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홍성태 교수의 '영화로 배우는 경영'] ⑦ 벅시

Opinion
입력 2013.08.24 03:06

낙관적인 CEO… 멋있어 보이지만 불황 닥치면 쉽게 무너져 영화 '벅시' - 라스베이거스 건설 지나치게 낙관 자금난 못 막아 최후 방어적 비관주의 필요 - 경기 불투명할 땐 비관적 기질 CEO가 안정적 성장 거둬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자신감과 의욕에 넘치는 사람들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윤석금 회장도 그랬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원한 풍채에서 느껴지는 그의 '살아 있는 기(氣)'에 매료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사의 신화로 기록될 그가 얼마 전 장시간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국 경제의 눈부신 급성장 뒤에는 대우그룹의 김우중, 율산그룹의 신선호, 제세그룹의 이창우 회장 등 혜성과 같이 나타났다가 안타깝게 사라진 별이 많다.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공통점은 다름 아닌 창업가적 기질이었다. 요컨대 결단력이나 모험심, 임기응변 능력 같은 것인데, 그중에서도 경영학자들이 빼놓지 않고 꼽았던 특징이 '낙관적 사고'이다. 그런데 낙관적 사고가 사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과연 긍정적 역할을 하는가?

1940년대 뉴욕 마피아 출신이었던 벅시 시걸은 조직에서 벗어나 손을 씻고, 합법적이며 정상적인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일을 보러 가던 중 황량한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서 새로운 사업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그리하여 술과 여자, 도박을 조합해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벅시는 뉴욕 마피아의 자금을 끌어들여 '플라밍고'라는 호텔을 오픈하는데, 이를 시발점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라스베이거스다. 그는 카지노 시장이 미처 형성되지 않았음에도 사업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망해, 자신의 환상을 현실로 옮기는 데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는다. 시작은 화려하였으나 결국 자금난을 해결하지 못한 그는 조직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오늘날 카지노와 향락으로 활력이 넘치는 도시가 된 라스베이거스의 기반을 마련한 창업가의 꿈과 사랑, 그리고 고뇌를 영화화한 것이 워런 비티 주연의 영화, '벅시'다.

벅시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가장 치명적인 요인은 그의 지나친 낙관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벅시'에서 투자자들은 "가장 가까운 화장실이 500마일이나 떨어진 사막에다 무슨 호텔을 짓느냐?"고 우려한다. 그러나 벅시의 동료는 "그는 어떻게든 여러분의 돈을 유치하려는 것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꿈을 가진 사람"이라며 벅시를 변호한다.

현실에서도 벅시처럼 낙관적 사고와 진취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업가는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대중은 호방하고 거침이 없는 낙관주의자들에게 매력을 느낀다. 낙관적 사고가 용기와 자신감의 뿌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관론자들은 확신에 넘친 나머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실현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이에 따라 낙관주의를 바라보는 경영학적 입장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낙관적인 경영자가 급성장을 주도하지만, 불황이 닥치면 오히려 더욱 빨리 곤두박질 친다. 반면 비관적 기질의 경영자는 개혁이나 급진적 발전을 추진할 때는 다소 더디지만, 경기가 불안정하거나 불투명한 시기에는 기업을 차분하게 잘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결국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데 낙관론자가 반드시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새로운 시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줄리 노럼(Norem) 교수가 저서 '부정적 사고의 긍정적 영향(The Positive Power of Negative Thinking)'에서 언급한 '방어적 비관주의(defensive pessimism)'라는 용어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비관주의자의 걱정과 불안에서 나오는 스트레스를 동기 유발의 에너지로 활용할 때야 말로 개인이든 조직이든 최상의 성과를 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낙관주의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낙관주의는 자칫 막연하게 잘 될 거라고 믿는 안일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 명예퇴직 후 개인사업을 시작하는 이들 중에 희망적 관측만으로 사업을 밀어붙였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성장이나 변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무모하게 신사업을 밀어붙였다가 주저앉은 기업이 적지 않다.

잘못된 낙관론은 허황한 자신감으로 긴장을 늦추게 하여 실수나 실패를 자초할 수 있다. 저성장이 예상되는 이 시대에 방어적 비관주의야말로 우리의 안전망이 되지 않을까.

화제의 Opinion 뉴스

'암흑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유럽 기업 빈부격차 줄이려면 '범유럽 주식형 펀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인들이 코로나 위험 무릅쓰고 직장에 복귀할까
WEEKLY BIZ가 새롭게 탄생합니다
테슬라 팬들은 좀 침착해야 한다

오늘의 WEEKLY BIZ

알립니다
아들을 죽여 人肉 맛보게한 신하를 중용한 임금, 훗날…
'암흑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유럽 기업 빈부격차 줄이려면 '범유럽 주식형 펀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인들이 코로나 위험 무릅쓰고 직장에 복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