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적자 허덕이던 '클럽메드' 살린 앙리 지스카르 데스탱 CEO
"태양 아래 이 눈부신 리조트를 지키기 위해… 돈 안되는 건 다 때려 부쉈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
'전쟁에 지친 전후 유럽에 국경과 계급을 뛰어넘어 휴식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를 건설하자. '클럽메드를 만든 두 창업자의 꿈은 이렇게 요약된다. 벨기에 수구(水球) 선수 제라드 블리츠(Blitz·1990년 사망). 1936년독일 나치 치하의베를린 올림픽 참가를 거부한 레지스탕스 일원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이자 텐트 관련 가족사업을 하던 레지스탕스 동료 길버트 트리가노(Trigano·2001년 사망)에게 군용 텐트 200개를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스페인 마요르카섬 알쿠디아 해변에 텐트를 설치하고 회비 300프랑스프랑을 낸 회원들에게 잠잘 곳과 음식, 해변에서 여러 레포츠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2차 대전 참전용사 등 300여명이 해변에 모여들었다. 세계 최초의 올―인클루시브 리조트 기업 클럽메드는 이렇게 시작됐다. 1950년 냉전이 시작된 유럽은 전후 복구가 한창이었다. 포성은 멎었지만 휴식, 여행, 행복 같은 단어는 아직 낯설게 느껴지던 그해 여름. '올―인클루시브(all―inclusive)'라는 새로운 여행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했다. 한 번의 가격 지급으로 리조트 안에서 숙박, 식사와 음료, 각종 레포츠 등을 추가 비용 없이 즐길 수 있는 종합 휴양 서비스였다. '올―인클루시브' 콘셉트를 처음 도입한 글로벌 리조트 기업 클럽메드(Club Mediterranee )는 60~7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급성장했다. 60년대 중반 유럽을 중심으로 40여개의 리조트를 세운 이 회사는 70~80년대 5개 대륙 120여곳에서 리조트를 운영하는 황금기를 맞았다.
하지만 후발 주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여행·숙박업체들이 해양 스포츠 같은 서비스를 끼워 패키지 상품으로 내놓기 시작했고, PIC(Pacific Islands Club)처럼 '올-인클루시브' 콘셉트를 대놓고 모방한 업체도 등장했다.
앙리 지스카르 데스탱 CEO.
1990년대 클럽메드는 시설 노후화와 성장 둔화로 위기를 맞았다. 96년 급기야 창립자 중 한 명이 주주들의 손에 경영 일선에서 쫓겨났다. 9·11테러 후폭풍으로 2001~2002년 잇달아 수천만 유로의 손실을 입었다.
"클럽메드라는 브랜드와 상품의 '포지셔닝(positioning)'이 분명치 않다는 게 문제였다. 치열한 경쟁과 함께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달했고 고객층이 양분되고 있었다. 중저가 리조트로 일반 고객을 맞이하느냐, '업스케일(최고급·upscale)' 브랜드로 거듭나느냐. 선택의 기로에서 선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지난 6일 클럽메드 파리 본사에서 만난 앙리 지스카르 데스탱(Henri Giscard d'Estaing·55) CEO는 "정치와 경영은 선택과 설득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고 했다. 그는프랑스 보수파를 대표하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85·재임 기간 1974~1981년)의 아들이다. 20대 지방의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냉전시대 이념 대결이 끝나갈 무렵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업스케일 전략에 따라 리노베이션조차 힘든 수십 개의 리조트를 문 닫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취하는 게 있으면 버리는 것도 있어야 한다. 경제든, 정치든, 그것이 선택의 본질 아닌가. 살기 위해 우선 버려야 했고, 직원과 고객을 설득해야 했다."
클럽메드의 올 상반기(2010년 11월~2011년 4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증가(7억5400만유로)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90년대 막대한 손실에 허덕이던 클럽메드가 사업 내실화로 좋은 실적을 거두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클럽메드에 1990년대는 '잃어버린 10년'과 같다. 비슷한 형태의 리조트 체인들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클럽메드의 성장세도 주춤했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여행·휴양 산업이 한창 성장할 때는 모든 고객층을 포괄하는 사업 전략이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시장이 성숙하고 정치적 이슈나 경제 위기 때문에 성장이 저하되기 시작하면 시장은 럭셔리 상품과 저가 상품으로 양분된다. 중간 지대의 상품과 고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악재도 많았다. 1992년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승객 50여명을 태운 클럽메드 전세기가 리조트로 향하던 중 추락해 30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책임을 놓고 법정 공방이 거듭됐다. 1995년엔 이스라엘 북부 해안의 클럽메드 리조트가 레바논 게릴라 무장세력의 로켓포 공격을 받았다. 1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했다. 이듬해 30여년 동안 클럽메드를 이끌던 트리가노 부자(父子)는 1억1300만유로의 적자를 내며 경영 일선에서 쫓겨났다.
