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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인사이드]사람의 눈·귀·코 자극하는 시즐광고 감각적 포인트를 잡아내는 능력 중요

Opinion 조경식·제일기획 마케팅전략본부장
입력 2011.11.12 02:55
조경식·제일기획 마케팅전략본부장
코를 막으면 양파를 사과라 하고 먹여도 그런 줄 안다. 귀를 막으면 시야가 좁아져 오가는 사람들과 더 잘 부딪치게 된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해골바가지에 든 물도 약수인 줄 알고 마신다. 이렇게 오감(五感)에 의존하는 게 인간이다. '음메' 소리를 들으면 소인 줄 알고, '푸드덕' 소리가 나면 새를 떠올린다. 아이들의 미소에서 행복을 느끼고 아내의 샤워 소리에 겁을 먹는다. 오감 덕분에 우리는 세상을 기억하고 또 그려낸다.

지글지글, 보글보글, 찰랑찰랑. 오감을 2차원의 글로 옮겨 놓은 게 의성어와 의태어다. 그리고 이 오감을 간접 경험의 상태로 살려낸 것을 '시즐(sizzle) 광고'라 한다.

올해 상반기 인기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오만방자한 인기스타 역을 맡은 차승원씨가 등장한 오렌지 주스 광고가 있다. 촬영 중인 그에게 스태프가 오렌지 주스를 가져다주자 '이게 뭐야, 최고의 배우가 아무 주스나 마시라고? 콜드 가져와!'라며 소리친다. 원하던 주스를 가져다주자 그제야 '역시 내 급이야, 국보급!'이라며 만족하더니, 껍질을 반쯤 깐 신선한 오렌지를 한 손으로 쥐고 거침없이 '우적', 한입 크게 베어 문다. 통통한 오렌지 과육 하나하나가 한꺼번에 톡톡톡 터지면서 시원하고 새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히 돌아 흐르는 느낌에 내 입에도 침이 괸다. 10여 년 전부터 콜드 주스 광고에 줄기차게 등장하는 그 '우적'하는 파열음과, 흐르는 과즙을 '후루룹' 들이마시는 소리가 나를 늘 목마르게 한다.

이런 게 시즐광고다. 소리, 비주얼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람의 오감을 못 견디게 자극하는 광고. '시즐(sizzle)'이라는 단어가 '고기가 지글거리며 구워지는 소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만큼, 특히 음식물과 관련된 시즐 광고를 자주 볼 수 있다. 광고 시간 대부분을 '후루룩- 후루룩- 하아-' 하며 국수 마시는 장면만 보여주다가 '후루룩국수가 그렇게 맛있어?' 하는 농심의 '후루룩국수' 광고나, '치익-'하는 맥주병 따는 소리와 흘러 넘치는 흰 거품만 줄곧 보여주는 카스맥주의 시보광고 같은 광고들이 전형적인 오감 자극형 시즐 광고다.

광고 촬영 현장에서는 "시즐감이 살았네, 죽었네" 하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소리만 들어도 고기 굽는 냄새가 나야 하고, 훈김만 봐도 입안이 뜨끈해지는 리얼함을 위해 다들 열심을 다한다. 하지만 리얼함을 살리는 것만이 시즐 광고의 전부는 아니다. 리얼함은 오감을 위한 것이고, 오감은 경험의 창고를 건드려 상상을 이끌어 낸다. 오감이라고는 하나 기존 매체에서 가능했던 건 시각 혹은 청각뿐, 결국 고기 굽는 '소리'와 '모양'만으로 고기의 맛과 향과 질, 입안에 육즙이 도는 느낌까지 모두 상상하게 만드는 게 시즐 광고다.

이 시즐 광고를 잘 만드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극(極)사실적인 묘사 실력, 다른 하나는 무엇을 묘사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능력이다. 즉 이 제품이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을 가장 잘 표현하는 감각적인 자극은 무엇인가를 잘 골라야 하는 것이다. 사과를 광고한다 치면 '사각'하고 씹히는 소리를 살려 맛을 강조할 수도, '뽀드득'하고 닦이는 소리를 살려 무농약 유기농을 강조할 수도, 혹은 잘 익은 사과 껍질의 군침 도는 빨간 빛깔만을 극단적으로 살릴 수도 있다. 무엇이 가장 강력할까.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이를 일컬어 '시즐맨십(sizzlemanship)'이라고도 한다. '제품이 고객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잘 잡아내는 능력'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말해야 할 내용을 제대로 골라낼 줄 아는 감을 가지고도 이를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점잖은 표현, 격식에 맞는 표현에 대한 강박감 때문이다. 감각을 자극하는 의성어나 의태어가 프레젠테이션이나 보고서에 들어가면 유치해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보다 대담해지길 바란다. 신기술이 어쩌고, 냉방력이 어쩌고, 복잡한 내용 대신 '씽씽'이면 어떤가. 맛을 내기 위해 재료를 엄선하고 공법이 어쩌고 대신, '후루룩'이면 어떤가. 비즈니스의 목적은 내용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리얼하게 '상상'하게 해서 '욕망'하게 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임을 명심한다면, 각 잡힌 수트(suit)를 떠올리게 하는 딱딱함 대신 과즙이 흘러 넘칠 듯한 매력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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