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비즈

윤종용 고문이 털어놓은 '삼성전자 CEO 12년'

일반 이지훈 Weekly BIZ 에디터
입력 2010.02.20 03:03

삼성, 아직 초일류 아니야 1위라고 좋아하는 순간그 회사는 위험해진다 "삼성의 최대 강점은 임파워먼트(empowerment·권한 이양)·光速 의사결정"

"저도 몰랐어요. 비서가 인터넷 뉴스에 떴다며 전화로 알려줘서 그때 비로소 알았어요."

윤종용(尹鍾龍·66)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지난달 하버드비즈니스리뷰(Harvard Business Review·HBR)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경영 성과가 좋은 최고경영자' 2위로 선정된 사실을 미리 알았느냐고 묻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과거 다른 기관들은 기업이나 CEO 순위를 선정하기 전에 방대한 자료를 요구한 반면 이번에는 사전에 아무런 자료 요청이 없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고 그래서 얼떨떨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은 여러 차례 인터뷰를 고사했지만,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질문 하나에 30분 이상 답하는 등 열변을 토했다. /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그는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워낙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인터뷰 약속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삼성전자의 현 경영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수차례 인터뷰를 사양했다. 하지만, 이번 일(세계 2위가 된 것)은 그가 조금 나서도 될 일 같아서 그를 설득했다. 삼성의 경사이기도 하거니와 국가적 경사이기도 하니까. 이번 조사에서 그를 앞선 것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유일하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이번 조사는 1995년부터 2007년 사이에 임기를 시작한 글로벌 상장기업 CEO를 대상으로 재임 기간 전체에 걸쳐 실적을 평가한 것이다. 그동안에 시도된 적 없었던 매우 장기간의 평가이고, 주주수익률과 시가총액 변화라는 객관적 잣대에만 의존해 평가했기에 이변이 속출했다. 윤 고문이 2위에 오른 것은 최대 이변 중 하나였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윤 고문은 30년간 삼성에서 일한 후 CEO에 올라 삼성을 메모리칩 반도체와 '미투(me-too·모방)' 제품 정도를 내놓던 회사에서 최첨단 휴대전화 등 디지털 제품을 내놓는 혁신자로 바꿔놨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가 CEO로 있는 동안 삼성전자는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성역(聖域)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전자업계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윤 고문은 "나보다 훨씬 뛰어난 CEO들이 많은데 나를 선정한 것은 뜻밖이다"면서 예의 겸손 모드로 돌아갔다. 그는 삼성의 성공에 대해서도 "여전히 진행형에 불과하다"며 섣부른 자만(自慢)을 경계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둬 세계 1위에 오른 기업을 우리는 일류 기업이라 부릅니다. 일류 기업이 되는 것은 참 힘듭니다. 하지만 오늘 일류 기업이 됐다 해도 내일 나락(那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다음해에 곧바로 위기를 맞았던 기업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일류 기업은 다시 초일류 기업으로 변신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초일류 기업은 영원히 쓰러지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기업입니다. 삼성전자는 지금 분명 일류 기업이 됐지만, 아직 초일류 기업은 아닙니다."

그는 워낙 진지하고 담백한 성격이라 인터뷰하는 재미는 솔직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는 "CEO 재임기간 12년 중 가장 기뻤던 때가 언제였나"는 질문에 "기쁜 때가 별로 없었다. 하도 긴장하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해 뭔가 임팩트 있는 대답을 기대하던 우리를 맥 풀리게 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그만큼 진검승부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하니 숙연한 느낌도 들었다. 그는 "2004년 삼성전자의 순이익이 11조원 가까이 났을 때 그리고 세계 TV시장에서 1위에 올랐을 때 보람을 느꼈지만, 좋다고 표현할 수는 없었다. 좋아하면 그 순간 회사가 위험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5월 퇴임한 뒤에도 한국공학한림원 회장과 국가 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회장 등을 맡아 여전히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인터뷰는 서울 역삼동 한국기술센터빌딩 15층에 있는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실에서 약 2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창 너머 멀리 그가 사는 타워팰리스가 바라보였고, 그의 책상 위엔 〈리딩코리아를 위한 공학인들의 정책 제언〉, 〈국가대표 공학도에게 진로를 묻다〉와 같은 책들이 몇 권 놓여 있었다.

