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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⑨ 아이를 죽인 엄마… 자신의 목숨을 끊은 엄마 관객은 두 비극 중 누구에게 더 공감하겠는가

Analysis 박종호 정신과 전문의(풍월당 대표)
입력 2011.11.26 03:23
박종호 정신과 전문의(풍월당 대표)

"오페라에서는 유아살해를 볼 수 있다."

최근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는 100여 년 이상 세상에서 잊혔던 작곡가 시몬 마이어(Simon Mayr, 1764~1845)의 오페라 '코린트의 메데아' 공연이 성공적으로 올려졌다. 그리고 사실상 20세기 이후 초연이나 다름없었던 이 공연을 통해 메데이아라는 인물이 조명을 받게 됐다.

그리스 신화 속 여성인 메데이아는 영웅 이아손을 사랑해 그를 여러 가지의 곤궁으로부터 구해낸다. 그리고 그와의 사이에 두 아이를 낳는다. 도시국가인 코린트를 위해 싸우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아손은 코린트의 공주 글라우케에게 반해버린다. 이아손은 글라우케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그 소식을 들은 메데이아는 복수를 결심한다. 그녀는 신부 글라우케에게 독을 바른 옷을 선물로 보내 그녀를 죽게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분에 차지 않아, 메데이아는 자기가 당한 만큼 이아손의 마음을 아프게 할 방법을 찾는다. 그를 죽이는 것은 너무 가벼운 형벌이라고 생각해, 결국 그녀는 그와 자신 사이에 태어난 두 아이를 칼로 베어 죽인다.

이 끔찍한 신화는 많은 작곡가에게 충격을 줬다. 메데이아를 소재로 한 오페라가 상상 이상으로 많이 만들어졌던 이유다. 마이어의 오페라 외에 가장 유명한 것은 루이지 케루비니의 '메데아'다. 그 외에도 조반니 파치니의 '메데아', 게오르크 벤다의 '메데아', 마르크 안토니 샤르팡티에의 '메데', 조셉 프랑수아 살로몬의 '메데아와 이아손' 등이 모두 같은 메데이아의 이야기를 다룬 오페라들이다.

이 많은 오페라들이 모두 메데이아의 끔찍한 행위를 다루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다들 같지 않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죽인다는 것은 특히 우리나라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불가능한 일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동양의 인본(人本)적인 사고방식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서양의 경우 특히 신화시대에는 신본(神本)적 사상이 앞섰기 때문에 인명이 비교적 경시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자식을 죽여서라도 신에게 잘 보이고 목적을 성취하려는 생각이 앞서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므로 유럽의 신화나 역사에서는 이런 유아살해의 경우를 가끔 찾아볼 수 있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딸 이피게니아를 죽였고, 헤라클레스는 온 자식들을 몰살시켰다. 아가베는 아들의 머리를 찢어서 죽였으며, 탄탈로스는 아들을 토막 내 스튜로 끓였으며, 프로크네도 자기 손으로 아들을 죽였다.

사랑에 버림받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복수를 생각할 수 있다. 메데이아가 당한 것과 유사한 경우를 오페라 속에서 너무나 많이 마주친다. 벨리니의 '노르마'가 그런 경우다. 노르마는 아이를 둘이나 낳았지만 아이들의 아버지인 폴리오네의 배신에 몸서리를 친다. 그녀 역시 복수를 위해 칼을 품고 잠자는 아이들의 방으로 다가간다. 하지만, 메데이아와 달리 그녀는 아이들을 죽이지 못한다. 대신에 노르마는 자기의 목숨을 끊는 길을 택한다. 즉 아이를 죽이면 메데이아요, 죽이지 못하면 노르마가 된다. 이 경우 우리는 메데이아와 노르마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메데이아보다는 노르마가 더욱 위대한 사람인 것이다.

복수를 하게 되면 드라마는 극적일지 모르지만, 관객의 공감대는 줄어들 수 있다. 그래서 한스 노이엔펠스 같은 연출가는 메데이아를 폭압적인 코린트 사회의 희생자로 그려낸다. 즉 코린트라는 사회와 크레온 왕을 매우 폭력적으로 그려, 관객들이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메데이아를 동정할 여지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비극성은 역시, 내가 복수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는 데에 있다. 메데이아와 노르마 중 노르마 쪽이 비극의 주인공에 더 가까운 이유다. 비극에는 타인에 대한 한없는 배려와 자신에 대한 고통의 감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비극은 위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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