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꾼 오명 벗는 중국
화웨이 스마트폰 세계 3위 ZTE는 특허출원 세계 2위
中정부·기업 R&D 총력전 고속철·우주·군사는 정상급
해외 M&A액수 사상 최대
자동차·태양광·에너지분야 선진기술 통째로 인수 활발
R&D센터 中전역에 4000개 10년 만에 30배 넘게 팽창
"헬싱키 센터에 7000만유로(약 1000억원)를 투자하고 유럽 내 7000명인 R&D 인력은 5년 내 1만4000명으로 늘릴 것이다."
작년 12월 화웨이(華爲)의 케네스 프레드릭슨 동·북유럽 담당 부사장이 핀란드 스마트폰 연구개발(R&D)센터 건립 계획을 발표하며 한 말이다. 노키아 출신의 정예 인력을 주축으로 삼성전자·애플과 한판승부를 벌이겠다는 야심이다.
1987년 광둥성 선전에서 자본금 2만1000위안(약 360만원)으로 출발한 화웨이는 지난해 2200억위안(약 354억달러)의 매출액을 올려 에릭슨(348억달러 매출추정)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됐다. '2015년 매출 700억달러'를 목표로 내건 화웨이의 성장 엔진은 R&D이다.
14만명의 임직원 중 절반인 7만명이 기술 인력이며, 최근 5년간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평균 10%이다. 미국·독일·러시아·인도 등 17개국에 18개의 R&D 센터를 운영 중이며 지난해 4분기에 1080만대의 스마트폰을 팔아 세계 3위에 올랐다(시장조사기관 'IDC'). 세계 최초 6인치급 스크린과 자체 개발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장착한 '어센드 메이트'도 내놓았다.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은 "후각이 예민한 늑대처럼 (시장에 민감한)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늑대들이 무리지어 먹잇감을 맹렬하게 공격하듯 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은 2012년 한 해에만 국내총생산(GDP)의 2%에 육박하는 1조위안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했고 2022년엔 총 R&D 투자 액수에서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지난해 7월 베이징이공대(北京理工大·BIT) 연구팀이 자체 연
구 개발한 키 160㎝에 몸무게 63㎏의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들이 한 하이테크 박람회에서 탁구를 치고 있는 모습. / Getty images
◇중국 R&D 12년 만에 1100% 급증…'빅뱅'
차오젠린(曺健林) 중국 과학기술부 부부장은 올 1월 "2012년 중국의 R&D 투자비는 국내 총생산의 2%에 육박하는 총 1조위안(약 1608억달러)이 넘는 규모"라고 했다. 이는 2000년(896억위안)과 비교하면 12년 만에 11배 넘게 불어난 것이다. 중국은 R&D 연평균 증가율(14.7% ·2004~2011년 기간)과 총투자 금액에서도 세계 2위 대국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 중인 2010년부터 최근 3년 동안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의 세계 R&D 비중이 0.6~1.7%포인트 줄었지만, 중국은 2.2%포인트 늘었다.
미국 바텔 연구소는 "지난해 세계 총 R&D 투자액 가운데 중국의 비중은 14.2%로 미국에 이어 둘째"라며 "2022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세계 1위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과의 기술 격차도 크게 단축됐다. "중국과 한국의 IT제품 기술 격차는 최소 3개월로 좁혀진 상태입니다."(박기순·중국삼성경제연구원 원장)
중국 R&D는 세 방면에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 먼저 중앙 정부의 드라이브이다. 올 1월 16일 원자바오 총리가 국무원 상무회의를 열어 '국가 중대 과학기술 기반 건설 중장기 계획(2012~30년)'을 확정한 게 대표적이다. 정확한 투자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에너지·생명·지구환경·소재·핵물리·항공천문·공학 등 7개 주요 부문의 R&D를 집중 육성키로 했다. 해외 고급 두뇌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주체도 정부이다. 2008년 시작한 '천인 계획'은 작년 7월까지 목표(2000명)보다 더 많은 2300여명을 영입했다.
