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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닮은 '1929 대공황'과 '2008 금융위기'… 역사는 되풀이된다

배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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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8.0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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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대공황과 2008 금융위기

대공황과 금융위기 비교


2011년 미국을 휩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이후 ‘부(富)의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병폐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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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미국을 휩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이후 ‘부(富)의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병폐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다. /블룸버그
"매 끼니 닭고기를 먹고, 누구나 자동차를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

1929년 3월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허버트 클라크 후버는 이렇게 공약했다. 그만큼 미국 경제는 장밋빛이었고, 뉴욕 증시와 부동산 시장은 연일 호황기를 누렸다. 그러나 고작 반년 만에 약속은 철저히 깨졌다. 10월 24일 목요일 뉴욕 증시는 대폭락했다.

80여 년 뒤 미국 경제는 또다시 확장세에 들어섰다. 금융완화 정책으로 주택 평균 가격은 1997년부터 10년 동안 약 3배로 상승했다. 은행 대출을 받으면 수입도 직장도 재산도 없는 사람들도 집을 몇 채씩 살 수 있었다. 그러나 2007년부터 집값은 돌연 정체됐고 이후 하락하기 시작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차입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미국에서만 600만명이 집을 잃었다.

부동산·주식 시장의 거품 붕괴로 폭발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시작된 금융위기는 1929년 대공황과 닮은 면이 많다. 미 자본주의 경제의 상징인 월스트리트의 붕괴, 부동산 가격 하락, 시민들의 빚 부담 증가, 소비 경제의 위축, 금융회사 대출에 기반한 주식 거래 증가 등이 대표적이다.

먼저 자산 버블(거품) 현상이 공통점으로 꼽힌다. 1차 세계대전 후인 1920년대에 미국은 호경기 덕택에 투기 자본의 대출이 성행했다. 1923~1929년에 부동산 관련 대출은 49%나 증가했다. 투기자금은 부동산 시장을 넘어 주식 시장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주가가 급등했다. 2000년대에도 주택 가격은 많이 올랐다. IT 버블 붕괴(2001년)의 후유증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장기간에 걸친 금융 완화 정책을 편 까닭이다. 금융회사들이 주택 대출을 확대하면서 주택 가격이 1997년부터 2006년 중반까지 190% 상승했다. 주택 시장의 열기가 주식 시장으로 이어지면서 주가도 2003년 2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88% 상승했다.

금융 당국의 감독과 대응이 부실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대공황 시절에는 금융감독기구가 설립 초창기여서 사전 위기 예방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더구나 사후 대응도 미숙했다.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인상했다가 주가 폭락과 경기 대침체를 불러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에도 금융 당국은 투자은행들의 투자 자금 차입 제한을 철폐함으로써 주택·금융 시장 버블의 원인을 제공했다. 또 부동산 거품을 잡기 위해 뒤늦게 금리를 급격히 올렸는데, 이 조치가 주택담보 대출자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급증시켜 주택 가격 폭락을 유발하면서 연착륙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대규모로 도산하고 이 여파가 세계로 확장되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1929년 대공황 당시 9000개가 넘는 미국 은행들이 파산했다. 또 미국 은행의 도산은 1년 6개월 뒤인 1931년 5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최대 은행이 파산하는 2차 사태로 이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베어스턴스, 리먼브러더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이 미국발 금융위기가 2009년 2월 동유럽 구제금융 사태와 11월 두바이 채무 불이행 선언으로 이어졌다.

몇 년 동안 위기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습도 닮았다. 정부의 적극적인 구제책으로 대공황 사태가 마무리되는 듯 보이던 1933년 또 금융위기가 초래됐다. 당시 미국 정부는 경기 부양 조치를 취했지만, 달러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자금 지원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돼 금융 시장이 또 한 차례 충격에 빠졌다. 2009년 세계 각국의 공조하에 적극적인 양적완화정책으로 회복 기미를 보이던 세계경제가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악재'의 재정 위기로 재차 신용 경색 상태에 빠졌던 것과 흡사하다. 경제위기가 정치위기로 번지면서 대공항 여파로 히틀러 독일 총통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정치 이단아들이 등장한 점도 유사하다.

