전 케네디 연설이 '기부왕'으로 이끌었다 "국가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50년 동안 찾았다… 그건 기부였다" 재산 95% 기부, 많지 않나-기부를 해보면 "후회된다"란 생각 없어져 "더 해야하는데…" 로 바뀌어 당신에게 돈의 의미는-돈에 집착하지 않아 성공을 가늠하기 위해 돈 버는 것에 관심있을 뿐 돈을 벌게 된 원동력은-펀드 자금 모금할 때 'No'에 익숙해져야 하고 끈덕지게 권유해야… 그래서 890억달러 모았다 그동안 최고의 투자는-중국 생명보험사 지분 8억달러에 사들여 기업공개 뒤 50억달러 벌어

지난 7월 18일 백악관에서 걸어서 15분가량 떨어진 펜실베이니아가(街)의 14층 빌딩.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에서 쏟아져 내리는 조명이 대리석 바닥에 반짝거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서 내렸더니 하얀색 벽에 'Carlyle Group'이라고 쓰인 황금색 간판이 걸려 있었다. 칼라일그룹의 창업자이자 CEO인 데이비드 루벤스타인(Rubenstein·64)을 만나러 가는 길은 돈 냄새가 진동하는 듯했다.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그룹 창업자는 "기부를 자꾸 하다 보면 '아, 후회된다. 왜 기부했을까'라는 생각은 없어지고 '조금 더 할 수 있는데'란 아쉬움이 더 커지게 되더라"고 말했다. / 블룸버그
그가 1987년 재무 전문가 2명과 공동 창업한 칼라일은 현재 1800억달러(약 200조원)를 굴리는, 세계에서 둘째로 큰 사모(私募) 펀드 회사다. 현재 투자 중인 기업 수(237개)로는 1위다. 그 명단엔 던킨도너츠와 허츠 렌터카 같은 회사가 포함돼 있고, 한국의 한미은행(지금의 한국씨티은행)도 한때 포함돼 있었다.

그는 재산 30억달러(약 3조3393억원)로 포브스 10억만장자 명단에 미국 150위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첫 질문을 던져보세요"라고 했다. 백발(白髮)인 그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마법사 간달프처럼 근엄하고 심각한 심판자 모습이었다. 동그란 안경 너머로 기자를 노려봤다.

하지만 인터뷰하는 약 1시간 동안 기자는 여러 차례 폭소를 터뜨렸다. 냉소적 답변 속에 특유의 유머 코드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워커홀릭이라서 하루에 3시간밖에 안 잔다고 들었다"고 첫 질문을 던지자, 그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이렇게 답했다.

"그건 좀 과장된 말이네요. 4시간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직원들에게 전화한다고 들었다"는 질문에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 제 연락을 받기 싫으면 안 받아도 됩니다"라고 했다. 그는 "직원들과 계속 교감하는 것이 저에게 일종의 종교적 활동이거든요"라고 덧붙였다. 인터뷰에 배석한 홍보 이사 울먼씨는 "원래 웃음이 없지만, 같이 오래 일하다 보면 데이비드만큼 정 많은 의리남이 없다"고 했다.

그는 밑바닥에서 성공했다. 부모 모두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며, 우편집배원인 아버지는 연봉 7000달러밖에 벌지 못했다. 미국 볼티모어의 유태인 블루칼라 밀집 지역의 방 2개짜리 작은 벽돌집에서 자란 그는 내성적이고 책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부모는 그가 치과 의사가 되길 원했지만, 시카고대 로스쿨을 나온 그는 로펌을 거쳐 백악관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4년간 일했다. 1980년 카터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했다가 패배했고, 루벤스타인도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법조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느꼈고, 정부에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도박을 감행했다. 창업이었다. 그것도 사전 지식도 경험도 전무한 사모 펀드였다. 윌리엄 사이먼 전 재무장관이 크리스마스 카드 제조 업체에 100만달러를 투자한 다음 되팔아 차익 800만달러를 올렸다는 기사가 계기가 됐다.

칼라일을 창업할 때 블랙스톤이나 KKR 같은 경쟁 업체와 차별화한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첫째, 뉴욕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워싱턴에 본사를 둔 것이었다. 자신의 정치 인맥을 활용하자는 생각이었다. 둘째, 중국이나 벤처기업, 부동산 등 미국 바깥의 기회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사모 펀드가 미국 기업에만 투자할 때여서 주위 반응은 냉랭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아직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시도를 할 때, 사람들은 흔히 '너 미쳤다. 아무도 안 한 것을 왜 하려고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런 건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빌 게이츠에게 '넌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들 수 없을 거야'라고 했고, 스티브 잡스에게도 '컴퓨터 회사를 만들 수 없을 거야'라고 했고, 제프 베조스에게는 '인터넷으로 책을 팔 수 없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희에게 미국 기업에 투자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면 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린 바로 그 글로벌화 전략으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890억달러를 끌어모았다. 천문학적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원동력으로 그는 "'노(NO)'라는 단어를 일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는 매일, 매시간 실패를 경험합니다. 사람들에게 투자를 권유할 때 많은 사람은 '예스'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금을 모집할 때 당신은 '노'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좋은 상품이 있고 좋은 실적이 있으면 상대가 투자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라는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얼마나 끈덕지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는 차가운 이미지와 달리 통 큰 기부자이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모교와 예술 단체 등에 약 2억달러를 기부했다. 지진으로 부서진 워싱턴 기념탑 보수 작업, 멸종 위기에 놓인 판다곰 보존 프로젝트에 기부했고, 최초의 인권선언을 상징하는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대헌장)의 필사본을 경매에서 낙찰받아 미국 문서보관소에 기증했다. 그는 취미가 기부라고 했다.