그는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과는 대조적으로 상당히 다변이다. "세계 2위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 하나에 그는 30분 이상 말을 이어갔다. 결국 실례를 무릅쓰고 말을 자른 뒤 "질문이 많으니 일문일답식으로 짧게 대답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그가 한번 말문을 열면 화제가 이쪽저쪽으로 옮겨다녀 듣는 사람이 당황하기 쉽다. 워낙 급한 성격이라 생각의 속도와 말의 속도가 엇박자를 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이 CEO로 재임하던 2005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글로벌로드쇼’에 참석, 당시 개발한 휴대폰 신모델을 살펴보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윤 고문은 인터뷰 내내 줄담배를 피웠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정말 고민이 많아 도저히 담배를 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고문님의 CEO 재임기간을 보면 삼성전자가 일본 소니를 앞지른 때가 절정이었다고 할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는 소니와의 경쟁에서 2002년 시가총액, 2004년 매출액, 2005년 브랜드 가치와 신용평가 등급, 2006년 TV 판매량, 2007년엔 특허 출원 수를 각각 앞섰다.) 감회가 어땠나요.
"소니는 특히 TV 시장 1위 자리를 삼성에 빼앗긴 것에 대해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했다고 들었어요. 거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삼성이 반도체와 LCD도 세계 1위지만 이들 제품은 특정 소수를 상대로 한 사업입니다. 반면, TV는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를 직접 대상으로 한 제품이란 점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제품은 품질뿐만 아니라 마케팅·브랜드 모든 면에서 앞서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소니가 충격을 받은 것이죠."
 