둘째는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열풍'이다. 일례로 독일 바스프(BASF)는 상하이에만 11개의 R&D 센터를 가동 중이다. GM·히타치·캐터필러·펩시콜라처럼 중국에 최대 규모(본국 제외)의 R&D 센터를 운영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부지기수이다. 노바티스는 10억달러를 들여 상하이에 세계 최대 규모의 의학연구센터를 세웠고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올해 중국 R&D 투자를 전년보다 15% 늘린 5억7500만달러로 잡았다. 중국에 세워진 글로벌 기업과 연구기관의 R&D 센터는 4000여개로 2001년(124개) 대비 10년 만에 30배 넘게 팽창했다. 민간 대기업의 한 중국 본부장은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 현지 기술 인력을 고용하기 때문에 결국 중국의 기초 및 상업 기술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셋째는 풍부한 고급 인력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R&D 자원조사 결과'를 보면, 2009년 당시 하루 업무의 90% 이상을 R&D 활동에 쓰는 R&D 실질 투입 인원은 229만명으로 2000년 대비 2.5배 증가했다. 이공계 대학 석·박사 졸업자만 매년 17만명으로 세계 최대다. CEIBS(중국유럽국제비즈니스스쿨)의 브루스 맥컨 교수는 "훌륭한 인적 자원은 중국 R&D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했다.
◇R&D에 목숨 건 중국 토종 기업
중국은 특허와 상표권 신청 분야에서 이미 세계 1위(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2011년 기준)다. 작년 7월에는 1985년 중국 최초 특허증이 발급된 지 27년 만에 100만번째 특허증이 발급됐다. 이런 '발명특허 대국화(大國化)'는 토종 기업들이 주도한다. 작년 말 현재 중국의 특허출원 비중은 기업(79%)→대학교(17%)→연구소(4%) 순서이다. 중국과학원 판헝(范桁) 교수는 "R&D에 대한 투자 확대가 곧바로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중국 기업이 깨닫고 '중국 기술=산자이(山寨·가짜)'란 오명을 벗어 던지고 있다"고 했다.
IT기업인 ZTE가 지난해 365개의 PCT(특허협력조약) 특허를 출원해 미국 MS(492개)에 이어 세계 2위에 오른 것은 한 단면이다. 중국 기업의 R&D 연구소는 3만여개로 2000년에 비해 92% 넘게 늘었다. 토종 기업들은 또 대대적인 해외 인수합병(M&A)을 통해 선진기업의 첨단기술을 통째로 삼키고 있다.
치루이(奇瑞)자동차가 지난해 11월 인도 타타모터스의 재규어 랜드로버와 5대5 비율로 장쑤(江蘇)성에 R&D 센터와 엔진 공장 건설에 합의한 것이나 지리(吉利)자동차의 볼보 인수, 태양광업체 중궈란싱(中國藍星)의 노르웨이 실리콘 업체 엘켐(Elkem) 인수 등이 그렇다. 작년 3월 중국석유화공(SINOPEC)은 미국 데본(DEVON) 에너지 지분을 인수하며 선진 기술을 흡수했다. 지난해 4월 중국 상무부는 '대외투자 관련 12차 5개년(2011~15년) 계획'을 발표하며 "유럽·미국 등 선진국과 투자협력을 강화해 R&D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중국의 해외 M&A 액수는 572억달러(약 62조원)에 달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중국 굴착기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토종기업 싼이(三一)중공업이 급성장한 배경 역시 정부조달사업자로 선정 같은 보이지 않는 정부 지원 외에 기술 진보에 힘입은 품질력 개선 덕분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싼이중공업은 2011년 6월 독일에 7000만유로(약 1000억원)를 투자해 R&D 센터와 공장을 세워 독일의 세계 최고 기계 기술력을 흡인했다.
베이징 주재 한국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총 연장 8000㎞로 세계 최장의 고속철도를 운영하고 있는 중국은 최근 고산(高山) 지대에서 영하 40℃의 기온을 견디는 기술까지 개발했다"며 "고속철도와 우주항공·군사 분야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 R&D의 허점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10대 학술지를 기준으로 할 때, 중국의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 게재 논문은 미국의 35분의 1 수준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은 '2012년 중국 민영기업 경쟁력 보고서'에서 "중국 19개 성·시의 622개 민영기업 가운데 36%가 최근 3년 동안 자체 R&D팀을 운용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아직 동종업계의 기술 베끼기에 치중한다는 증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