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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만명이 콘크리트 1000만t 쏟아부은 獨 대서양 방벽… 배후 차단되자 고립, 무용지물로

남도현 군사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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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10.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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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방벽의 일부로 프랑스 북부 롱그-슈흐-메흐에 축성된 해안 포대의 최근 모습. 상륙을 저지하는 데 실패하자 곧바로 덩치만 큰 무용지물이 되었다. / 위키피디아 이미지 크게보기
대서양 방벽의 일부로 프랑스 북부 롱그-슈흐-메흐에 축성된 해안 포대의 최근 모습. 상륙을 저지하는 데 실패하자 곧바로 덩치만 큰 무용지물이 되었다. / 위키피디아
영국 본토 침공을 포기한 독일은 대륙 반대편에 위치한 소련과의 전쟁에 전념하기 위해 1942년부터 대서양 방벽(Atlantic Wall)이라 불리는 방어물 구축에 착수했다. 우선 영불해협 일대인 북부 프랑스, 벨기에에서 건축이 시작되었으나 궁극적으로는 북부 노르웨이에서 피레네 산맥까지 방어선을 연장해서 대서양에 연한 유럽 대륙을 완전히 봉쇄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연인원 45만명에 이르는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국민이 강제 동원되었다. 점령지에서 1000만t의 콘크리트와 100만t의 철강재가 수탈되었다. 대서양 장벽은 곳곳에 대전차포 등을 갖춘 수백 개의 벙커로 만들어졌고 각 거점은 깊은 참호로 연결되었다. 더불어 적 함대를 타격할 수 있는 거대한 해안포가 장비되어 외견상 난공불락으로 보였다.

1944년이 되어 미국이 대규모 원정군을 영국에 파견하면서 그토록 우려했던 양면 전쟁의 위협이 현실로 다가오자 독일은 더욱더 장벽에 의존하려 했다. 실제로 상륙 첫날 독일군은 요새를 바탕으로 강력하게 방어에 나서 2배 정도가 많은 전사상 피해를 연합군에게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시설 자체는 훌륭했지만 연합군에게 배후가 차단되자 하나하나 고립되어 갔다. 제공권, 제해권을 연합군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어 요새를 벗어난 곳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거기에 더해 히틀러의 간섭으로 기갑부대의 후속 지원이 제때 이루어지지 못해 연합군의 내륙 진출을 초기에 막지 못했다. 결국 그렇게 고정된 대서양 방벽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150년 전의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을 어긴 러시아를 정벌하러 간 것처럼 비록 명분은 다르지만 히틀러는 장벽으로 대륙을 봉쇄하고 소련을 쳐들어갔다. 하지만 제1차 대전을 기준으로 한다면 방벽을 최고의 방어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2차 대전에서는 이미 고정식 방어물의 효과가 대폭 줄어든 상태였다. 독일군이 기동성 있는 공격 작전을 펼치면서 이러한 변화를 이끌었다. 그런데도 독일은 자신이 방어할 때는 1차 대전 때와 같은 방식으로 방어선 구축에 나서는 패착을 뒀다. 오늘날 대서양 방벽은 최고의 관광자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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