■ 디지털로 일본을 꺾다
―1990년대만 해도 삼성이 세계 1위가 되리라고 솔직히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IMF 경제한파로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삼성이 소니를 제친 비결이 무엇인가요?
"2000년대에는 아날로그 시대가 가고 디지털 시대가 온다고 하기에 당시 경영진들과 무척 고민했습니다. 고민의 포인트는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디지털시대가 되면 경쟁력의 기준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둘째는 부가가치는 어디서 얻어야 하는가였죠.
먼저 경쟁력에 대해 말해 볼까요. 아날로그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의 축적, 경험의 축적, 그리고 근면성이 중요한 자원이었죠. 바로 일본 기업이 가장 잘하고 강점을 갖고 있는 요소들이었습니다. 가령, 아날로그 TV에 들어가는 부품이 약 3000개 정도 됩니다. 조립라인에서 일일이 조립을 해야 하니 불량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기술과 경험이 풍부하고, 근로자들이 부지런한 일본 기업의 불량률이 낮은 것은 당연하죠. 이런 아날로그 시대의 경쟁력은 오랜 시간이 있어야 쌓입니다. 소니가 1946년, 삼성전자가 1969년에 설립돼 23년의 격차가 있으니, 아날로그 시대가 계속되면 삼성은 소니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지만 디지털시대엔 경쟁력의 요소가 달라집니다. 디지털 시대엔 '시스템 온 칩(system-on-chip)'이라 해서 모든 회로가 반도체 칩 안에 들어갑니다. 조립 공정이 간단해지고 불량률이 낮아집니다. 디지털 시대엔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신제품을 남보다 빨리 개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저와 삼성전자 경영진은 디지털시대에는 창의력, 즉 두뇌와 스피드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 두 번째 요소인 부가가치는 디지털 시대에는 어디서 얻나요.
"아날로그 시대엔 주로 구매·조달 분야 분야에서 부가가치가 발생했습니다. 부품을 조달하는 코스트를 낮춘다든가,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비슷한 품질을 가진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대기업은 경쟁력이 약화되죠.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서 부가가치를 높일 것인가?
결론은 브랜드 이미지와 마케팅 전략의 향상이 디지털 시대 부가가치의 핵심 요소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10년 전만 해도 삼성의 TV 가격은 소니에 비해 중저가 제품은 5~10%, 고급 제품은 20~30% 정도 쌌어요. 원가는 비슷했는데 말이죠. 값이 워낙 싸서 많이 팔아도 수익 면에선 경쟁이 안 됐죠. 이런 차이를 극복하려면 브랜드 이미지와 마케팅 역량을 향상시켜야 했습니다. 삼성전자가 해외 바이어들에게 '제값 받기 운동'을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죠"
윤 고문의 성공의 원점은 과거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받았던 충격이다. 1966년 삼성에 입사한 그는 삼성전자가 설립된 1969년부터 4개월씩 3번에 걸쳐 일본 산요전기와 마쓰시다전기 등에 가서 연수를 받았다. 당시 그는 "일본이 너무 앞서 있어서 우리 세대에는 절대로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겠구나" 하는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1977~1979년 도쿄지점장과 1995~1996년 삼성전자 일본본사 사장을 지내면서, 어떻게 하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가 얻은 해답은 '디지털 시대가 곧 기회'라는 점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아날로그 시대에 누렸던 경쟁력의 우위가 디지털 시대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방심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디지털로 바뀌는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일본 기업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죠."
■ 삼성전자의 최대 강점은 임파워먼트(권한 이양)
―삼성전자의 성공은 중요한 순간에 빠르고 결과적으로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한 것이 큰 요인이라고들 합니다.
"외부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삼성전자의 가장 큰 특징은 문제가 발생한 후에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사장단이 수시로 모여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토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문제들마다 미리 결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또 전자업계의 시장 변화가 워낙 빠른 점을 감안해 어떤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다가 잘 안 되거나 상황이 바뀌면 곧바로 중단하고 다른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을 잘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의사 결정을 자주 바꾼 적이 있나요.
"반도체 생산라인 하나를 신설하는데 1년 정도 걸리는데, 계획서 잘 짜놓고 진행하다가 6개월 뒤에 스톱하기도 했어요.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니까 밑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그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생산라인 건설을 담당하는 삼성물산 쪽에선 난감해했죠. CEO가 지시를 자주 바꾸면 조령모개(朝令暮改)라는 말도 듣습니다만, 상황이 바뀌고, 과거의 지시가 틀린 것으로 확인되면 곧바로 지시를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쓰시다 고노스케도 조령모개를 참 잘했다고 들었습니다."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던 그는 잠시 멈추더니 비서에게 물 한 컵을 부탁했다.
―고문께서 보는 삼성전자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우선 리더십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가장 큰 장점이 전문경영인에게 완전히 임파워먼트(권한 이양) 하는 것입니다. 임파워먼트는 기업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임파워먼트를 해야 밑의 사람이 큽니다. 위에서 모두 챙기면 밑에 있는 사람은 자주 잊어버리죠. 그러다가 가끔씩 위의 사람이 안 챙기면 사고가 납니다. 부하를 믿지 못할 이유가 없어요. 사람은 모두 자존심이 있어서, 맡기면 해 냅니다. 그 과정에서 크는 거죠."
―삼성전자의 다른 장점은 무엇인가요.
"둘째는 우수한 인재를 아주 많이 채용했다는 점입니다. 삼성전자의 박사가 3600명입니다. 대다수가 이공계죠. 서울대 공대 교수님들이 300여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10배가 넘습니다. 해외 경영대학원(MBA) 출신도 500여명이나 있습니다. 주로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글로벌 기업에서 10년 정도 근무한 사람들입니다. 인재를 불러모으니 기술 개발이 빨라지고 마케팅 능력이 향상됐습니다. 셋째는 세계 최고 수준의 SCM(supply chain management·공급망 관리)입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 SAP도 글로벌 기업들 중에 삼성전자만큼 SCM을 잘하는 곳이 드물다고 하더군요. 재고 관리 시스템은 과거 일본 기업들을 못 따라갔지만, 지금은 우리가 그들보다 빠릅니다."
―한때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에 대해 반도체 이외의 사업을 분사하라는 권유를 한 적이 있는데 거부했습니다. 이유가 있었나요.
"5~6년 전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말했죠. '당신은 투자자이므로 1~2년만 내다보면 되겠지만, 나는 내가 떠나더라도 50년, 100년 후에도 삼성이 계속 성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요. 게다가 앞으로 전자산업이 갈수록 컨버전스(융합)되는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와 다른 전자제품을 함께 운영해야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아니냐고 했죠. 곧 나오는 HDTV에는 옛날 컴퓨터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가 들어간다는 예도 들어 설명하면서 말이죠. 실제로 2~3년 후에 제가 말한 컨버전스 효과가 나서 수익이 커지자, 그 외국인 주주가 나보고 '당신 생각이 참 깊었네요' 하더군요. 내가 보기엔 그들의 생각이 짧았던 것인데 말이죠."
 