그는 2010년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과 함께 '기부 서약'에 사인하면서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본지 인터뷰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재산의 95%를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 어느 언론에도 하지 않은 이야기다.

"저와 공동 창업자들은 재산의 95%를 기부할 것입니다. 우린 이집트 파라오가 아니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죽을 때 돈을 같이 묻은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린 돈을 다 못 써요. 아이들에게도 다 못 줍니다. 그렇다면 살아있을 때 그 돈이 좋은 곳에 쓰이는지 보고 죽는 게 낫습니다."

사모펀드 大家 "재산 95% 기부" 폭탄선언

그가 기부왕이 된 사연은 52년 전으로 돌아간다. 1961년. 12세 루벤스타인은 좁은 거실에 앉아 흑백 TV에서 나오는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유명한 취임 연설이다.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마시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어린 루벤스타인은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국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그는 정부에서 일하겠다는 야망으로 법을 공부했고, 지미 카터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 뛰어들어 백악관에 입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가 택한 마지막 길은 사모펀드 창업이었다.

기부왕이 되다

2002년 루벤스타인은 신문에서 백인 남성의 평균 수명은 81세라는 기사를 접했다. 54세인 그에겐 앞으로 살 날이 27년밖에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다시 케네디의 연설이 떠올랐다.

그는 기부를 시작했다. 그는 그해부터 모교인 듀크대(4400만달러), 하버드대(3000만달러), 뉴욕 링컨센터(1700만달러) 등 수십 곳의 단체에 기부하고 자금 모집을 도왔다.

―하지만 재산을 95%나 기부하는 것은 너무 많은 것 아닌가요?

“기부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당신의 돈과 시간으로 다른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삶을 더 살 만하게 해줍니다.”

기부에 대한 그의 지론은 이렇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다. 즉 돈을 쓰는 일, 투자하는 일, 기부하는 일이다. 그런데 돈을 투자해 돈을 벌면 그 돈은 쓰거나 기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버는 것만큼 사야 할 것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돈을 쓰는 데는 기부가 가장 좋은 방법이란 것이다.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은 2세 기업인보다, 1세대 창업자가 더 기부를 많이 한다고 말한 적이 있죠. 2세 기업인이 많은 한국 기업인들에게 당부한다면.

“한국에서는 기부 행위가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보편적입니다. 10억만장자들의 기부 서약이 기부 정신을 고취해 기부 사례가 점점 늘고 있어요. 기부를 해보면 ‘아, 후회된다. 왜 기부했을까’란 생각은 점점 없어지게 됩니다. 대신에 ‘조금 더 해야 하는데’란 생각으로 바뀝니다.”

채식주의자

그는 채식주의자이며 술도 안 먹는다. 골프도 안 친다. “도대체 낙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저는 누구나 지구 상에서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 목적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이뤄야 합니다. 제 목적은 칼라일을 지구 최고의 사모펀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프를 치지 않고도 인생이 즐거울 수 있어요. 골프를 치는 사람은 이해 못 하겠지만.”

카터 대통령 보좌관 시절 그의 별명은 ‘백악관 워커홀릭’이었다. 그는 새벽 2시까지 일했고, 밤에 뭔가 사건이 터지면 언론의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직원이었다. 그는 대통령의 눈에 들기 위해 모두가 퇴근한 새벽에 대통령에게 전달될 결재서류 더미의 맨 위에 자신의 메모지를 올려놓고 퇴근하곤 했다.

―회장님에게 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음….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한계까지 일하면서 돈을 법니다. 살기 위해 버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1987년도에 칼라일을 공동 창업했을 때 저희의 목적은 워싱턴D.C.에서도 사모펀드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버는 데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돈 자체에 광적으로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의 성공을 가늠하기 위한 목적에서 돈을 버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화려한 집이나 요트를 많이 사기 위한 것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세일즈맨이 되다

―블랙스톤의 창업자인 슈워츠먼 회장이나 KKR의 크라비스 회장처럼 MBA 학위도 없고, 금융 전문가도 아니신데, 무슨 배짱으로 사모펀드에 뛰어들었나요?

“법률 학위를 가졌다고 두뇌가 돌아가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업가가 법을 공부했어요. 물론 아주 초창기엔 칼라일의 야망은 작았고, 이렇게 커질지 몰랐습니다. 또 MBA를 하지 않았다고 걱정해본 적이 없습니다. MBA 학위가 있는 인재를 고용해 제 주위를 둘러싸게 했거든요.”

