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 빼주는 건 배려 아닌 편견 여성이 아니라 동료로 인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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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철 머서코리아(인사컨설팅회사) 대표이사
입력 2010.12.25 03:11 수정 2010.12.25 07:09
여성 직원과 공존하려면…
폐쇄적인 '언니 네트워크'가 같은 여성 앞길 막을 수도…루머 아닌 일로 평가해야
#상황
"지시하신 사항을 반영한 새 기획안입니다".
A사의 장고민 부사장은 세 달 전 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신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에서 일해온 여성 마케팅 전문가인 나소신 상무를 스카우트했다.
하지만 첫 보고에서 나 상무가 내민 기획안을 본 장 부사장은 적잖은 불쾌함을 느꼈다. '내가 지시한 내용은 도대체 어디에 반영돼 있는 거야?' 수차례 독대를 통해 중점 사항을 꼭 집어줬는데, 하나도 반영돼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또 회식 자리에서 길 팀장과 정 팀장에게 나 상무를 지원하라고 넌지시 지시했었다. 그런데 두 팀장이 기획안 작성에 참여한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다른 팀장들은 물론이고 여성 팀원들조차 "나 상무와 같이 일하기 어렵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더 답답한 것은 장 부사장이 이런 부정적 평가를 나 상무에게 전달하는 게 편치 않다는 것이었다. 남자 팀장들에게 하듯이 야단을 치기도 그렇고, 술자리를 빌려 얘기할 기회도 마땅치 않고…. 장 부사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1 여성이 아닌 동료로 인식하자
최근 모 케이블TV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 중에 '남녀탐구생활'이라는 것이 있다.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반응하는 남녀의 행동을 희화화해 남자와 여자가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다른 종족인 듯 묘사한다.
하지만 같은 조직원이 된 이상 여성을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존재로 보기보다는 협력하는 동료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장 부사장은 나 상무를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공식 권한을 주고도 수시로 나 상무 일에 관여하고, 비전문가인 다른 팀원들이 쑥덕이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장 부사장이 공식적으로 나 상무에 대한 믿음을 보여줬다면 주변의 부정적 평가가 그리 크진 않았을 것이다. 길·정 팀장에게 나 상무를 도와주라고 지시한 것도 회식자리가 아니라 공식석상에서 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다.
2 여성은 힘든 일 하기 어렵다는 편견 버려야
여성과 일할 때 나타나는 남성의 가장 잘못된 반응은, 어려운 일은 내가 대신해 준다는 잘못된 배려와 여성에겐 비핵심적인 업무만을 맡기는 관행이다. 여성은 밤을 새우기도, 영업상 접대를 하기도, 육아 문제로 주말에 근무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과 배려가 오히려 여성의 성장 기회를 막을 수 있다. 이런 태도는 법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
나 상무의 팀원, 특히 여성 팀원들조차도 "같이 일하기 어렵다"고 불평하는 것은 나 상무의 업무 스타일이나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기보다는 회사가 그동안 여성 인력을 육성하는 데 소홀한 데 더 큰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간 여성들은 중추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있었고, 고위 경영진과 함께 일할 기회가 적었다. 그러니 고위 경영진 입장에선 여성 간부와의 업무 진행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3 '언니 네크워크'가 걸림돌일 수도
일본의 모 유통업체는 높은 학력과 경력을 가진 여성 인재를 적극 영입했으나, 대부분 2년 안에 이직했다. 가장 큰 원인은 강력한 언니 네트워크였다. 과거 입사한 여성 인력 중 상당수는 승진을 현실적으로 포기했다. 그리고는 직장 생활의 애환을 터놓고 공유하는 비공식적 모임을 가져왔다. 이들 입장에선 자신들과 달리 외부에서 영입돼 상층부로 바로 진입한 나 상무 같은 여성이 굴러온 돌이다. 그래서 같은 여성인데도 비판적인 여론을 형성하며 업무에서 배제하고 고립시켰다.
A사에서 나 상무를 비난하는 여성 동료들도 어쩌면 언니 네트워크의 일원일 수 있다.
이처럼 비공식 언니 네트워크는 조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보다는 경험과 능력이 있는 선배 여성이 후배를 키우는 공식적 여성 네트워크를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
4 의사소통 방식의 미묘한 차이
여성 임원들이 남자 부하 직원들에게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내가 제시하는 지침을 따르지 않는다'이다. 남성들이 여성을 상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그보다는 남녀 간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 때문인 경우가 많다.
여성은 "이런 방식은 어때요?", "A보다 B가 좀 나아 보이네요"와 같은 완곡한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남성은 이를 여러 대안 중의 하나로 고려해 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여성 상사의 의도는 "이 방식으로 하라", "A는 아니다"인데 말이다.
남성 상사 역시 본인도 모르게 여성 부하 직원에게 완곡어법을 쓸 때가 많다. 직설적으로 지시하면 여성이 기분 상할까 걱정돼서다. 이 경우 본인은 의사를 명확히 전달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장 부사장도 마찬가지다. 나 상무의 보고서에 지시사항이 반영돼 있지 않다면, 장 부사장 스스로 명확한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5 조언하길 두려워 말라
자, 이제 나 상무에 대한 주변의 나쁜 평판을 어떻게 전해줄 것인가? 많은 남성 상사들은 구설수가 두려워 여성 직원들과 개인적 대화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본인이 사심 없이 업무에 대한 지시와 조언을 한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잘못된 부분과 잘 된 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는 자리에서 피드백하긴 어렵다. 따라서 일 대 일 면담을 통한 쌍방향 대화가 필요하다.
이런 방식은 때로 '누가 누굴 봐준다더라'는 소문을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루머에는 귀를 닫으라. 루머가 아니라 일로 여성 직원을 평가하고 육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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