위기 규모는 대공황 때가 더 커

대공황과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처럼 전개 흐름과 핵심 원인에서는 '반복된 역사'이지만, 미시적인 요인이나 위기의 규모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대공황의 교훈을 경험한 인류가 금융 시스템의 약점을 보완했기 때문이다. 먼저 대공황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금본위제(화폐 가치를 금의 가치로 나타내는 것)에 복귀한 많은 나라가 금본위제에 발목을 잡혀 통화긴축정책을 쓰게 되고 여기에 미숙한 은행 시스템이 제대로 위기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반면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본위제가 폐지된 상황에서 고위험 고수익 금융파생상품이 급속히 확산됐지만 금융 감독 당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폭발했다. 애덤 투즈 교수는 "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자유무역 등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이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기 침체의 규모 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미국의 실업률을 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 10%까지 상승했던 반면, 대공황 당시인 1933년에는 25%까지 상승했었다. 또 대공황 당시에는 실업자가 끼니를 챙길 수 없었지만 지금은 직장을 잃는다 해도 실업 연금으로 버틸 수 있다. 대공황 당시에는 부동산 주택담보 대출을 받은 도시 가구의 절반 이상이 대출금을 갚지 못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는 미 전체 가구의 14% 정도에 해당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미 시카고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공황 이후 가장 치명적인 경제 위기로 여겨졌지만, 생산·고용 등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는 훨씬 작은 위기였다"고 평가했다. 인류가 역사에서 배운 교훈 덕택에 위기의 크기를 줄인 것이다.

다시 힘받는 '2020 위기설'

애덤 투즈 교수는 세계 3차 대전은 경제 전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미·중 무역 전쟁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미 재무부가 25년 만에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무역 전쟁은 통화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때 중국이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을 높이면 중국 수출품의 위안화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져 관세 부과 효과가 없어진다. 미·중 양국의 실물 분야 힘겨루기가 파급효과가 더 큰 통화 분야로 전장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어 세계경제 위기가 또 한 번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트 호건 내셔널시큐리티증권(NSC)의 수석 시장 전략가는 “역사적으로 세계적 경제 불황은 통화 정책 실패의 결과물이었지만, 이번에 사상 최초로 무역 정책 실패로 인한 불황을 경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계경제 위기설은 이미 지난해부터 솔솔 흘러나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교수는 10년 이상 경기 호황이 지속된 전례가 없었던 점을 들어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투자은행 JP모건은 2020년까지 미국의 주가가 20% 추락하고 신흥국 주가는 48%나 추락해 반 토막이 날 것이며 신흥국 통화 가치가 14.4% 하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역시 2020년 경제 위기를 예언했다. 그는 2020년에 미국 경제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사정없이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러한 비관론은 지난 수년간 세계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해 온 미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징후가 감지되면서 시작됐다. 최근 미국 국채 장·단기 금리는 12년 만에 역전됐다. 이는 시장에서 정책 금리와 그 영향을 받는 단기 자금 수요는 많은 반면, 장기 투자를 위한 장기 자금 수요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의미로, 통상 경기 침체의 전조로 여겨진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1955년 이래 지금까지 60년간 있었던 9번의 경기 침체에 앞서 모두 나타났다. 역전 현상이 발생한 뒤 실제 경기 침체가 일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최단 수개월에서 최장 2년 정도였다.

여기에 미·중 무역 전쟁 악화로 양국 경제가 동시에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2020년 경제 위기설’의 설득력이 강해지고 있다. 실제로 불황이 닥쳤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위기에 대처할 각국 중앙은행의 ‘총알’도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유럽과 일본 등은 이미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고, 미국은 지난 7월 10년 만에 금리를 내렸다. 지난해부터 경제 비관론을 강력하게 설파해온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내년 우리 세대 최악의 경제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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