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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살롱] 청중 마음 얻으려 변신 또 변신… 오페라 400년은 '혁신의 역사'

Opinion 유정우·오페라 평론가
입력 2012.11.24 03:08
유정우·오페라 평론가
오페라 대중화 시대다. 일찍이 오페라가 이렇게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온 적이 있을까. 미국에서는 4년 전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매 시즌 최신 실황 영상을 메가박스 영화관에서 보여주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오페라는 '고리타분한 과거의 유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오페라의 성장사를 보면 '혁신의 아이콘'임을 깨닫게 된다.

역사상 최초의 오페라는 1597년 피렌체에서 초연된 야코포 페리의 '다프네'이다. 피렌체의 인본주의자들이 만든 예술 동호회인 '카메라타'는 그리스·로마 문화를 되살리려는 르네상스 예술 최후의 과업으로 고대 그리스의 제전극을 재현하자는 목표를 세웠고 그 결과로 오페라가 탄생한 것이다.

오페라라는 용어가 라틴어 'Opus(작품)'의 복수형인 것도 종합예술을 지향함을 상징한다. 시를 바탕으로 여러 노래와 드라마, 춤 등 다양한 작품들이 하나의 제목 아래 모여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는 의미다. 오페라는 클래식 음악의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빠르게 귀족 궁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립했다. 돈을 받고 오페라를 보여주는 최초의 상업적 극장이 1637년 베네치아에 세워졌다. 오페라가 탄생한 지 불과 40년 만이다. 이후 오페라는 100여년 동안 가장 대중적인 엔터테인먼트로 자리잡았고, 그 인기는 지금의 뮤지컬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18세기 전반의 바로크시대를 통해 종주국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흥행 공식이라는 미명 하에 자기 복제만을 거듭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첫 번째 오페라 개혁은 이탈리아 바깥에서 이뤄졌다. 18세기 후반, 빈과 파리에서 활동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글루크는 유명 가수들의 노래자랑 버라이어티 쇼에 지나지 않던 오페라에 드라마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오페라 근대화의 토양을 다졌다.

글루크의 오페라 개혁을 통해 드라마로서의 성격이 강화된 오페라는 19세기 낭만주의의 물결 속에 태어난 독일의 풍운아 바그너를 통해 '혁명'적인 변신을 했다. 음악과 시, 드라마가 융합된 진정한 종합예술로서의 오페라를 꿈꾸던 바그너는 급기야 자신의 오페라에 '악극'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며 아예 별종으로 독립시켰다.반주의 영역을 완전히 넘어 강력한 자기주장을 펼치는 바그너 악극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향을 듣는 순간 성악은 더 이상 오페라 무대의 주인공일 수 없다.

‘카르멘’의 한 장면. 비제의 ‘카르멘’을 통해 오페라는 비로소 진실한 ‘우리들의 이야기’로 변모했다.
1875년은 오페라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이다. 그 해 3월 3일,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비제의 '카르멘'이 초연(初演)된 것이다. 오늘날 너무나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작품인 까닭에 오히려 그리 귀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카르멘'은 사실 오페라 역사의 한 분기점이 되는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국적인 안달루시아를 배경으로 자유분방한 집시 여인의 사랑과 배신, 질투, 살인이 핏빛 무대를 가득 채우는 이 작품을 통해 오페라는 소재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태생부터가 그리스 제전극의 재현이 목적이었던 만큼 진지한 비극 오페라의 전통적인 소재는 대부분 신화 속의 신들이나 영웅들, 또는 역사 속의 왕들이나 귀족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카르멘을 통해 오페라는 '영웅들과 귀족들의 이야기'에서 비로소 진실한 '우리들의 이야기'로 변모했다. 카르멘의 소재적 파격은 이탈리아의 젊은 작곡가들을 각성시켜 1890년대 '베리스모(Verismo·사실주의)' 오페라 운동을 촉발한다. 우리가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간주곡을 들을 수 있는 것도(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광대의 절규에 눈물지을 수 있는 것(레온카발로 '팔리아치')도 따지고 보면 모두 '카르멘' 덕이다.

오페라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존 구조와 스타일을 과감하게 파괴했던 선구자들의 용기와 그 새로움을 극복·수용한 청중의 상호 작용 속에 발달해 왔다.청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 변신을 거듭해온 오페라 400년의 역사는 치열한 혁신이 요구되는 현대 비즈니스 세계와도 묘하게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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