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使·政 함께 1938년 '살트요바덴 협약'
기업 이익을 사회로… 경영 대물림은 인정
발렌베리家의 독톡한 소유·지배구조 낳아
김인춘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교수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사회복지제도와 활발한 노조운동, 사회민주주의로 잘 알려져 있는 스웨덴은 사실 대기업 중심의 개방 경제를 추구해온 나라다. 스웨덴은 1870년대부터 1차 대전까지 당시 서구의 세계화 조류에 적극 참여해 수출과 민간기업을 기반으로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달성했고, 발렌베리 가문의 주요 핵심 기업들을 비롯해 지금까지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는 스웨덴 대기업들이 이 시기에 설립됐다.
스웨덴은 이후에도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수출지향적 산업화에 매진했고, 1970년까지 높은 생산성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만들기 위한 노조와 사민주의 정권, 그리고 대기업 자본과의 역사적 타협이 오늘날 발렌베리 식의 특이한 소유·지배구조를 낳았다.
1932년 처음 정권을 장악한 스웨덴의 사민주의자들은 경제성장과 고용의 토대가 되는 투자를 위해 자본과의 협력관계를 매우 중시했다. 유명한 사민주의 이론가이자 1932년부터 45년까지 재무장관으로 재임한 비그포르스는 "정치 권력을 장악한 노동운동은 기업에 우호적인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 자본의 입장에서도 사민당이 1932년에 이어 1936년에도 재집권하자 노·사·정 협상에 참여해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1938년 '살트요바덴 협약'이 나오게 된다. 이 협약은 기업 경영권을 유지하는 대신 일자리 제공, 투자, 80%의 배당소득세, 사회공헌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발렌베리 같은 가족 자본은 기존 소유 기업에 대한 경영권을 인정받는다. SEB 같은 대기업 계열 은행들이 지주회사에 기존 소유 주식을 양도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대표적인 조치다.
독점 자본과 복지국가가 공존하는 스웨덴 모델은 이때부터 발전됐다. 스웨덴의 사민주의자들은 대기업의 국유화를 포기하고, 대기업 자본의 기득권을 인정함으로써 공존을 선택했다. 이로써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으며, 개혁 프로그램에 대한 대기업 자본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좌파 정당과의 공존은 발렌베리 가문의 번영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1925년 당시 스웨덴 최상위 25개 기업 중 2개만을 지배했던 발렌베리 가문은 많은 기업을 인수합병하여 1967년에는 무려 10개를 지배하게 되었다. 사민당은 지주회사를 통한 피라미드 소유 구조와 차등 의결권을 허용함으로써 발렌베리와 같은 대기업들이 지배주주 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유럽에서 가장 낮은 법인세, 재단에 대한 세금 면제도 발렌베리가 경영권을 세습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대신 발렌베리와 같은 대기업 자본은 엄격한 사회적 통제와 감시를 받아들여야 했다. 무엇보다 시장 규율에 따른 생존 원칙을 스스로 철저히 고수해야 했다. 자본 생산성을 높여야 했고, 수익을 내지 못하면 퇴출되어야 했다. 노조의 경영 참여와 작업장 민주주의 역시 당연하게 요구됐다. 사민당과 노조는 대기업과 이른바 '경제 권력'을 공유하면서 기업 지배구조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