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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선 '시진핑 측근' 자처하는 이들에 의존해야… 美 파트너들은 정직하고 투명

정리=안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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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10.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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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중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갔나 - 고진석 텐스페이스 대표


한국의 핀테크 설루션 업체인 텐스페이스의 고진석(48) 대표가 2014년부터 3년간 핀테크 대국인 중국 시장 진출에 도전을 했다가 고배를 마시고 미국 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지난 2일 서울 충정로 중국인문경영연구소의 인문학 강의에서 자신의 중국 현지 사업 경험을 청중과 공유했다. 강연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핀테크 대국 중국에 걸었던 기대

텐스페이스는 SNS(소셜미디어) 빅데이터를 모아 분석해 개인 신용등급을 평가해주는 핀테크(Fintech) 설루션 업체다. 개인 SNS 계정의 글 빈도수, 친구 목록 등을 분석해 신용등급을 평가하고 설루션을 활용해 돈세탁도 예방한다. 한국은 나 같은 핀테크 사업가들에게 최악의 시장으로 꼽힌다. 핀테크 기술에는 빅데이터가 필수인데,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빅데이터를 쓰지 못하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없다. 빅데이터 관련 법률 문의를 해도 부처마다 해석이 다른 경우도 많다. 핀테크 사업에 활용하기 위해 특정 빅데이터 활용 법안을 정부 관련 부처에 물어보면 '나는 모른다. 다른 부처에 물어봐라'는 답변을 흔히 받는다. 책임을 넘기려는 것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이런 사례를 자주 겪게 된다.

반면, 중국은 외견상 핀테크 사업을 하기에 최적으로 보인다. 중국에는 먼저 해보고 문제가 되면 규제한다는 '선(先) 허용, 후(後) 규제'의 혁신 문화가 있다. 또 중국은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대의만 있으면 국민의 빅데이터를 마음껏 쓸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선택과 집중을 하면 놀라운 속도로 기업들이 커진다. 중국인 가운데에는 핀테크를 활용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기업들이 기술이나 서비스상의 오류를 잡아내기도 쉽다. 오류를 잡아 나가며 완벽에 가까운 핀테크 기술을 완성할 수 있다. 중국의 대표적 모바일 메신저 위챗의 핀테크 서비스인 위챗페이의 경우 한 달 활성 이용자 수는 10억명에 달한다. 핀테크가 삶에 녹아 있다. 거지도 위챗페이로 구걸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 중국은 한국의 핀테크 사업가들에게는 꿈과 희망이 가득 찬 비즈니스 기회로 보인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서 보니 이 모든 건 허상이었다.

"기술 내놓고 돌아가라"

나는 SNS에 쌓여 있는 빅데이터를 활용, 개인의 신용등급을 평가해 빠른 대출로 이어지게 하는 설루션을 판매하기 위해 2014년 중국을 찾았다. 중국을 잘 몰라 중국 측 사업 파트너가 필요했다. 이른바 '관시(關係·인맥)'이다. 당시 나의 중국 관시는 "나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측근이다. 나만 믿으라"는 말과 함께 자신을 따르면 모든 일이 풀린다는 뉘앙스로 말을 해왔다. 욕심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중국 정부 고위 간부라는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조심스러워 "도대체 어떻게 시진핑의 측근인가"라는 질문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간혹 그의 멋있는 어휘도 판단력을 흔들리게 했다. 그는 사자성어 등을 활용하면서 왜 자신을 믿어야 하는지 강조하고는 했다. 지금 되짚어보면 모두 말뿐인 허세였다.

막상 만남이 이어질수록 그가 취하는 태도는 애매해졌다. 자동차 같은 하드웨어였다면 물건만 팔고 나가면 그만인데, 설루션 같은 소프트웨어는 달랐다. 판매와 서비스 계약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는 제대로 된 계약은 주선하지 못하고 시간만 끌었다. 비상장사에 규모도 작은 우리 회사의 기술을 뺏는 것은 그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 사실 소프트웨어라는 것이 알고리즘만 알면 금방 만들기 마련이다. 그는 '알고리즘을 내놓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대국인 우리가 네 기술을 써준 것에 감사해라'는 뉘앙스의 말을 반복했다. 그래서 나의 중국몽은 꺾이게 됐다.