칼라일을 창업한 뒤 금융 전문가인 공동 창업자들은 전문적인 투자 업무를 맡았다. 루벤스타인은 자신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돈을 모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천성에 맞지 않은 일에 성공하기 위해 그는 밑바닥에서 시작했다. 소극적인 성격을 적극적으로 바꿔 발로 뛰며 투자자들을 설득했다. 세일즈맨이 된 것이다.

2년간 제자리걸음을 하던 칼라일은 정치인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며 급성장하기 시작한다. 프랭크 칼루치 전 국방장관을 회장으로 스카우트한 뒤 대형 방산업체 투자에 연달아 성공한다. 또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을 파트너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고문으로, 존 메이어 영국 전 총리를 유럽 책임자로 영입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칼라일은 두고두고 ‘정경유착’이니 ‘검은돈을 굴리는 회사’니 하는 논란에 시달리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부 관료들을 비즈니스에 끌어들인 걸 후회해본 적이 없나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초창기 우리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 신뢰성 높은 정부 관료들의 존재가 칼라일의 신뢰를 높여주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되는 중요한 미팅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칼라일은 워싱턴D.C.에 있지만, 가장 비정치적인 기업이다”라고 하신 적이 있죠?

“네. 전직 관료들과 같이 일하긴 했지만, 저는 정치에 뛰어들거나 연루되는 것은 피했으며, 정치인들에게 돈을 준 적도 없습니다. 물론 지금은 정부 인사나 정치인과 거의 일을 하지 않아요. 우리의 실적 자체가 칼라일의 신뢰를 높여주니까요. 이젠 저희보다 다른 회사들이 정치인을 훨씬 더 많이 동원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투자는 중국 생보사”

―사모펀드의 이름을 ‘가치 증대 펀드(value-added equity)’나 ‘변화 캐피털(change capital)’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바꿔보려는 건가요?

“사모펀드라는 말은 사실 많은 사람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말입니다. 그 말 때문에 언론에서 늘 두들겨 맞죠. 하지만 사실 우리는 ‘사적으로’ 펀드 자금을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실천하고 있다는 게 진실입니다. 그래서 주장하는 건데 아무도 듣지 않네요.”

―그동안 칼라일에서 이뤄낸 최고의 투자는 무엇입니까?

“중국의 생명보험회사 퍼시픽 라이프가 가장 성공적이었습니다(그는 2006년 퍼시픽 라이프의 지분 25%를 8억달러에 매입한 다음 상하이와 홍콩 증시에서 차례로 기업공개를 통해 50억달러를 벌었다).”

최악의 투자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쁜 기억이 떠오른다는 이유로 언급을 피했다. 다만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돈을 잃었고, 미래에도 잃을 것”이라고 했다.

―투자 원칙이 무엇입니까?

“현재 칼라일은 회사를 210개 보유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린 300~400개 정도의 기업에 투자했어요. 우린 먼저 기업을 매수할 때 그 기업이 좋은 경영진을 가지고 있는지, 또는 좋은 경영진을 데려올 수 있는지 봅니다. 둘째, 적당한 가격으로 매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과도한 부채를 져서는 안 됩니다. 셋째, 기업은 상품과 서비스뿐만 아니라 틈새(niche)를 공략할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래 기업의 현금 흐름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며, 연간 20~25% 정도의 수익률을 안겨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황금시대를 맞았던 사모펀드 업계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성장세가 꺾였다. 그는 당시 한 인터뷰에서 “은행이 부채를 갚고 새롭게 대출을 시작하면 다시 사모펀드가 황금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이 그때일까?

“요즘 사모펀드는 저금리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어요. 문제는 좋은 가격에 살 만한 매력적인 매물이 많지 않아요. 지난 6개월~1년 사이에 거래가 많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어요. 아직은 황금시대가 아니에요. 다만 주기적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조만간 회복될 겁니다.”

워커홀릭

최근 그는 일본 아베 총리와 만났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아베 총리는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많은 성과를 냈다’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우리 내각에 와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물론 그 말은 농담이었어요. 그렇게 미팅이 끝났습니다.”

―제가 WPP의 마틴 소렐 회장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창업이란 아이를 낳는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회장님에게 창업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잘 모르겠군요. 마틴이나 저나 모두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가늠할 순 없습니다. 창업이란 어려우며 큰 투자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남을 복제하는 건 창업자가 아닙니다. 창업자는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합니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회장님 같은 10억만장자를 꿈꿉니다. 그들에게 조언한다면.

“열심히 일하고 집중력을 잃지 마십시오. 하는 일에 겸손하십시오. 그리고 사랑하는 일을 찾고 최대한 매일 내가 낼 수 있을 최대한의 시간을 거기에 투자하십시오. 그리고 하드워킹(hard working) 하는 게 하드워킹 하지 않는 것보다 낫습니다.”

기자는 그와 대화하면서 사진도 찍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이렇게 물었다. “취재기자가 사진을 찍으면 돈을 추가로 더 받나요, 아니면 똑같은 돈을 받나요?” 그에게 “추가로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하자 그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진짜 그렇습니까? 그러면 제가 추가 비용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그건 농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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