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를 보면 합창이 나온다는 것은 대부분 잘 알고 있다. 솔리스트들 뒤에는 흔히 합창단이 포진하고 있다. 하지만 오페라를 볼 때는 무대의 중앙에서 화려한 아리아를 부르거나 비극의 한가운데에 서는 주인공, 즉 솔리스트들에게 눈길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 처음 오페라를 볼 때는 합창단에게까지는 관심을 가지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오페라에서 합창은 대단히 중요하며,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합창단은 오페라 극장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이다. 재미있는 것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합창단 단원들 중에 잘하는 이들이 나중에 솔리스트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마치 영화에서 엑스트라로 오랜 세월을 견디는 단역배우들의 꿈이 주역배우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산 등의 문제로 오페라 공연 때 대학생 혹은 졸업을 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음악도들이 합창단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 또한 합창단에 속한 젊은 그들의 장래 희망이 솔리스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페라의 본고장 유럽의 경우 솔리스트와 합창단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즉 일단 합창단으로 들어간 성악가들은 오랜 세월 오페라 합창을 익히면서 전문적인 합창단원으로 실력과 경험을 다져간다. 한 번 합창단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정년이 될 때까지 평생 합창단에서 오페라인(人)으로 살아가게 된다.
물론 대단히 실력이 뛰어나면 솔리스트가 되지만, 유럽에서는 실력이 있어도 굳이 솔리스트가 되지 않고 극장 합창단에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솔리스트는 늘 세계의 여러 극장을 전전하면서 유랑객 같은 생활을 해야 하는 데에 반해, 합창단은 자기 지역에서 가족들과 평생을 살면서 친지의 사랑과 이웃의 존경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메조소프라노인 체칠리아 바르톨리는 부모님이 모두 로마 오페라 극장의 합창단원이었다. 그들은 가정에 충실하고 싶어 평생 합창단에 있었으며, 실력이 탄탄한 부모에 의해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은 딸이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페라에서 합창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합창단의 역할은 솔리스트들의 뒤에서 그냥 서 있거나 배경이나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합창의 역할은 명확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여론(輿論)이라는 점이다. 무대 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솔리스트들의 행동과 운명에 대해서 합창단은 뒤에서 세상 사람들의 의견 즉 여론을 들려준다. 합창단의 두 번째로 중요한 역할은 해설(解說)이다. 합창단은 사건의 진행을 설명하고, 주인공의 감정 상태를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극에서 합창의 역사는 상당히 길다. 고대 그리스 비극 시대서부터 합창은 있었다. 즉 그리스 비극이 공연될 때는 무대 좌우 양편에 각기 7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자리 잡고 있어서, 리더 한 명을 포함해 15명으로 구성됐다. 그들을 '코로스(coros)'라고 불렀으니, 지금 오페라 합창의 효시다. 그들은 무대 위에는 올라가지 않은 채, 극에 대한 해설과 여론을 노래했다. 이렇게 합창은 먼 옛날부터 극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거의 대부분의 오페라에서 합창이 나온다. 아마 우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합창이 베르디의 '나부코'에 나오는 '노예들의 합창'일 것이다. 그 외에 '아이다' 중 '개선의 합창', '일 트로바토레' 중 '대장간의 합창' 등이 유명하다. 그러나 베르디 최고의 합창곡은 아마 '리골레토'에 나오는 합창들인데, 오직 남성만으로 구성된 합창단은 빗소리, 바람소리 등 별별 효과를 기막히게 표현한다. 또한 구노의 '파우스트' 중 '병사들의 합창', 푸치니 '나비부인' 중 '허밍 코러스', 바그너 '로엔그린'의 '혼례의 합창' 등은 원래 오페라 이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또 많이 불린다.
얼핏 오페라를 이끄는 것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상의 주역들 뒤에는 그들을 비판하고 제지하는 여론이 있듯이, 오페라의 뒤에도 여론을 나타내는 합창이 있는 것이다. 이제 합창에 귀를 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