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 교정기·스포츠카 업계, 이미 3D 프린팅 혁명
미국 의료 장비 제작사인 '얼라인 테크놀로지(Align Technology)'는 창립 16년 만인 지난해 매출 5억6000만달러를 올렸다. 이는 전년 대비 17% 정도 늘어난 것인데 성장 비결은 3D 프린터이다. 특수 강화 플라스틱으로 틀을 만들어 투명하고 탈·부착이 가능하며 기존 치아 모습을 유지하는 '인비절라인(Invisalign)'이라는 투명 교정기를 3D 프린터로 생산해 전 세계 고객 200만명을 확보한 덕분이다. 매일 투명 교정기 5000~6000개를 3D 프린터로 만드는 이 기업의 주가는 3년 전 대비 360% 올랐다.
텍사스주의 '공군훈련개발(TDF)'이란 훈련 기관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2011년 예산 80만달러(3년치)를 절약했다. 기존 방식으로 만든 비싼 군용 부속품을 구매하지 않고 3D 프린터로 비행기 날개 모형, 연료탱크 등을 찍어내 사용한 결과이다. 미첼 웨덜리 TDF 대표는 "3D 프린팅 기술은 소품종과 맞춤형 생산이 필요한 군 훈련에 꼭 맞는다"며 "향후 10~15년간 공군 훈련 분야에서만 예산 1500만달러가 절감될 것"이라고 했다.
◇"틈새시장 발굴해 수억달러 매출, 정부 예산 절약도… 4개월 걸릴 일을 3주 만에 처리"
세계 1위 기업인 '스트라타시스'에 따르면 산업디자인(기존 대비 시간 절약 96%)과 우주 항공(75%), 자동차(67%) 등이 수혜 업종이다.
자동차 전문 잡지 '탑 기어'가 선정한 '올해의 수퍼카'(2011년)인 람보르기니의 아벤타도르(Aventador). 40만달러짜리로 최대 시속 370㎞를 내는 이 차의 생산 과정에도 3D 프린터가 있다. 파올로 페라볼리(Feraboli) 람보르기니 연구소장은 "탄소섬유로 만든 차체와 무게를 정확히 6분의 1로 축소한 시제품을 만들려면 기존 방식으로는 많은 시행착오에다 평균 4만달러에 4개월이 소요되는데, 3D 프린터를 이용해 단 한 번에 우리가 원하는 디자인대로 뽑아냈다"고 했다.
람보르기니 연구팀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탄소섬유에 근접한 재료와 인건비 등에 3000달러만 쓰고 20일 만에 성공시켰다. 기존 방식에 비해 비용은 93%, 시간은 83% 정도 아낀 것이다. BMW도 3D 프린터를 이용해 범퍼 등 차 부품 부착 과정에 이용할 연장을 개발하고 있다. BMW의 군터 슈미트(Schmidt) 엔지니어는 "똑같은 도구를 만들어도 전통적인 밀링머신이나 CNC로 18일에 420달러가 들지만, 3D 프린터로는 1.5일에 176달러만 든다"고 했다.
◇金·유리는 아직 못 써… 전통 제조업 대비 내구성 80% 수준
하지만 3D 프린팅 기술이 본격 보급되려면 과제가 많다. 먼저 이용 가능한 재료가 제한돼 있다. 가격 측면(3D 프린팅용 플라스틱 1㎏에 35~40달러)에선 경쟁력이 있지만, 현재까지 3D 프린터로는 합성수지류 등만 가능하다. 콘크리트나 나일론, 금속 분말 등은 연구 단계이며 유리나 금·은 같은 물질은 실험 단계이다.
내구성도 약하다. 레이스 CEO는 "전통 제조업에서 제작했을 경우와 비교해 80% 정도의 품질"이라며 "적층형 방식으로 밑에서 위로 수직으로 층을 쌓기 때문에 가로 방향으로 힘을 강하게 가할 경우 내구성이 약하다"고 했다. 현재 기술로는 소비자용으로는 가로세로 200~300㎜, 전문가용은 가로세로 1m 이상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것도 한계이다. 호드 립슨 코넬대 교수는 "제조 현장에서 완제품을 생산할 만한 산업용 3D 프린터는 대당 40만~50만달러로 너무 비싸 가격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아직 대량생산이 쉽지 않으며 실제 물건을 디자인 할 수 있는 3D 설계 프로그램 이용자가 부족하다.
하지만 경영 전략가인 리처드 다베니(D'Aveni) 다트머스대 교수는 "까다로운 글로벌 소비자들의 욕구를 채워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절대 '미래적인 상상'이 아니며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했다.
◇중국·EU도 3D 프린팅 산업 집중 육성
한국에선 3D 프린터 개발 중소기업이 1~2개 있지만, 3D 프린터 수요의 95%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관련 연구도 사실상 전무하며, 3D 프린팅 산업의 경제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조차 없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움직임은 현란하다. 중국의 베이징타이얼푸더(北京泰�k福德科技發展)는 2011년에 3D 프린터를 3000대 팔아 세계시장의 4%를 차지했다. 독자 기술을 확보한 중국 기업만 4곳이다. 유럽연합(EU)도 2020년까지 제조업을 GDP의 20% 수준(현재 16%)으로 높인다는 목표 아래 지난해부터 유럽 최대 응용과학 기술 연구 기관인 프라운호퍼(Fraunhofer) 연구소에서 3D 프린터 연구개발 지원을 시작했다.
3D 프린터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영국 란체스터대 연구진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 소비재·제약 등 15개 업종에 3D 프린터가 도입될 경우 창출될 부가가치는 1382억파운드로 산출됐다. 이는 2012년 영국 GDP의 8% 수준이다. 전 세계 3D 프린터 생산량의 73%(2011년)는 미국 몫이며, 3D 프린터 설치 비중(1988~2010년)도 한국은 1.9%로 미국(41.1%), 일본(10.5%)에 비해 턱없이 낮다.
안성훈 서울대 교수(기계항공공학부)는 "3D 프린터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원천인데도 한국에선 극소수 대학 내 개인 연구에 머물고 있다. 미국처럼 3D 프린터를 국책 과제로 육성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