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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전성기가 끝나고 프랑스가 돌아온다

야체크 로스톱스키 전 폴란드 부총리·재무장관 | 아르납 다스 인베스코 글로벌시장 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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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8.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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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lumn]
러시아 부상, 미국은 퇴장, 영국은 브렉시트
어정쩡한 독일 대신 佛, EU통합 지렛대로


야체크 로스톱스키 전 폴란드 부총리·재무장관
야체크 로스톱스키 전 폴란드 부총리·재무장관
지난 5월 유럽 의회 선거에서 차기 유럽연합(EU)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들이 지명됐다. 민족주의 정당들은 이번 선거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서유럽 국가들은 연방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특히 독일 국방장관을 지낸 여성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을 EU 집행위원회의 차기 위원장으로 뽑았다. 독일인이 그 자리에 오른 것은 반세기 만에 처음이다. 유럽에서 독일의 영향력이 계속 이어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물밑 흐름은 수면 움직임과 다를 때가 있다. 역사가 말해주듯 패권국은 영향력이 줄어들 때 그런 공식적인 자리를 맡았다. 오늘날 몇 가지 요소들이 EU 리더 독일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가 최고의 수혜자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독일 지배력은 미국의 방위 약속과 세계 최고의 제조업체들, 거대한 채권국 지위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런 기초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독일의 전성기는 지나갈 듯하다.

아르납 다스 인베스코 글로벌시장 전략가
아르납 다스 인베스코 글로벌시장 전략가
독일, 채권국의 금융이익 우선

세계적으로 초저금리 시대가 열렸다. 특히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10년 만기 채권은 최근 미국의 같은 만기 채권보다 더 낮은 수익률을 내고 있다. 유로존에서 국가 부채 위기가 감소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독일이 재정 긴축과 구조 개혁의 대가로 재정 지원을 해주면서 유지해온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EU 내 정치적 힘의 균형이 다시 바뀌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이다. 아직 현실화되진 않았지만 브렉시트는 프랑스가 1990년 이전처럼 EU 세력 균형의 중요한 결정자로 부상할 수 있게 한다.

과거 유럽에서는 서독과 이탈리아, 스페인이 유럽 통합을 선호한 반면 영국은 반대했다. 이런 구도에서 프랑스가 결정권을 쥐었다. 결국 유럽의 주요 의제는 독일과 프랑스 합의에 따라 결정됐고 프랑스는 자국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럽 통합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독일 통일과 유로존의 경제 위기는 이를 변화시켰다. 영국은 더 강경한 EU 회의론자가 됐다. 프랑스는 유럽 통합 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반면 독일은 EU 내에서 자국과 북유럽 채권국들의 금융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어중간한 입장의 부동층이 됐다. 독일은 유로존 국가와 비유로존 국가 간 분열을 피하기 위한 좀 더 깊은 유럽 통합에 반대하기도 했다.

독일이 유럽 통합에 단호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브렉시트로 영국이 떨어져 나가면 유럽은 프랑스가 중심 역할을 하는 1990년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다. 게다가 전 세계 무역 갈등, 녹색 에너지로 전환, 4차 산업혁명,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이 모두 독일의 수출 주도형 성장 모델에 위협이 되고 있다. 사실 독일 경제는 올해 제조업 수출과 투자가 줄면서 불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독일 산업은 이미 수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아우디, 폴크스바겐 등 독일차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전기차와 무인차, (프리랜서 일자리 경제인) 기그 이코노미, 빅데이터, 3D 프린터 등 성장은 장인 정신과 정밀 공학 분야 경쟁력을 지닌 독일 경제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다.

브렉시트로 프랑스 영향력 커져

독일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최근 유럽에서는 프랑스처럼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EU 국가들이 '파워 프리미엄'을 얻고 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잇따라 대외 문제에 개입하고 있고, 유럽의 집단 안보와 관련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효율적인 재래식 병력과 핵무기를 보유해 전략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종합해 보면 유럽에선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는 이제 유럽 통합을 받치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EU의 지정학적, 경제적 르네상스가 프랑스에 달려 있다. 현재 프랑스는 국내 이슈와 유로존 통합, 기후 정책, 미국 거대 기술기업들 등장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있다. 게다가 프랑스는 강한 재정 개혁을 요구하는 독일, 네덜란드 등 채권국과 재정 이전을 원하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채무국 사이에 있다. 프랑스가 은행, 자본시장, 유로존 개혁의 중심에 있다는 뜻이다. 또 프랑스는 오랫동안 정부 중심 국가주의적인 정책을 쓰고 있다. 다른 나라로부터 막대한 무역 흑자를 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프랑스가 무역 전쟁과 투자 장벽이 판치는 현 세계에서 독일보다 EU 이익을 더 잘 지킬 수 있다. 오늘날 유럽의 새로운 질서는 러시아가 부상하고 독일이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미국은 퇴장하는 모습이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향해 가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가 떠오르고 있다. 세계가 유동적인 가운데 프랑스의 발전은 유로존의 안정과 결집에 좋은 뉴스다.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본 기사는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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