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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태백편에서 '讓' 가져와 강제로 이름붙인 양녕대군… 더 이상 왕위 못 넘보게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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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8.0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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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암호풀이]


1418년(태종 18년) 6월 5일 세자 이제(李禔)를 폐해 대군으로 강봉한 뒤 군호를 양녕(讓寧)이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양녕대군(讓寧大君)이라고 부르는 칭호는 이때 생겨난 것이다. 그가 세자로 있는 동안은 이런 칭호는 없었던 것이다. 동생 효령대군과 충녕대군의 군호에 녕(寧) 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양(讓) 한 글자만 추가한 것이다.

정확히 누가 제안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글자는 다름 아닌 '논어' 태백(泰伯)편에서 가져온 것이다. "태백(泰伯)은 지덕한 인물이라고 부를 만하다. 세 번 천하를 사양하니 백성들이 그 덕이 너무나도 커서 칭송할 수가 없었도다!" 물론 세자가 자발적으로 자리를 양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태종을 비롯한 조정 중신들은 '논어'에 있는 이 일화를 빌려 양녕대군이 더 이상 왕위를 넘볼 수 없도록 봉인해 버린 것이다.

사실 태종은 자신의 일방적 결정으로 얼마든지 세자를 바꿀 수 있었음에도 실록을 보면 영의정 유정현, 좌의정 박은 등과 토의를 거쳐 조정의 공론(公論)이라는 형식을 빌려 폐세자를 단행했다. 또한 충녕대군을 고를 때에도 그냥 임금의 명이 아니라 택현론(擇賢論)의 명분을 내세웠다. 장자가 자동으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이를 골라 그에게 왕위를 넘겨준다는 것이었다.

이상은 필자의 개인적인 추측이 아니다. 서울 상도동에는 지덕사(至德祠)라는 사당이 있는데 양녕대군을 기리는 사당이다. '영조실록' 1736년 영조 12년 4월 18일 자에는 현감 이중태(李重泰)라는 사람이 이런 상소를 올렸다.

"주(周)나라에는 태백(泰伯)과 우중(虞仲·중옹)이 있고, 우리 조정에는 양녕(讓寧)과 효령(孝寧)이 있으니, 이것이 공자가 지극한 덕(德)이라고 칭송을 하고 숙종께서 지덕사(至德祠)를 건립하게 한 까닭입니다. 그런데 공자가 태백을 칭송함에 청권(淸權)이라는 찬양이 아울러 우중에게도 미쳤었는데 숙종께서 양녕의 사우를 건립함에 그 표현(表顯)하는 조치가 유독 효령에게만 빠뜨려져서 쌍(雙)으로 이룬 덕(德)을 지금까지 함께 찬미하여야 할 조치가 결여되고 있습니다. 청컨대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효령을 위한 사당을 건립하고 편액(扁額)을 내려, 주(周)나라에서만 아름다움을 독점하게 하지 마소서."

우중과 청권도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이렇게 해서 서울 방배동에는 효령을 기리는 청권사라는 사당이 생겨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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