앙리 CEO는 "비즈니스 세계에는 불확실성이 상존하지만 90년대와 2000년대 초까지 클럽메드는 시장 안팎의 위기 요인들로 파산 직전까지 갔다"고 회상했다. 닷컴 버블로 경기가 악화됐고, 9·11테러로 여행·관광 수요가 급감했다. 클럽메드는 2001년 7000만유로, 2002년 6200만유로에 이어 2003년 9400만유로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언론은 '늙었다(aging)' '지쳐 보인다(weary)' 따위의 수식어로 클럽메드를 표현했다.
◆"리조트에 집중하라. 최고급으로!"
클럽메드 이사회가 앙리를 CEO로 선임한 것은 2002년 12월. 기대를 모은 외부 영입 CEO의 실패를 지켜본 직후 내린 결정이었다. 식품기업인 다논 그룹에서 일하던 앙리는 1997년부터 클럽메드 본사의 재무·개발·국제관계 담당 디렉터와 제네럴 디렉터(총관리자)로 일하고 있었다.
내부 승진으로 세계적인 리조트 기업의 CEO가 된 '전직 대통령의 아들'. 그는 인터뷰가 진행된 본사 4층 회의실에 놓인 액자를 가리키며 60년 전 창업자 이야기를 꺼냈다.
"저 사진 속 두 신사가 클럽메드 창업자들이다. 이들이 생각해 낸 '올―인클루시브'는 당시로선 매우 독특하고 혁신적인 개념이었다. 한 장소에서 자연과 스포츠를 통해 지치고 절망에 빠진 전후 대중들에게 행복을 느끼게끔 한 것이다. 60년이 흘렀지만 '올―인클루시브'는 여전히 강력한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 경쟁력을 다시 하나의 브랜드 이미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최고급 휴양을 즐길 수 있는 친숙한 이미지의 리조트 브랜드'가 그것이다."
자연과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경치 좋은 곳을 선점한 클럽메드. 전세계 120여곳에서 리조트를 운영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대 위기를 겪은 클럽메드는 고급화 전략으로 부활 중이다. 사진은 클럽메드의 몰디브 카니 리조트 모습. / 클럽메드 제공
앙리 CEO는 2004년부터 본격적인 위기 극복에 나섰다. 사업의 초점을 클럽메드 비즈니스의 핵심인 '리조트'로 재조정하고 '업스케일' 전략을 선택했다. 그는 이를 "가치 전략(value strategy)"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9년 동안 리조트 50여개를 폐장했다. 대신 2005년부터 10억유로의 예산을 투입해 리조트 20개를 새로 오픈했고, 70여개의 리조트를 업그레이드했다. 대부분 4~5트라이던트(trident) 리조트다. '트라이던트'는 클럽메드 CI에 있는 '삼지창'을 의미한다. 리조트 등급을 매길 때 사용하는 클럽메드만의 표현으로 호텔 등급을 표현하는 별(星)과 같은 개념이다. 2003년 103곳이던 리조트는 75곳(2010년 말)으로 줄었다. 동시에 4~5트라이던트 리조트의 비율은 2004년 25%에서 2009년 56%로 2배 이상 늘어났다.
클럽메드는 현재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앙리 CEO는 "영업이익을 눈여겨보라"고 했다. 그의 취임 후 클럽메드의 영업이익은 2006년 900만유로에서 지난해 4200만유로로 꾸준히 증가했고, 매출 대비 영업이익 비율은 0%대에서 3.1%로 상승했다. 2004년부터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클럽메드의 매출은 리조트 숫자가 80개 이하로 떨어진 2007년(10월기·17억2700만유로)을 정점으로 수치상 3년째 내리막길을 걸었다. 앙리 CEO는 "최근 3년간 매출이 감소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프리미엄 전략을 위해 적자 시설을 없애고 리조트 이외의 사업을 정리한 결과"라며 "내년도 영업이익률은 10%대 진입이 목표"라고 말했다.
"중저가 여행과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더이상 우리의 타깃이 아니다. 클럽메드는 그들을 위한 상품이 아니다. 우리는 고객층을 버리는 길을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우리가 그 계층의 소비자를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고객층을 놓고 다른 상품들과 더 이상 경쟁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프리미엄 전략으로 승부한다. 이익률을 점점 높이고 있고, 이런 전략이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전략적 선택과 설득
앙리 CEO는 "바다와 태양이 어우러진 클럽메드 리조트의 화려함 뒤엔 최근 몇 년간 진행된 구조조정의 고통이 있었다"며 "회사의 전략적 선택을 위한 설득의 과정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글로벌 회사다. 여기 회의실에서 결정한 것들에 대해 태국 푸껫의 리조트나 한국 지사에서도 '좋은 결정'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핵심은 회사 내 설득이었다. 특히 (리조트 폐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GO(Gentle Organizer·리조트 직원을 일컫는 클럽메드만의 용어)들을 설득하는 게 중요했다. 내부 설명과 설득 과정에 3개월 정도 걸렸다. 나를 포함한 경영진들이 각지의 헤드 오피스를 직접 방문해 현재 비즈니스 상황, 우리가 가진 이슈, 잠정적인 해결책 등에 대해 설명했다."
