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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노트'] 분초를 다투는 '팝업 경제' 시대생존에 필요한 건 뭐?… 스피드!

Opinion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트위터:@kimrando
입력 2010.03.26 15:55
DVD Pop이라는 제품을 아시는지? 유통 기한이 있는, 일종의 일회용 DVD다. DVD를 특수 처리해 소비자가 진공 포장을 뜯고 영화를 본 후 5일이 지나면 콘텐츠가 사라진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영화인들의 '굿 다운로더' 캠페인과 함께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이 소멸성 DVD는 불법 복제품 수준의 저렴한 가격으로 진품의 영상을 제공할 뿐더러 반납 기한을 지켜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많이 보급돼서 한국 영화의 침체된 부가판권 시장이 합법적으로 커졌으면 좋겠다. 아무튼 재미있지 않은가? 5일이 지나면 사라져버리는 DVD라니. 한 번 본 영화를 고이고이 소장하는 일은 이제 구닥다리가 됐다.

팝업 스토어(pop-up store)를 아시는지? 인터넷 홈페이지의 팝업창처럼 한시적으로 문을 열었다가 사라지는 점포를 말한다. 주로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가 많이 모이는 곳에 1~2개월 정도만 오픈해 소비자의 관심과 체험을 유도한다. 현대백화점에서 미입점 브랜드를 위해 한시적으로 매장을 연 바 있으며, 신세계백화점은 컨테이너 트럭을 개조한 이동식 매장을 홍대입구, 가로수길 등을 수시로 오가며 열흘 남짓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적은 비용으로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예측하거나 관심을 끄는 마케팅 수단으로 적격이다. 게릴라 스토어라고도 한다.

'명동 크리스마스 삼겹살 사건'을 아시는지? 작년 말 어느 네티즌이 인터넷 게시판에 "제가 '베플(베스트 리플의 준말·다른 네티즌의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이 된다면 크리스마스이브에 명동 한복판에서 혼자 삼겹살을 구워 먹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그러자 다른 네티즌은 "제가 베플이 된다면 ○○○씨가 삼겹살을 구워먹을 때 옆에서 노래를 불러주며 흥을 돋우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또 다른 네티즌은 "탬버린을 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결국 이 메시지들은 베플이 됐고, 실제로 이들은 12월 26일 명동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노래를 부르고, 탬버린을 쳤다. 수많은 네티즌이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가 행사가 끝나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러한 모임을 플래시 몹(flash mob)이라고 하는데, 여러 군중이 특정 장소에 모여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황당한 행동을 한 뒤 순식간에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런 현상들의 공통점은 '한시성'이다. 그렇다. 요즘 젊은 소비자들은 가볍다. 순간의 논리에 강하다. 잠깐 쓰고 미련 없이 버리는 모습은 5일이 지나면 휘발해 버리는 DVD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경향이 가장 잘 나타나는 영역이 패션산업이다. 패션의 중심지 명동은 세계적인 SPA(패스트패션·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회사들의 격전장이 되고 있다. 유니클로·자라·터치·H&M 등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다투고 있는 가운데, 이랜드가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이들 업체는 빠르게 트렌드를 반영해 의류 교체 주기를 짧게 하고 있다.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소비자와 시장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지금 모든 매체가 온통 '모바일 빅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러한 지각 변동을 일으킨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된 것은 고작 작년 11월 말의 일이다. 불과 3~4개월 만에 일어난 관련 시장의 변화는 얼마나 극적인가?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출렁이는 세계 경제의 양상이나 도요타 리콜 이후 전개되는 사태의 추이는 현기증이 날 만큼 신속하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팝'하고 일어났다가 사라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산업이 수요와 공급 모두에서 휘발성이 강해진 데 기인한다. 상품을 수요하는 요즘 소비자의 변덕은 종잡을 수 없다. 플래시 몹의 군중처럼 빠르게 모였다가 미련없이 흩어진다. 또 공급 측면에서도 빠른 기술 혁신의 결과로 이른바 파괴적 혁신이 상시화하고 있다. 그렇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구조적인 것이다.

속도가 중요하다. 스피드경영을 강조해온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E(성과)=M(자원)×C(속도)²'이기 때문에 속도가 2배면 성과가 4배로 급증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더욱 강조하는 점은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 꼭 필요한 일에 집중해 시장 변화에 맞는 제품을 제때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격변의 시대에 적확한 의사 결정을 신속하게 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치밀한 계획을 신중하게 수립하기보다는, 신속하게 의사 결정을 내리되 아니다 싶으면 더욱 신속하게 진로를 수정할 수 있는 유연함이 '팝업' 경제의 시대에 필요한 미덕이다. 삼성전자 윤종용 고문이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의 성공 요인의 하나로 "전자업계의 시장 변화가 워낙 빠른 점을 감안해, 어떤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다가 잘 안 되거나 상황이 바뀌면 곧바로 중단하고 다른 방향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던 점을 든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매몰 비용이나 의사결정자의 체면에 연연하지 않는, 겸손하고 유연한 의사 결정 체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적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Weekly BIZ 독자들에게 작년 이맘때 들려주었던 한마디가 새롭다. "계획을 세우지 마라. 세상은 복잡하고 너무 빨리 변해서 절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대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라. 그래서 멋진 실수를 해보라. 실수는 자산이다. 대신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멋진 실수를 통해 배워라." 〈Weekly BIZ 2009년 4월 4일자 C1·4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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