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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장보고' 가족史 … 실제인물 다룬 베르디의 걸작

박종호 풍월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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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8.09 10:36 수정 : 2019.08.1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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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오페라] (15)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2014년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펼쳐진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 유명한 테너 가수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연을 맡았다. / 풍월당 2014년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펼쳐진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 유명한 테너 가수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연을 맡았다. / 풍월당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시몬 보카네그라'는 14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였던 제노바의 실제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일종의 정치 오페라다. 정치 위에 가족사가 얽히면서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펼쳐진다.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있었던 초연은 대실패였다. 이야기가 복잡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음악도 어둡고 무거운 데다 화려한 맛이 없다는 점이 두 번째 이유로 꼽혔다. 그러나 그건 사실 베르디의 의도였다. 이미 노련해진 작곡가는 장식적인 조미료를 쓰지 않은 순수한 재료의 맛을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향신료로 길든 관객의 혀는 요리를 따라오지 못했다. 복잡하기로 유명한 내용을 여기서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

귀족 여인을 사랑한 선원, 총독이 되다

시몬 보카네그라는 제노바의 선원으로서 장보고 같은 해상왕이었다. 총독 선거를 앞두고 명망 있는 인물이 필요했던 평민파 정치가들은 그를 후보로 낙점한다. 시몬은 마리아라는 여성을 사랑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귀족파 지도자 피에스코였다. 피에스코는 시몬이 평민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사랑을 반대한다. 이에 마리아는 집을 나와서 시몬과 함께 산다. 그러자 아버지는 딸을 끌고 가 집에 감금했다. 이때 평민파의 정치꾼 파올로는 시몬에게 "총독이 되어 권좌에 앉는다면 피에스코가 결혼을 반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을 주며 시몬에게 입후보를 설득한다. 결국 시몬은 총독에 당선되지만 그 순간 감금되어 있던 마리아가 죽고 만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순간에 영광의 권좌에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25년을 훌쩍 건너뛴다. 총독 보카네그라가 재위한 지 24년째 그는 귀족파를 철저히 척결하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그때 총독의 최측근이자 그를 총독으로 만들었던 파올로가 명문 귀족인 그리말디가(家) 상속녀 아멜리아와 결혼을 열망한다. 하지만 그녀가 거부한다. 파올로는 총독이 중재해주기를 종용한다. 총독은 내키지 않지만 전에 도움을 받았던 처지라 아멜리아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그녀는 사실 그리말디가 자손이 아니다. 그리말디가 남자들이 총독 탄압을 피해 외국으로 망명하자 한 원로 귀족이 이 가문의 재산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고아 소녀를 데려다가 상속녀로 만들어 가문을 지키게 한 것이다.

총독이 아멜리아를 찾아온다. 총독과 아멜리아의 만남은 둘 다 내키지 않았던 터. 하지만 정작 만나자 따뜻한 기운이 두 사람 사이에 흐른다. 아멜리아는 처음 만난 총독에게 신상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저는 그리말디 가문이 아닙니다. 고아입니다. 어려서 피사 근처의 오두막에서 늙은 유모와 살았습니다." 이 말을 듣자 총독의 가슴은 뛰기 시작한다. 그는 기도한다. "오, 신이시여. 지금 제가 상상하고 있는 희망이 헛된 것으로 끝날 것이라면 차라리 지금 저를 죽여주십시오." 총독은 그녀에게 묻는다. "혹시 그 집에 드나들던 남자가 없었냐?" "한 선원이 가끔 들렀습니다." "유모의 이름이 조반나가 아니더냐?" "맞아요." "그녀가 준 네 어머니의 초상이 이것이 아니냐?" "제 것과 똑같아요!" "마리아!" "제 어렸을 때 이름이에요!" 시몬이 사랑했던 마리아는 아이를 낳았고, 시몬은 아이에게 엄마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두고 항해에 나가기 위해 한 노파를 유모로 두었다. 그러나 어느 날 노파가 죽고, 그 옆에서 혼자 3일을 울던 아이는 사라져 버렸다. 그런 아이가 성장하여 나타난 것이다. 시몬은 노래한다. "딸아, 딸이라고 불러보는 것만으로 내 심장은 뛰는구나…." 눈물 없이 보기 어려운 명장면이다.

신분·지역 대립 넘어 '반도 통일' 역설

베르디는 젊어서 두 아이와 아내를 모두 병으로 잃었다. 재혼했지만 다시 자녀를 갖지 못했다. 베르디는 죽기 전에 평생 모은 상당한 재산으로 가난한 음악가들 노후를 위한 양로원을 지었다. 베르디는 아이를 갖고 싶었을까? 물어볼 필요 없이 그의 오페라들을 보면 마음을 알 수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들 속에는 아버지와 딸의 장면이 수없이 나오고, 이런 부녀의 2중창들은 모든 오페라에서 정점(頂點)을 차지한다. 그런 부녀의 2중창들 가운데서도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시몬 보카네그라' 속 상봉 장면이다.

시몬은 어렵사리 찾은 딸을 노리는 파올로를 거부하고, 결국 파올로의 원한을 사서 그에게 독살당한다. 마지막에 숨을 거두기 전에 시몬은 이탈리아의 화합을 외친다. 시몬은 당시 사람들에게 '이탈리아'라는 단어를 거의 처음 강조한 정치가 중 하나였다. 당시 국민들은 제노바나 베네치아 공화국의 이득만 생각했다. 귀족이나 평민도 자신의 계층이나 단체 이익만을 중시했다. 그런 시대에 나왔던 시몬의 외침이 다만 14세기를 향한 외침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오페라가 발표됐던 19세기 이탈리아 국민을 향해 외친 것이기도 하다. 베르디가 오페라에서 피력한 사상은 이탈리아 통일의 바탕이 됐다. 이후 베르디는 이탈리아 독립과 통일의 유공자로서 이탈리아 공화국 초대 상원 의원에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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