앙리 CEO는 구성원들에게 "클럽메드는 최대 리조트가 돼야 하는가? 아니면 최고의 리조트로 거듭나야 하는가?"라고 물었고, 직원들은 "최고가 돼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2002년 위기에 처한 클럽
메드의 구원투수로 나선
‘전직 대통령의 아들’앙
리 지스카르 데스탱 CEO. / 블룸버그
"비용이 되는 건 무엇이든 파괴하고 제거해야 했다. 직원들을 돌봐야 할 책임도 있었다. 리조트 경영권을 넘기면서 GO들의 고용도 보장하도록 했다." CEO가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앙리 CEO는 전임자인 필립 보르그농(Bourguignon·63)이 다각화 전략에 따라 벌인 사업 부문도 과감히 정리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유로 디즈니(파리 소재) CEO에서 클럽메드로 자리를 옮긴 보르그농은 '리조트' 기업인 클럽메드를 '서비스'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쫓겨난 창업자 트리가노가 "클럽메드가 '미키 마우스' 세트로 변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새 경영진은 "아마추어"라고 무시했다. 보르그농은 2000년 '도심 속 레저'란 콘셉트로 파리와 캐나다 몬트리올에 엔터테인먼트 종합시설인 클럽메드 월드(Club Med World)를 개장했고, 이듬해 프랑스 최대 헬스클럽 체인 기업인 짐나즈 클럽(Gymnase Club)을 인수해 클럽메드 짐(Gym)을 만들었다. '데모크라티제이션(Democratization)'이란 전략하에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만 제공하는 중저가 리조트 사업도 추진됐다. 주머니가 얇은 18~30세 젊은이들을 끌어모으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2008~2010년 앙리 CEO의 손에 이런 사업 부문들이 차례로 정리됐다.
◆"정치인과 CEO는 확신을 주는 사람"
앙리 CEO는 '시앙스 포(Sciences Po)'로 불리는 파리정치대학(Institut d'�Budes Politiques de Paris)에서 수학(修學)한 정치학도다. 22세에 프랑스 루아르에셰르 지역의 지방의원(Conseiller General)에 당선돼 사회생활을 정치인으로 시작했다.
‘올—인클루시브’휴양 서비스를 처음 만든 클럽메드 리조트에서는 레포츠 시설 이용료나 장비 대여료를 추가로 내지 않는다. 이집트 시나이 베이의 클럽메드 리조트(위)와 그리스의 한 클럽메드 리조트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GM(투숙객)의 모습. / 블룸버그
그는 "정치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는 과정"이라며 "정치인 시절 다른 사람에게 확신을 주는 연습을 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이 회사를 경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은 아무 의견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당신의 지지자들이 가진 확신은 굳건하게 만들면서,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이 의견을 바꿔 새로운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직원들이 클럽메드를 부활시키기 위한 나와 경영진의 전략적 선택에 확신을 갖고 일하도록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주주들에게도 우리의 전략을 통해 창조될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했다."
아버지인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은 프랑스 중도 우파를 대표하는 엘리트 정치인이다. "정치에 입문했을 때 유럽은 지금의 한국처럼 두 개로 갈라져 있었다. 우리 세대는 우리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는 나의 이념을 위해 헌신하는 한 방법이었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정치인 앙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핵심 가치였다. 냉전이 끝날 무렵인 80년대 후반 앙리 CEO는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이념 대결이 사라진 세상에서 정치란 하나의 국가, 하나의 경제를 경영하는 것을 의미했다"며 "정치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한 기업을 경영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인의 고객이 국민이라면, 앙리 CEO에게 고객은 GM(Gentle Members)이다. GM은 투숙객을 의미하는 클럽메드의 용어. 클럽메드는 올―인클루시브 휴가를 즐기고 싶어하는 전 세계 잠재 GM을 7000만명 수준으로 보고 있다.
"매년 120만~130만명이 클럽메드 리조트를 찾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우리 회사의 성장 가능성은 아직 충분하다. 고객들에게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변화가 그들의 관심과 이익에 부합한다는 걸 확신시켜 주겠다." '올-인클루시브'란… 여행 상품에 교통·숙박·식비·서비스 전부 제공 61년 전 클럽메드 창업자들이 처음 고안한 '올―인클루시브(all―inclusive)'는 리조트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는' 휴양 서비스다.
여행 상품을 구매하면 왕복 항공비와 공항~리조트 간 교통비, 숙박비, 하루 세 끼 식비와 과자류, 맥주·와인·칵테일 같은 주류와 음료 등 모든 서비스를 추가 비용 없이 제공받을 수 있다. 윈드서핑, 스노클링, 카약 등의 레포츠를 수준별로 배우고 즐길 때도 장비 대여료, 시설 이용료, 강습비가 추가로 들지 않는다. 라틴댄스 같은 취미 활동과 게임을 즐길 때도 마찬가지다. 24개월 미만 아기, 만 4~10세 어린이 등 연령별 맞춤 서비스도 별도 비용 없이 이용 가능하다. 만약 리조트 밖에서 지역 관광 코스를 즐긴다면 별도 비용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