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Cover Story
달콤한 포퓰리즘의 유혹, 서민·청년층 분노를 먹이로, 세계화에 반대하며 국수주의 벽 쌓아… 세계 경제, 3차대전의 길로
최종석 기자 |
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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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2008 금융위기가 낳은 이단 정치인들
이런 상황에서 '긴축정책 파기'를 주장하며 인기를 끈 인물이 급진 좌파 연합(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대표였다. 치프라스는 "구제금융 지원을 철회해도 좋다" "지원을 끊으면 빚도 못 갚는다"는 등의 강경 발언을 쏟아냈고 시리자는 2012년 총선에서 제2당으로 급부상했다. 당시 독일의 유력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이런 치프라스를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고 불렀다. 그의 주장대로 긴축정책을 끝내면 그리스 경제를 지탱해온 구제금융이 끊기고 결국 디폴트(국가 부도) 사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발(發) 금융 위기가 터지면 그리스에 막대한 돈을 지원한 유럽 채권국들에도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선거 의식해 포퓰리즘 정책 남발
하지만 긴축정책에 지친 그리스 국민은 위험한 줄 알면서도 치프라스의 달콤한 약속에 넘어갔다. 디폴트 위기가 고조되던 2015년 총선에서 치프라스는 총리가 됐다. 당시 41세로 그리스 역대 최연소였다. 그는 유럽중앙은행 등 채권단이 제안한 긴축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치프라스는 "반대표가 많이 나와야 협상력이 높아진다"고 선동했고, 그리스 국민은 61%의 반대표를 던져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치프라스는 채권단의 압력에 굴복해 백기를 들었다. 결과적으로 당초 채권단이 제시한 긴축안보다 더 가혹한 내용의 3차 구제금융 협약을 받아들게 됐다. 치프라스는 "긴축안에 합의하지 않았으면 EU에 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정당보다 국가를 우위에 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반대 집회가 열렸고 당내 반발도 컸다. 그러자 그는 취임 1년도 안 돼 총리직을 사임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는 승부수를 던졌고 혼란 끝에 다시 총리 자리로 돌아왔다.
작년 8월 그리스는 8년 만에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마쳤다. 이는 채권단으로부터 당장 현금을 지원받아야 하는 상황은 면했다는 뜻이다. 2010년 이후 EU 등에서 받은 구제금융 2750억유로 등 빚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치프라스는 한 달도 안 돼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 임금 인상 등 각종 포퓰리즘 정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년 뒤 총선을 의식한 것이었다. 그러나 떠난 민심은 돌아오지 않았다. 치프라스는 지난달 총선에서 패해 실각했다.
'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 공약
르펜은 '라 프랑스 다보르(프랑스 우선주의)'를 주창해 '프랑스의 트럼프'라고 불린다. 그는 프랑스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트럼프처럼 자동차 공장 등 시설을 다시 프랑스로 불러들일 것"이라며 "공장의 해외 이전을 막는 트럼프 정책은 보호주의에 기반을 둔 현명하고도 애국적인 정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르펜의 핵심 공약은 EU 탈퇴(프렉시트), 반(反)이민, 반세계화, 보호무역주의다. EU를 실패로 규정하면서 탈퇴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공약했다.
르펜은 트럼프처럼 세계화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서민 근로자와 청년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세계화는 자유무역을 촉진했지만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글로벌 금융 위기 같은 사태를 낳았다. 청년 실업률은 크게 치솟았다. 르펜은 2017년 대선 당시 "이번 대선은 애국심과 세계화의 대결"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여기에 잇따른 대형 테러 사건과 이민자 문제가 부각되면서 지지세가 더 강해졌다.
하지만 르펜이 세계화와 이민자를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아가는 적으로 규정하며 서민 근로자와 청년층의 분노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이어 프렉시트까지 현실화되면 유로존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르펜은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을 세우고 2002년 대선에도 출마했던 장마리 르펜의 세 딸 중 막내다. 장마리 르펜은 인종차별 발언으로 여러 차례 유죄 판결을 받은 극우 정치인이다. 르펜은 국민전선을 보다 대중적인 극우 정당으로 바꾸려고 애썼다. 2015년에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아버지 장마리를 당에서 내쫓았다. 작년에는 당명을 공격적인 느낌이 강한 국민전선에서 국민연합으로 바꿨다.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 때는 비례대표 1번 후보로 24세 대학생을 내세워 고리타분한 극우 이미지를 깨려고 했다. 그 결과 르펜의 국민연합은 마크롱이 이끄는 전진하는 공화국을 따돌리며 1위에 올랐다.
좌파 분위기 남미에서 강력한 우파
문제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1985년 무너진 브라질 군부 독재 시절을 미화하는 파시스트적 성향을 끊임없이 보여줬다는 점이다. 그는 "브라질은 망설이지 말고 군부 독재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을 고문하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은 것은 과거 군사 독재 정권이 저지른 실수" "여성과 흑인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같은 과격 발언을 거르지 않고 해왔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1988년 지방의회 선거를 통해 시의원으로 입성하며 정치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브라질 육군에서 대위로 근무한 군 출신 정치인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남미 공동 시장(메르코수르·MERCOSUR)과 남미 국가 연합(우나수르·UNASUR) 같은 다자주의 경제 체제를 통해 관계를 다져왔는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것도 남다른 점으로 꼽힌다. 그는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볼리바르주의에 물든 남미를 바라지 않는다"며 "좌파는 남미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볼리바르주의는 19세기 베네수엘라 혁명가인 시몬 볼리바르가 주창한 범(汎)아메리카주의를 계승한 반제국주의·사회주의적 애국주의 성향의 정치 이념을 말한다. 이 때문에 앞으로 브라질은 유럽연합이나 한국을 포함한 주요 경제 대국과 FTA 방식의 양자주의 방식으로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콜롬비아·아르헨티나 같은 친미·우파 성향 남미 국가와 같은 노선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고 BBC는 분석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일자리가 줄면서 4%대였던 실업률은 9%대로 뛰었다. 공장은 문을 닫고 도시는 슬럼화됐다. 양극화도 심해져 미국을 지탱해온 중산층의 비중이 1971년 61%에서 2015년 50%로 줄었다. 2011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는 당시 금융 회사의 행태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양극화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트럼프는 일자리가 줄어든 주범으로 이민자와 자유무역을 지목했다. 그리고 외국인이나 해외로 일자리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이민을 제한하고 보호무역을 강화하겠다고 공약했다.
