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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의 오페라 이야기 ①] 老慾은 비극의 시작… 나이 들수록 지혜와 절제가 필요

People 박종호 정신과 전문의, 오페라 평론가
입력 2011.06.11 03:00
박종호 정신과 전문의·오페라 평론가
오페라의 본령은 비극(悲劇)이다. 하지만 오페라 중에서는 희극도 있으니, 희가극(喜歌劇)이라고 부른다. 웃긴다고 다 '희가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원칙이 있으며 정해진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이탈리아 희가극을 '오페라 부파(Opera Buffa)'라고 부르는데, 사전적 의미는 "나폴리에서 만들어진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 진행되는 희가극"이다. 즉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데에도 법칙이 있었으며, 누구나 공감하고 폭소케 하는 데에도 정해진 주제가 있었다.

오페라 부파에는 남녀 한 쌍의 커플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선량하고 서로를 사랑한다. 그들이 사랑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스토리다. 결론은 한 가지이니, 그것은 바로 결혼이다.

즉 둘이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것이 희가극이다. 그리고 끝이다. 무슨 의미인가? 결혼한다고 다 행복한 것이 아니란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때부터 사랑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안다. 그런데 어떻게 결혼이 끝인가? 결혼 이후에는 더 이상 희극은 없다는 뜻이다. 결혼 다음은 비극이라는 아이러니를 이미 그들은 알았다. 그 이후 남녀가 어떻게 사랑하고 싸우는지는 비극에서 다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희극은 결혼으로 끝이다. 이렇게 단순하고 표피적인 희극. 하지만 이런 희극이 사람들을 웃기고 또한 가르쳐왔다.

그리고 한 쌍의 남녀 주위로는 여러 인물들이 있어서, 일부는 커플의 결혼을 돕고 또 다른 몇몇은 결혼을 방해한다. 재미있는 것은 주변 인물들 중에서는 여주인공을 좋아하는 남자가 꼭 있다는 점이다. 그 남자의 조건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나이가 많고, 다른 하나는 돈이 많다는 것이다. 즉 돈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있는 탐욕스러운 노인이 젊은 여자를 탐하게 되지만 그것은 결국 실패로 끝나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젊은 여성은 노인의 유혹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젊고 착한 젊은이를 택한다는 것이 전형적인 희가극의 플롯이다.

'춘향전'이야말로 오페라 부파의 구성에 잘 부합하는 작품이다. 이도령과 춘향이라는 젊은 커플이 있고, 둘의 결합을 방해하는 나이 많고 권력 있는 변사또가 있다. 변사또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피날레는 둘의 결혼이다.

오페라 부파의 대표적인 명작이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다. 의사인 돈 바르톨로는 처녀 로지나의 보호자이기도 한데, 로지나는 청년 알마비바를 좋아한다. 그러나 바로톨로는 자신이 그녀와 결혼하여 젊은 신부는 물론 그녀의 지참금마저도 차지하려는 속셈을 가진다. 결국 음악선생 바질리오는 바르톨로를 돕고, 이발사 피가로는 로지나와 알마비바를 도와서 양(兩) 진영의 대결이 벌어진다. 하지만 결국 바르톨로는 패배하고, 로지나는 원하는 신랑과 결혼을 올린다는 이야기다.

바르톨로 외에도 욕심 많은 노인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희가극으로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도니체티의 '돈 파스콸레'가 있다. 변형된 형태도 많은데,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서 노인에 해당하는 자는 돈 조반니이며, '후굴탈출'에서는 파샤 젤림이다.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에서는 둘카마라 박사가 자신의 욕심을 숨긴 노인이다. '팔스타프'에서 베르디는 이런 늙은이에게 돈마저 빼앗아버리고 오직 욕심과 잘나가던 시절의 허세와 추억만을 남겨놓아서, 관객들이 그를 조소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희가극의 형태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신은 우리의 육체가 늙도록 만드셨지만, 마음도 같은 속도로 늙어가게 만들지는 않으셨다. 이미 물러서야 할 사람들이 사리사욕만을 채우기 위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노욕(老慾)은 일을 그르치고, 사회를 망칠 수 있다. 노인이 젊은 사람처럼 성적 욕망과 재물 축적 그리고 자아실현에만 몰두하는 것을 결코 아름답지 않게 보았다. 오페라극장은 시민계급의 학교였다. 희가극은 비록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웃는 것만은 아니었다. 오페라는 예리한 사회적 교훈을 던져준다.

그렇다면 당시 사회가 노인들에게 요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혜와 절제였다. 노인들은 경험에서 나온 지혜로 젊은 사람과 사회를 이끌어 가기를 바랐다. 그렇게 발전된 형태의 노인들이 지혜로운 자, 즉 현자(賢者)로서 아름답게 등장한다.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에 나오는 돈 알퐁소나 도니체티의 '신데렐라'의 알리도르가 그런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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