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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⑫ 유럽 문화의 그늘 '버려진 아이'… 오페라의 주요 소재로

Culture 오페라 평론가(풍월당 대표)
입력 2012.01.07 03:30
박종호 오페라 평론가
이탈리아의 고도(古都) 피렌체에 가면 오래된 고아원이 유명하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특히 그 위에 아이를 놓으면 턴테이블처럼 돌아가는 '베이비박스'가 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즉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 포대기에 싼 아이를 턴테이블 위에 놓고 초인종을 누르면, 수녀가 나와서 턴테이블을 돌려서 아이를 안고 들어가는 것이다. 대신에 아이를 버리는 사람 얼굴은 안에서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고아원의 크고 놀라운 시설은 당시 피렌체의 뛰어난 사회복지 체계나 건축술을 자랑하려고 종종 인용되지만, 우리에게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당시에 그렇게 아이를 많이 버렸구나" 하는 비극적 사실이다.

실제로 근대 이전까지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많이 버려졌고, 그런 유럽의 어두운 풍속사는 오페라 속에 아주 잘 그려져 있다. 모차르트의 유명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사람들은 다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요한 주제의 하나가 '버려진 아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간과하고 있다.

즉 백작궁전의 하인 피가로가 "나도 뼈대 있는 가문의 혈통이다"면서 팔뚝의 문신을 보여주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그 궁전의 하녀장(下女長)과 주치의(主治醫)가 모두 깜짝 놀란다. 즉, 그들이 내연의 관계를 맺고는 낳아서 버린 아이가 바로 피가로였던 것이다. 이에 피가로와 결혼을 추진하던 하녀장은 자칫 아들과 결혼할 뻔한 위기를 모면한다. 이렇듯 당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여러 이유로 아이들은 자주 버려졌다. 그리고 그중 많은 아이가 목숨을 잃었지만, 또한 적지 않은 수가 살아나서 훌륭하게 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복잡한 출생의 비밀은 오페라의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프로덕션을 올리고 있어서, 지금 세계 최고의 오페라하우스라고 할 수 있는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 지난여름 그곳에서 열린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기간에 지하 로비에서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즉, 지하 주차장에서 바로 들어오게 되는 지하 로비에서 한 아기 바구니가 발견된 것이다. 바구니 안에는 아이가 얌전히 누워 자고 있었다. 오페라를 보러온 남녀 관객들이 그 앞에 둘러서서 놀라운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바구니의 위치가 현금자동지급기 앞이어서 더욱 의미심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관객들의 이목을 끈 아기 바구니는 사실 진짜가 아니라 조형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아기 바구니 말고도 일련의 같은 주제 작품이 오페라하우스 내부 곳곳을 장식했다. 이렇게 오페라 페스티벌에 '버려진 아이'가 주제로 등장할 만큼 오페라에는 버려진 아이가 많이 등장하니, 과거 유럽 문화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는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 신화'일 것이다. 스트라빈스키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버려진 영웅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부모로부터 달아난다. 하지만 그가 멀어지려고 노력할수록 결국 친부모에게로 다가가게 되는 혈육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 외에도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도니체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자' '연대의 딸', 토마의 '미뇽' 등이 모두 고귀한 혈통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버려지지만, 부모 없이도 훌륭하게 장성하고 나중에 부모와 재회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바그너의 4부작 '니벨룽의 반지' 중 제2부 '발퀴레'에 나오는 지그문트와 지글린데 역시 버려진 아이들이 마치 호랑이 새끼처럼 거칠게 키워지지만, 결국 그들의 영웅성은 숨길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다. 제3부 '지그프리트'속의 지그프리트의 운명 역시 비슷하다.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의 만리코는 버려졌다기보다는 주워온 아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 그의 운명도 역시 같은 길을 걷는다.

이렇듯 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가 무수히 많다는 것을 오페라는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부모를 알 수조차 없어도 그들의 피는 속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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