중국 사회의 정보 불투명성은 외국인 사업가에게 큰 위험요인이다. 반면 미국 사회는 외국인 사업가가 납득할만한 투명성을 갖고 있다. 사진은 오성홍기가 휘날리는 중국 상하이 금융중심지(왼쪽)와 미국의 월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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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의 정보 불투명성은 외국인 사업가에게 큰 위험요인이다. 반면 미국 사회는 외국인 사업가가 납득할만한 투명성을 갖고 있다. 사진은 오성홍기가 휘날리는 중국 상하이 금융중심지(왼쪽)와 미국의 월스트리트. /블룸버그
정보 공개 안 되고 불투명한 중국

중국 사회는 투명하지 못했다. 미국이나 한국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모든 정보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좌관 혹은 문재인 대통령의 보좌관 등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것들이 불가능하다. 중국에서는 페이스북과 유튜브도 금지돼 있다. 중국에서는 모두 "내가 바로 시진핑의 측근"이라고 서로 주장하며 자신들을 믿으라고 하지만 확인이 되지 않는다. 사업가들은 작은 숫자 하나에도 사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숫자도 잘 확인이 되지 않는다.

물론 중국에도 법률이 있고 내규가 있다. 하지만 막상 이를 안 지키려고 마음을 먹으면 안 지킬 수 있다는 점이 외국의 사업가들을 힘들게 한다. 중국 진출을 노리는 한국 사업가들이 정식 절차를 놔두고 관시에 기대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중국 고위층을 잡는다면 이런 불투명성은 한 번에 날릴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관시를 활용해 승승장구했다고 주장하는 사례를 접하면 더욱 흔들리게 된다. 부정부패를 싫어한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기업인도 자신에게 관시가 효율적인 방법이 된다면 활용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생각이 사업가들의 발목을 붙잡게 된다. 관시가 아니면 중국 사업은 할 수 없다는 편견이 편법을 활용하게끔 하는 것이다. 한 편법이 먹히지 않으면 또 다른 편법을 찾게 되고, 결국 사업의 불투명성은 점점 높아지기 마련이다.

정직하고 명확하고 투명했던 미국

나는 중국 꿈을 접고 미국행을 결심했다. 지난 8월에는 미국 시카고의 한 증권사와 설루션 공급 계약을 맺었다. 미국 파트너는 아닌 것에 대해선 아니라고 하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좋다고 말한다. 중국 진출 실패 후 지인을 통해 나의 설루션 사업 내용을 미국의 한 증권사에 전달했을 때 그런 문화를 처음 겪었다. 설루션 사업 내용을 들은 증권사 관계자가 직접 한국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같이 해 보자"며 너무 쉽게 설루션 공급 계약을 맺었다. 중국에 들인 노력의 1만분의 1도 들지 않았다. 물론 미국도 가끔 이해가 안 되는 단호함 같은 단점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정직했고 대답은 명확해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 미국과의 계약 소식을 알게 된 중국 은행 쪽에서도 설루션 공급 관련 계약을 문의해왔지만, 중국에서 배운 교훈에 따라 이를 거절했다. 중국의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설루션 공급이 중국에서 정착할 경우 나의 회사는 기업 가치 1조원에 달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겪은 3년의 경험은 중국 기업을 사업 파트너 목록에서 철저히 배제하게 했다.

중국은 분명 19세기 이전에는 최고의 문명국가였다. 우리는 중국에 유학을 하러 갔고 중국에서 지식을 배웠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굴기하고는 있지만, 한국 사업가가 사업을 하기에는 아직 불투명하고 위험이 많은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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