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동맹 출범위한 과제
상당한 수준의 재정통합이 전제예보·구조조정기금은 단일기관통해 운영돼야
은행 동맹의 범위도 풀어야 할 난제
사비에르 비베스(Xavier Vives) 스페인 IESE 경영대학원 교수
스페인에 대한 유로존 회원국의 크레디트 라인(신용공여한도) 설정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깨지기 쉬운 은행 시스템의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스페인이 겪고 있는 은행 위기는 유럽 은행 동맹(banking union) 출범을 위한 완벽한 첫 단계일 수 있다.
스페인에 대한 유로존의 지원은 중기적으로는 정부와 은행의 상호 연관성을 높여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최악일 때는 유럽 은행 시스템의 더 큰 분열을 가져오고 스페인의 부채 부담을 늘려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유로존 구제금융기구가 스페인 부실 은행의 지분을 직접 취득한다면 정부와 은행의 연결 고리를 끊어 동반 몰락을 막을 수 있다. 지분 취득은 유로존 은행들에 대한 통합 감시 기구를 구축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통합 감시 기구 구축은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한 금융회사의 즉각적 청산을 가능하도록 한다. 구제금융기구에 인수된 은행 지분이 공매(公賣)를 통해 처분된다면, 유로존 은행의 통합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지원과 부실 은행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단기간에 실현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은행 동맹은 유로존 같은 통화 동맹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다. 은행 동맹은 신중한 감시자의 통일된 규칙 제정, 중앙 집권적 은행 감시 시스템 마련, 예금보험기금(deposit insurance fund·DIF)과 은행구조조정기구(resolution authority·RA) 등의 설립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하지만 은행 동맹으로 진전하려면 4가지 주요 이슈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은행 동맹을 위해 상당한 수준의 재정 통합이 필수적이다. 유럽 RA 설립은 회원국끼리 부담을 공유하겠다는 합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유로존에는 미국 재무부처럼 재정 정책을 통합 집행할 단일 기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선 DIF와 RA의 재원(財源)은 회원국 정부들이 후방 방어벽 역할을 하겠다는 합의를 바탕으로 은행에 세금을 부과해 조성해야 한다. 예금보험기금 설립은 위기가 터진 이후엔 논의될 수 없다. 지불 능력이 있는 국가와 은행이 지불 능력이 없는 국가와 은행에 돈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지원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유럽 RA는 유럽안정화기구(ESM)로부터 재원을 지원받아 가동에 들어갈 수 있지만, 유럽 DIF는 현재의 위기 해결이 아닌 다음 위기 대비용이어야 한다.
둘째 이슈는 DIF와 RA 조직 구성 문제이다. 두 조직은 단일 기관을 통해 통합 운영되며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을 갖도록 구축돼야 한다.
①은행에 부과하는 세율이나 보험료는 개별 은행의 위험도에 따라 다르게 책정돼야 한다(세율이나 보험률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면 건전 은행이 부실 은행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같다). ②단일 기관은 관용적 태도 때문에 문제 해결이 지연되지 않도록 위기가 발생하면 즉각 행동에 나서야 한다. ③단일 기관은 부실은행 주주나 후순위채 보유자의 손해가 조세 부담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전가(轉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이슈는 은행 동맹의 범위를 유럽연합(EU) 회원국 전체(27개국)로 할지 아니면 유로존 회원국(17개국)에 국한할지 여부다. 은행 동맹은 높은 수준의 금융시장 통합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은행 동맹에 참가하면서 유로존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들은 갈등에 느낄 수밖에 없다. 그들 역시 비록 공통 통화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재정 동맹으로는 이행(移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을 겪는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다.
마지막 이슈는 은행 동맹이 통화 동맹 생존에 필수 조건이기는 하나 충분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모든 은행에서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지면 유럽예금기금이 홀로 이를 막을 수 없다.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처하려면 높은 수준의 정치·재정 통합이 필요하다.
유럽의 금융 위기는 아일랜드·벨기에·네덜란드·영국·스페인 등 유럽 전역에 은행 재(再)국유화 현상을 촉발하고 있다. 정부가 위기에 빠진 은행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면서 정부가 대주주로 떠오른 은행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위기에 빠진 금융 시스템에 대규모 유동성(현금)을 공급한 것은 국가와 은행의 상호 연관성을 강화해 위험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ECB의 자금을 지원받은 은행이 자국 국채를 집중적으로 매입하면서, 위기가 다시 터질 경우 국가와 은행이 동시에 파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금융 통합이 되면 통합 규제 감독 기구 설립이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은 지금까지는 잘못된 것으로 판명났다. 이제 두 가지 선택 옵션밖에 없다. ECB에 규제 권한을 주고 단일 규제 규칙을 제정하고 ESM의 지원을 받아 RA를 만들든가, 아니면 현재의 분열 절차가 지속되도록 놔둬 유로존 체제가 더 빨리 종말을 맞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