■ 잘될 때가 가장 위험하다
―'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유명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Weekly BIZ와의 인터뷰(1월 23일자 C1·5면)에서 글로벌 선두 기업이 하이엔드(고가제품) 시장으로 점점 올라가면, 누군가 로엔드(저가제품) 시장부터 치고 올라오면서 위협한다고 했습니다.
"원칙적으로 공감합니다. 한때 제가 일본 기업을 도저히 못 따라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따라잡는 일이 벌어졌으니, 앞으로 우리도 중국이나 인도 기업에 똑같은 방법으로 당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로엔드에서 하이엔드로 가는 것은 어렵지만, 하이엔드에서 로엔드로 가는 것은 쉽다고 봅니다. 우선 로엔드에서 하이엔드로 가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로엔드에 집착해선 브랜드 이미지가 안 올라가기 때문이죠. 우리가 로엔드 제품인 브라운관 TV를 일본 경쟁업체보다 먼저 버린 것이 그런 이유였죠. 100달러짜리 제품을 팔다가 1000달러짜리 팔려면 생각을 완전히 바꾸고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로엔드 제품에 계속 매달려 있었다면 지금처럼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반면 하이엔드 기업이 로엔드 시장에 들어가는 것은 쉽다고 봅니다. 이미 삼성이 브랜드 이미지를 쌓은 상황에서, 로엔드 제품을 만든다면 똑같은 제품이라 해도 경쟁사보다 비싸게 받을 수 있겠죠. 물론 장차 로엔드 쪽에서 치고 올라올 중국이나 인도 업체들에 대해 준비는 해야겠지만, 섣불리 로엔드로 내려가는 것은 아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파괴적 혁신'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달랐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책 〈초일류로 가는 생각〉에서 경영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경영은 자원과 프로세스의 관리이며, 혁신의 연속이다.' 그는 "경영 혁신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변하지 않는 자기 자신"이라고도 했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쉽게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에 크게 성공한 경험이 있거나 고령화됐기 때문이죠. 삼성전자도 지금이 정점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잘될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입니다. 어려울 때에는 다들 긴장하고 노력하지만, 잘될 때는 현실에 안주해 방심하게 되니까요."

