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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⑬ 클라이맥스 직전 흐르는 간주곡처럼 한번 멈춰가는 삶의 지혜를

Culture 박종호 오페라평론가(풍월당 대표)
입력 2012.01.21 03:10
박종호 오페라평론가(풍월당 대표)
오페라에 보면 간주곡(間奏曲)이라는 것이 있는데, 오페라의 극 중간에 연주되는 관현악곡을 일컫는 것이다. 오페라가 시작하기 전에 연주되는 전주곡(前奏曲)이나 서곡(序曲)과는 달리 극의 한가운데에서 올려진다. 간주곡이 연주되는 동안에는 막도 내려가지 않고, 무대는 텅 빈 채로 남아 있다.

간주곡을 이탈리아 말로 '인터메조'(intermezzo)라고 부른다. 그런데 '인터메조'는 또한 막간(幕間)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막(幕)과 막 사이의 쉬는 시간을 말한다. '메조'(mezzo)라는 말은 절반(折半)이라는 뜻이고 '인터'(inter)라는 말은 사이라는 뜻이니, 인터메조는 절반과 절반의 사이라는 뜻이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즉 절반과 절반 사이의 막간이니, 막간은 공연 중에 단 한 번이라는 것이다. 즉 과거 오페라는 2막이었으며, 중간의 휴식은 한 번이라는 전통이 용어에도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간에 한 번을 쉬니, 마치 축구와 같다. 축구도 전후반(前後半)으로 나뉘어 있고, 가운데에 한 번 쉬지 않는가? 패션브랜드에 '인터메조'라는 것이 있다. 이 상표를 볼 때마다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막간, 다시 말해서 일과 일 사이에 쉬는 시간에 입는 옷, 즉 캐주얼웨어라는 뜻이 명확하다.

그런데 당시에는 한 번의 쉬는 시간이 아주 길었다. 쉬는 시간은 요즘처럼 겨우 화장실에 가거나 음료를 마시는 정도가 아니었다. 보통 1시간은 넘고 2시간까지 걸리기도 했다. 그리하여 긴 쉬는 시간에 극장 로비에서는 여러 볼거리를 펼쳤다. 그때 로비에서 간단한 공연을 하기까지 했다. 이 공연도 인터메조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대부분 희극(喜劇)이었다.

그러다가 관객들의 일상이 점점 바빠지면서, 인터메조 시간이 줄게 되었다. 막간에 공연하던 관습도 사라지고, 대신에 인터메조라는 용어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즉 공연 중에 막을 내리지 않고 연주되는 관현악곡을 인터메조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때부터 인터메조는 막간이 아니라 간주곡이라는 뜻으로 주로 통용되었다.

간주곡은 오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간주곡은 오페라 흐름상 보통 한 번만 나오는 것이며, 결정적인 순간에 나온다. 즉 바로 다음에 극의 흐름이 완전히 전환되거나 결론에 이르기 직전에, 갑자기 공연이 멈추어지면서 무대 위가 텅 비게 된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심각한 음악을 연주하게 된다. 대부분의 간주곡들은 아주 아름답다. 조용하고 느리며 애수를 띠거나 비장한데, 주인공의 비극적 결말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그리므로 유명한 아리아나 중창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간주곡을 유심히 살펴 듣는 것이 좋다.

간주곡들 중에는 명곡이 많다. 푸치니의 '나비부인' 간주곡은 3년이나 기다린 여자 앞에 남자가 나타나기 직전에 이미 비극을 알고 있다는 듯이 비장하게 연주된다.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의 간주곡은 마농이 미국으로 유배가기 위해서 르 아브르 항구로 압송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곡에는 '르 아브르로의 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기도 하다.

잘 알려진 마스네의 '타이스' 중의 '명상곡'이라는 곡도 사실 간주곡이다. 그 외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조르다노의 '페도라', 슈미트의 '노트르담', 볼프페라라의 '성모의 보석' 등이 기막히게 멋진 간주곡들이다. 이 곡들은 결정적인 대목이 나타나기 직전에, 바로 파국으로 가지 않고 한 번 쉬어가는 작용을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눈앞에 결론이 있을 것 같고 손에 닿을 것 같아서, 우리는 쉬지 않고 뛰어간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대부분 파국이다. 결론에 빨리 이르는 성급한 삶보다도 여유와 관조가 넘치는 삶도 낫지 않은가?

간주곡이 흐를 때 다만 음악만을 들을 것이 아니다. 가수들이 없는 텅 빈 무대는 우리에게 한 번 멈추는 인생의 지혜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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