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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③] 처절한 사랑의 아리아… 비정한 사회를 고발하다

Culture 박종호·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입력 2011.08.13 03:05
박종호·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오페라란 귀족들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오페라에 관한 대표적인 편견이다. 물론 오페라에는 귀족도 나오고 왕족도 나온다. 하지만 똑같이 평민도 나오고 천민도 나온다.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다양한 계급이 나올 뿐, 굳이 귀족을 말하려는 것이 오페라는 아니다.

오페라는 소외된 계층을 적극적으로 조명한다. 과거에도 소수 계층은 있었으며, 어느 세상이나 마이너리티는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오페라에서 많이 보여주는 대표적인 마이너리티는 여성이다. 사실 서양 역사에서 여성이야말로 가장 부당하게 핍박을 받은 계급이었다.

그런 대표적인 오페라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일 것이다.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파리의 코르티잔(courtesan)으로서, 살롱을 중심으로 활동한 일종의 고급 매춘부라고 할 수 있다. 그녀들의 직업은 겉으로는 화려했을지 몰라도 속으로는 상처와 눈물투성이였다.

18세기 유럽의 많은 도시가 근대화되면서 농촌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해갔다. 하지만 도시의 고용 환경은 열악했다. 소득은 적고 환경은 척박해서 차라리 농노 시절이 그리웠지만, 돌아갈 수도 없었다. 반면 고용에서도 소외된 여성들은 창녀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비올레타는 그래도 성공한 코르티잔에 해당한다. 푸치니의 '라 보엠'에 나오는 미미 역시 전직(前職) 코르티잔이었다. 그런 그녀가 병들어서 빈곤 속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에 로돌포라는 새 연인을 만나는 슬픈 이야기가 '라 보엠'이다. 즉 성공한 코르티잔이 비올레타라면, 실패한 코르티잔이 미미다.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제비''나비부인', 마스네의 '마농''타이스',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중 '줄리에타'장면 등이 모두 '코르티잔 오페라'에 해당한다. 이렇게 창녀들이 비록 사회에서는 버림받았지만, 오페라에서는 그녀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와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비올레타는 인기 코르티잔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귀족들의 장난감이었을 뿐, 참된 사랑을 맛보지는 못했다. 대신 건강을 돌보지 않는 화류계 생활로 20대에 이미 폐결핵이 깊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열렬히 구애하는 부르주아 청년 알프레도를 만난다. 그녀는 처음엔 그의 철없어 보이는 사랑을 외면하지만, 결국엔 마지막 인생을 모두 그에게 걸어본다. 그리하여 그녀는 파리의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서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민다.

하지만 꿈같은 행복은 단 석 달이었다. 소문을 듣고 나타난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그녀의 과거를 이유로 헤어질 것을 강요한다. 이 때문에 비올레타는 다시 사교계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녀를 내쳤다는 실상을 모르는 알프레도는 그녀를 배신자로 오해한다. 그녀를 찾아간 알프레도는 사람들 앞에서 "그녀가 나와 3개월을 살았는데, 화대(花代)도 내지 못했다"며, 그녀의 면전에 돈을 던진다. 비올레타는 쓰러지고 사교계마저 영원히 떠난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빈곤과 결핵뿐이었다. 마지막에 그녀는 다시 돌아온 알프레도에게 안기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다만 그의 품에서 숨지는 것이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위안이었다.

'라 트라비아타'는 창녀의 사랑 이야기만 그린 것이 아니다. 사회가 그녀를 창녀로 살아가게 만들어놓고 다시 그녀를 버린 실태를 고발한다.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겉으로는 신사 같지만, 비올레타가 자신의 계급으로 진입하는 것은 철저하게 차단한다. 그렇게 해서 그녀들을 내몰고 죽였던 비정한 사회를 보여준 것이다. 이 오페라는 자기 가족과 재산만을 지키려는 부르주아 세태를 그린 것으로, 가족이기주의로 희생되는 힘없는 여성들을 그린 것이다. 당시 센 강에는 상경하여 돈도 잃고 사랑도 잃어서 강물에 몸을 던진 여성 시신이 거의 매일 떠올랐다. 귀족들과 그들을 흉내 낸 부르주아들은 창녀들을 데리고 즐기다가 또한 처절하게 짓밟았다.

오페라가 감동적인 이유는 다만 옛날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힘없는 여성이 수없이 많다. 지금도 또 다른 비올레타들이 처한 상황과 조건 때문에 무수히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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