■ 본업을 버리면 위험해진다
―삼성은 생산을 아웃소싱 하지 않고 가급적 직접 생산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에 대해 비효율적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기업이 핵심 역량을 갖고 있는 본업을 내버리고 다른 것을 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삼성의 본업은 전자제품 생산입니다. 과거에 대만의 업체가 찾아와서 생산을 자신에게 맡기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제가 하지 말자고 했어요. 전자제품 제조는 나이키가 신발을 외부 업체에 위탁해서 제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제조 아웃소싱에 너무 매달렸다고 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최근 삼성전자에 대해 부쩍 제기되기 시작한 우려에 대해 그의 의견을 물어봤다. 영화 아바타나 애플 아이폰의 진격에서 보듯 날로 콘텐츠와 소프트웨어의 부가가치가 커지는 시대에, 삼성은 하드웨어는 강한데 소프트는 약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너무나 단순하고 명쾌했다. 이렇게 쉽게 대답할 수 있는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기업은 우선 자신이 잘하는 본업에 충실하고, 다른 것은 여력이 생긴 뒤에나 해야 한다고 봐요. 콘텐츠 사업은 그것을 주업으로 하는 기업이 잘할 수 있겠죠. 거기서 돈이 좀 생긴다고 해서 왜 삼성은 안 하느냐고 지적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삼성전자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만, 굳이 말하라면 우선 좀 더 우수한 인재를 뽑아야 한다고 봅니다. 초일류 기술을 확보하려면 인재가 중요하죠. 그리고 조직을 좀더 믿음과 신뢰가 있게 만들길 바랍니다."
―최근 기술 속도가 빨라져 예상하지 못했던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이북(e-book), 3D TV가 그렇습니다. 앞으로 10년 후 IT 시장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요?
"1년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입니다. 10년 후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럼 방법이 없다는 의미인가요?
"아닙니다. 예측하고 뭘 하는 것보다는 아주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서 그들이 시장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따라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입니다. 기술 면에서 앞서간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꼭 앞서갈 필요는 없고, 따라가면서 보다 좋은 제품으로 시장을 크게 장악할 수 있는 순발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거기엔 인재의 역할이 절대적이죠."
―CEO 재임기간 중 이학수 당시 삼성 전략기획실장(현 상임고문)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그와 저는 정말 생각이 잘 맞는 명콤비였어요. 이건 주변에 물어보면 압니다. 같은 날 그분은 비서실장 되고 저는 전자 CEO로 발령받아 12년을 같이 일했어요. 그분 아주 괜찮은 사람이에요. 이해력과 판단력이 빠르고, 구질구질한 이야기 안 하고, 참 겸손합니다. 우리는 말 안 해도 이심전심으로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정도였죠."
인터뷰가 끝난 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쉬었지만, 그는 여전히 힘에 넘쳐 보였다. 그는 자신이 2007년에 쓴 책 〈초일류로 가는 생각〉을 꺼내 사인을 해 주었다. 그는 이 책을 시중에는 판매하지 않고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내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담은 책이어서 외부에 내보이기가 쑥스러웠다"고 했다. 그가 책 제목을 〈초일류로 가는 길〉이 아니라 〈초일류로 가는 생각〉이라고 한 것도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나서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은 결벽증에 가까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소위 '오너'가 있는 기업에서 그가 12년이나 장수한 다른 비결인지도 모른다.
윤종용 고문은

나서기 싫어하고 지고는 못 사는 성격… "위기에 강한 CEO"

1944년 경북 영천 출생. 고향 사람들은 그를 "남에게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 동시에,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워낙 싫어하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196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사한 그는 1969년 삼성전자 창립 멤버로 전자산업에 투신했다. 일본에 3차례 연수, TV 설계 기술을 배워와 국내 최초의 흑백TV(1971년)와 컬러TV(1977년) 생산을 주도했다. 삼성전자 도쿄지점장, 기획조정실장, TV·비디오 사업본부장, 종합연구소장을 지낸 뒤 1990년 TV부문 대표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삼성전자를 떠나 삼성전기 사장, 삼성전관 사장, 삼성그룹 일본본사 사장 등을 지내면서 '주류에서 밀려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삼성전자의 총괄 대표이사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 곧이어 닥친 IMF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 내면서 '위기에 강한 CEO'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000년대 삼성을 '글로벌 톱 전자기업'으로 만든다는 전략을 주도, 소니를 필두로 한 세계적인 전자업체들을 제치며, 세계 1위의 목표를 달성했다. 약 12년간의 삼성전자 CEO 자리에서 2008년 5월 물러나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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