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View & Outlook

현장 감각 떨어지는 벤처 지원책

심재도 워터테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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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8.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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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Talk]
1차 R&D 신청때 반려된 사업계획서
3차 공고 때 보완하여 냈으나
낡은 자본금 규정 들어 신청 막아


심재도 워터테크 대표이사
심재도 워터테크 대표이사
수질 정화장치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필자는 최근 정부에 연구개발(R&D) 지원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에서 관할하는 제3차 창업성장기술개발사업 R&D 지원 프로젝트였다. 회사의 자본금이 전액 잠식되었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자본금 잠식은 시설 투자 때문에 일시적으로 부채가 늘어난 결과였다. 그래서 자본 잠식을 해소할 방안을 첨부해 이의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앞서 1차 신청 때에는 사업계획서가 충실하지 못해 최종 추천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평가위원들 의견을 종합하여 사업계획서를 충실히 만들어 3차 사업 공고 때 재신청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무 담당자가 교체되면서 자본금 전액 잠식이라는 지원 제외 규정을 들고나왔다. 그래서 사업계획서 서류 심사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실무 담당자에 따라 서류 심사 기회가 달라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정부 부처는 허용하는 규정, 왜 산하 기관이 막나

정부가 중소벤처기업 지원에 발벗고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정책 집행 현장에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몇 가지 점에서 정부의 정책은 모순을 안고 있다.

먼저 법인은 2009년 이전까지는 최소 자본금이 5000만원 이상이어야 설립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중소기업 연구·개발과 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법인 설립 요건이 대폭 완화됐다. 그래서 이제는 자본금이 100원만 있어도 설립이 가능하다. 그 이후로 중소기업 설립은 매년 증가세에 있다. 중소벤처기업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독자적으로 연구·개발한 기술을 토대로 최소 자본금으로 창업을 한 뒤 시제품을 개발하고 상용화하기 위해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특허 등 기술을 담보로 1억원 정도의 대출을 받아 사업에 착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9년부터 자본금 제한을 사실상 없앴으니 자본 잠식이란 개념도 그 의미를 상실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본 잠식 규정을 근거로 중소기업의 R&D 지원을 제한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결정이다.

둘째, 중소벤처기업부는 창업 3년이 지난 중소기업이 R&D 지원을 신청할 때 지원 제외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다만 시설 투자에 따른 일시적 부채 증가의 경우 증빙 서류를 제출해 평가위원회에서 지원 가능한 것으로 인정을 받으면 예외적으로 지원을 해 준다. 그러나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관인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에는 이런 예외 규정이 없다. 벤처기업의 도약기인 3년 차부터 부채 비율이 1000% 이상인 경우와 최근 결산 기준 자본 전액 잠식인 경우 R&D 지원 신청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테면 100원으로 법인을 설립하여 3년이 경과한 후 101원을 써버리면 R&D 지원 신청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 부처가 허용하고 있는 예외 규정을 그 산하 기관이 불허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는 행정이다.

셋째, 중소벤처기업부 사례는 다른 정부 부처인 농림식품부와 비교해 볼 때도 논리가 부족하다. 농림식품부 농림식품기술평가원의 경우 중소기업의 R&D 지원 신청 때 자본금 제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왜 같은 정부 산하 기관인데 잣대가 다른가.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지원사업 관리지침은 납득할 수 없는 낡은 규제다. 수많은 신생 중소벤처기업들이 R&D를 통해 신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는 마당에 법인 설립 자본금 요건이 완화되기 이전에 제정된 중소기업 기술개발사업 지침에 의거해 R&D 응모 자체를 규제하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중소기업의 편에 서서 기술 개발을 막는 애로 사항을 과감히 개선해야 할 정부가 중소기업의 성장과 도약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본 기사는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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