국내 유화책… 국외 강경책
당선 이후 트럼프는 미국의 안과 밖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밖으로는 미국 우선주의를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역 전쟁도 불사한다. 그동안 세계 민주주의 리더로 자임해온 미국이 180도 태도를 바꾼 것이다. 트럼프는 올해 중국을 시작으로 미국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 나라들을 압박하고 있다. 관세라는 무기를 앞세운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미국의 무역 적자는 2015년 7526억달러로 역대 최고였던 2006년(8373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그중 절반이 중국과 무역에서 발생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경제 성장, 일자리 창출은 어렵다고 본 것이다. 세계경제에서 트럼프는 중대한 리스크 요인이다. 그의 트윗에 따라 세계 주가와 환율, 유가까지 출렁인다.
반면, 미국 내에선 법인세를 인하하고 규제를 풀어 자국 기업의 투자를 늘리는 자유주의자의 옷을 입고 있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바깥 모습과 달리 취임 당시 발표한 목표를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는 평이 많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앞으로 아메리카 퍼스트가 미국을 이끌 것"이라며 "미국으로 일자리를 가져오고 미국에 인프라 투자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경제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6년 1.6%였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9%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4.9%에서 3.9%로 떨어졌다.
놈 촘스키 MIT대 교수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상냥한 파시즘'이 고개를 들 것"이라고 했다. 과거처럼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지만 이민자를 내쫓고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나라들이 증가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 이후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제2, 제3의 트럼프가 등장하고 있다.
사실 존슨의 총리 자질에 대해선 비판적인 견해가 많다. 브렉시트와 관련해선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 7월 보수당 대표를 뽑는 유세장에서 훈제 청어를 들어 보이며 "EU 규제 때문에 어민들이 막대한 아이스팩 포장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거짓이었다. 가공 생선은 EU 규제 대상이 아니었고 실제 규제를 한 건 영국 정부였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는 유세 버스에 '영국은 매주 EU에 3억5000만파운드의 분담금을 보낸다'는 문구를 붙였는데 실제 분담금은 그 절반 수준인 1억9000만파운드였다.
'유럽연합 탈퇴' 선동하며 집권
그런데도 존슨의 인기가 높은 것은 보수당 정치인이지만 권위적이거나 고리타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 런던시장 시절엔 와이어에 매달려 템스강을 건너다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등 스스로 망가지는 유머를 갖췄다. 헝클어진 금발과 구겨진 양복이 트레이드마크다.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에 있어선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파다. 총리가 되자 제일 먼저 한 것이 장관 23명 중 17명을 브렉시트 강경파로 물갈이한 것이다. 그리고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한 전시(戰時) 내각까지 꾸렸다. 오는 10월까지 EU와 재협상이 실패할 경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까지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통정리 없이 노딜 브렉시트가 벌어지면 유럽 경제에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그만큼 미국과 관계가 중요한데 대체적으로 '미국 트럼프'와 '영국 트럼프'가 손발이 잘 맞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들어가면 충돌이 잦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보호무역주의와 반이민 정책을 강조하는 트럼프와 달리 존슨은 EU를 벗어나 자유무역을 꿈꾼다. 뉴욕타임스도 "트럼프는 존슨을 자신의 '도플갱어(분신)'로 여기고 있지만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를 나온 존슨은 트럼프와 달리 전통과 엘리트를 중시하기 때문에 가는 길이 다르다"고 했다.
경제 위기 잘 넘긴 뒤 독재자로
이후 에르도안은 180도 달라졌다. EU 가입에 적극적이었던 그는 3연임 후 이슬람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국민을 옥죄기 시작했다. 주류 판매를 제한하고 언론 통제를 강화했다. 공공장소에서 애정 표현도 금지했다. 이에 반발해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강제 진압하기도 했다. 2014년 더 이상 연임이 불가능해지자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개헌으로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중심제로 바꿔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만들었다.
대통령이 된 이후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 반EU, 반미 노선을 달렸다. 터키 경제는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2013년 1만2519달러까지 올라갔던 1인당 GDP는 이후 계속 줄어 작년에는 9311달러가 됐다. 2013년 8.5%였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6%로 떨어졌다. 유럽·미국과 갈등이 커지면서 터키 경제를 받쳐온 외국 투자금이 빠져나간 것이 주요 요인이었다.
2016년 군부가 반독재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이 쿠데타를 6시간 만에 진압한 뒤 반대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계기로 삼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12년 이후 세계적으로 '스트롱맨(강성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에르도안을 그중 한 명으로 꼽았다. 그런 스트롱맨 전성시대의 배경에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경제 침체가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불안한 상황에서 국민은 에르도안 같은 권위적인 지도자를 기대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최근 지방선거에서 야당에 이스탄불과 앙카라를 모두 내줬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며 터키발 금융 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6개월 사이 터키 물가는 20% 올랐다.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5년 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고 13%에 달하는 실업률은 최근 10년 사이 최고치다. 그에게 막강한 권력을 준 것도, 그 권력을 흔드는 것도 바로 경제 위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