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김형태의 '예술과 금융'] 한국 경제, 꽉 짜인 규범을 바로크처럼 뒤틀어라

Opinion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입력 2013.04.27 03:03

바로크의 창조적 뒤틀림 르네상스의 꽉 짜인 규범 예술가들을 숨 막히게 해 바로크는 정형을 뒤틀면서 억눌렸던 감성 용솟음치게 해 지금 세계 경제는… 아베노믹스는 환율 뒤틀기 남유럽 위기는 과도한 재정 뒤틀기의 결과 지금은 뒤틀림에 의존하는 바로크적인 경제 창조 경제에 필요한 뒤틀림 융합 대상되는 분야 꿰찬 뒤 화학적인 융합 이뤄내야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바로크(Baroque)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포르투갈 말에서 유래했다. 영어로는 '이상야릇하고 기괴하다'는 뜻이다. 르네상스시대의 균형과 조화미에서 벗어나 곡선적 뒤틀림과 극명한 명암 대비를 특징으로 17세기를 풍미한 예술 사조다.

바로크는 정치와 예술에서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모색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기독교 세계가 분열되었고 교황의 권위가 추락했다. 권력의 빈 공간은 어떻게든 채워지게 마련이다. 약화한 교황의 권위를 대신하겠다고 나온 것이 중앙집권적 절대 왕정이었다. 루이 14세 같은 절대 왕정은 그림, 조각, 건축 같은 조형 예술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자 했다.

◇바로크 시대는 뒤틀림의 시대

사실 당시 예술가들을 억압한 것은 교황과 절대 왕정뿐이 아니었다. 역설적일 수도 있지만, 이성과 합리성을 앞세우고 균형과 조화를 강조하는 르네상스의 꽉 짜인 규범이 예술가들을 숨 막히게 했다. 바로크는 르네상스 시대의 규범에 억눌려 있던 인간 감성이 용솟음친 결과이기도 하다.

경제에도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권력자가 생긴다. 투자할 대상이 많은 고성장 시대엔 자금 조달이 중요하다.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금융 중개회사가 힘을 갖는 이유다. 저성장 시대로 가면서 자금의 운용이 중요해진다. 바로 자산운용사가 하는 일이다. 규범과 규제가 엄격한 공모(公募)형 자산운용사도 있지만, 사모투자전문사(PEF)나 헤지펀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자유로운 만큼 창조적으로 '뒤틀' 수 있다. 은행과 증권사가 '르네상스적 금융사'라면 헤지펀드는 '바로크적 금융사'다.

◇엘 그레코, 창조적 뒤틀림의 화가

바로크 시대의 뒤틀림을 대표하는 화가는 엘 그레코다. 그리스의 크레타에서 태어난 그는 베네치아에서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에게 배웠고, 로마를 거쳐 스페인에서 활동했다. 당시로 보면 국제적으로 활동한 화가였다.

1 '라오콘' 2 '그리스도의 세례'
엘 그레코의 대표작 '그리스도의 세례'를 보자. 아래쪽 세례받는 그리스도나 세례를 주는 요한 모두 몸에 비해 얼굴이 너무 작다. 얼굴은 그냥 놔두고 몸만 길쭉하게 잡아 늘인 느낌이다. 외계인 같아 보인다. 뒤틀리고 꿈틀대는 기운이 신비로운 색과 어우러져 화폭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엘 그레코 작품 중에서 뒤틀림의 백미를 보여주는 것은 '라오콘'이다. 고대 조각 라오콘 군상을 재해석한 그림인데, 인체가 휘어지고 비틀어지고 뒤틀려 있다. 20세기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현대적이다.

사실 뒤틀기는 르네상스 직후인 '매너리즘' 시대에도 볼 수 있다.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마돈나' 역시 인체를 잡아 늘였는데, 기계적으로 잡아 늘였으니 새로움이 없다. 같은 뒤틀림인데도 엘 그레코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기존의 형식에만 얽매였던 매너리즘과 달리, 창조적 뒤틀림을 통해 자신만의 회화 공간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경제의 역사는 뒤틀림의 역사

뒤틀림은 경제에도 있다. 어찌 보면 경제의 역사는 뒤틀림의 역사다.

한국 경제의 뒤틀림을 보자. 경제 성장 초기에 수출 원가를 낮추기 위해 노동자가 뒤틀림의 대상이 되었다. 뒤틀린 임금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자본 배분에도 뒤틀림이 있었다. 대기업과 특정 산업에 자본이 집중됐다. 외환위기 이전 고정환율제도 때는 환율의 뒤틀림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한 적도 있었다. 기업이 부채 차입에 의존해 성장을 도모한 것도 일종의 잡아 늘이기요 뒤틀기다. 한때는 기업의 부채가 잡아 늘려졌고, 지금은 가계 부채와 공공기관 부채가 잡아 늘려져 있다.〈그래픽 참조〉

한국뿐만이 아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방만한 통화정책도 경제 뒤틀기요, 남유럽 국가들이 경험하는 경제 위기는 과도한 재정 뒤틀기의 결과다. 최근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환율 비틀기다. 이렇게 보면 최근의 세계 경제는 조화롭게 균형을 이룬 '르네상스적 경제'가 아니라 뒤틀림에 의존하는 '바로크적 경제'다.

◇엘 그레코서 찾은 창조적 뒤틀림의 코드

창조 경제에 가장 필요한 것도 생각과 아이디어의 뒤틀기다. 엘 그레코는 어떻게 창조적으로 뒤틀 수 있었을까. 핵심은 창조적 융합에 있다. 첫째, 그 당시 가장 잘 나가던 그리스, 이탈리아(베네치아와 피렌체), 스페인 미술의 장점을 파악해 자기식으로 융합했다. 어떤 분야든 첨단 시장을 알아야 무엇이 새로운지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둘째, 베네치아 미술에서 색채의 강렬함을, 피렌체 미술에서는 구성의 정교함을 먼저 익혔다. 그리고 그 후에 융합했다. 융합을 잘하려면 융합의 대상이 되는 전공 분야를 먼저 꿰차야 한다. 제대로 아는 분야가 없는데 창조적 융합이 나올 수 없다. 셋째, 엘 그레코의 그림은 부분을 전체에서 분리할 수 없다. 형태와 형태, 색과 형태의 결합이 물리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융합이기 때문이다. 창조적 융합과 뒤틀림, 500년 전 엘 그레코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화제의 Opinion 뉴스

'암흑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유럽 기업 빈부격차 줄이려면 '범유럽 주식형 펀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인들이 코로나 위험 무릅쓰고 직장에 복귀할까
WEEKLY BIZ가 새롭게 탄생합니다
테슬라 팬들은 좀 침착해야 한다

오늘의 WEEKLY BIZ

알립니다
아들을 죽여 人肉 맛보게한 신하를 중용한 임금, 훗날…
'암흑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유럽 기업 빈부격차 줄이려면 '범유럽 주식형 펀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인들이 코로나 위험 무릅쓰고 직장에 복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