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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좋은 가구 쓸 권리… 디자인 민주주의 실현이 목표"

스톡홀름=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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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8.0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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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브릿 몬티


1974년 당시 유럽에서 이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조그만 가구 업체였던 이케아는 독일 뮌헨에 새 가구 매장을 열면서 스스로를 '스웨덴에서 온 상상을 초월하는 가구점'이라고 소개했다. 45년이 지난 오늘날 이케아는 매출액 기준 세계 최대 가구 업체로 자랐지만, 매 분기 발행하는 제품 소개 카탈로그에 실리는 사진은 전형적 북유럽 가정 모습이다. 이케아에서 파는 모든 제품명은 스웨덴 지명이나 식물과 동물 이름, 남자나 여자 아이 이름을 따서 짓는다.

전 세계 35국 어디를 가든 이케아 매장 구석구석에는 이런 '스웨덴다움'을 찾아볼 수 있다. 파란색 외관에 큼지막한 노란 알파벳으로 쓴 'IKEA'라는 글씨는 자연스럽게 스웨덴 국기를 연상시킨다. 매장 입구에 설치한 어린이 놀이 공간 이름은 스웨덴 남부 지역명 '스몰란드'에서 땄다.

이케아를 이케아답게 만드는 이런 세밀한 설정, 가구와 실내용품 디자인 전체를 하나의 철학으로 아우르는 '정체성' 작업은 이케아의 뇌에 해당하는 크리에이티브팀이 맡는다. WEEKLY BIZ는 이케아가 추구하는 '스웨덴다움'이 무엇인지 묻기 위해 지난달 스웨덴 스톡홀름 '이케아 크리에이티브랩'을 찾아 브릿 몬티(61) 이케아 크리에이티브팀 디렉터를 만났다. 스웨덴에서 나고 자란 몬티 디렉터는 1988년 이케아 입사 이후 30년이 넘게 모든 제품의 디자인과 브랜드 이미지 관련 작업을 총괄해 온 '이케아의 어머니' 같은 존재다. 하늘하늘거리는 하얀색 꽃무늬 원피스와 샛노란 카디건을 입고 나타난 몬티 디렉터는 "한국에서도 이케아의 브랜드 철학에 공감하는 소비자가 많다고 들었다"며 기자를 반겼다.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 중시

―지난 30년간 이케아는 세계 가구 업계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경영자들과 언론은 기업 규모가 커진 것에 집중한다. 그러나 크리에이티브팀 입장에서 매출 증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저렴한 값에 집을 원하는 스타일로 꾸밀 수 있게 도와줬다는 점이 훨씬 중요하다. 30년 전만 해도 스웨덴 등 북유럽에 거실과 침실, 주방과 욕실을 한꺼번에 아우를 수 있는 홈퍼니싱 브랜드는 없었다. 거실 의자를 사려면 의자 전문 디자이너를 찾아야 했고, 주방용품은 잡화점에 가야 했다. 서로 다른 브랜드 제품을 조합해야 하다 보니 미관상 불협화음이 일기도 했다. 이케아는 집 전체를 꾸밀 수 있도록 모든 제품을 구비하고, 라인별로 정리해 통일성을 줬다. 이케아 제품은 하나만 사서 이전에 있던 가구 사이에 배치해도 딱히 튀는 제품이 없다. 혁신적이고 화려한 디자인이라고 평가하긴 어렵지만, 최대한 단순하고 실용적으로 디자인해 여러 브랜드 가구와 섞어서 공간을 꾸며도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케아 디자이너들은 다른 것을 보기보다 같은 점에 집중한다. 사람 사는 모습은 대체로 다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케아가 평범한 디자인을 대량으로 찍어낸 것은 아니다. 이케아는 시장 변화 속도와 상관없이 정해진 내부 테스트를 착실히 통과한 제품만 내놓는다. 직사각형으로 자칫 간단해 보이는 디자인의 책장 하나도 실제 시장에 나오기까지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같은 점에만 집중해선 지금 같은 위치를 확보하기 어려웠을 텐데.

"물론 그렇다. 디자이너들이 교집합에 주목하는 동안 크리에이티브팀은 지역별 특성을 미세하게 조정한다. 부엌에 냄비나 그릇을 걸어 놓는 고리를 하나 개발한다 치자. 크리에이티브팀은 세계 각국 매장 이케아 회원 리스트에서 대표 소비자를 무작위로 뽑는다. 현재 전 세계 매장이 350여 곳 되는데, 매장별로 불특정 다수가 뽑히면 소비자 담당 매니저가 직접 그 집을 방문해서 최장 24시간까지 함께 살아본다. 매니저는 소비자 가정에 머무르면서 냄비 고리가 부엌 어디쯤, 어느 높이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아야 가장 효율적인지 연구해서 보고서를 올린다. 실제 가정에서 이케아가 추구하는 기능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러면서 돈이 무한정으로 주어진다면 집을 어떻게 꾸미고 싶은지,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어디인지 물어보면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점을 취합한다. 이런 보고가 한국 매장에서도, 일본 매장에서도 올라온다. 북유럽권에서는 집에서 오래 머물기 때문에 늘 봐도 지겹지 않을 따뜻한 나무 소재 소품을 활용하고, 날씨가 추우니까 천연 모피나 양털을 활용해 집 안 전체에 따뜻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아시아권은 계절 변화가 뚜렷하고 햇빛이 충분하기 때문에 모피가 어울리지 않는다. 크리에이티브팀은 수백 가정에서 올라온 이런 세세한 차이를 전부 분석한 후에야 제품 생산에 들어간다. 우리는 이걸 '디자인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기능도 좋고 값도 싸야 좋은 디자인

―디자인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신선하다.

"이케아가 처음 쓴 표현은 아니다. 스웨덴에서는 부유하든 가난하든 누구나 좋은 디자인을 누릴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좋은 디자인이라는 표현이 추상적일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어린이·노약자·임신부도 불편함 없이 쓸 수 있을 만큼 적절한 기능성,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까지 갖춰야 한다. 일각에서 이케아를 단지 값싼 가구의 대명사로 치부하곤 하는데, 3000유로짜리 책상을 디자인하는 것은 어떤 디자이너라도 할 수 있다. 정말 훌륭한 책상이라면 기능적이고 수려하면서 단 200유로에 팔 수 있어야 한다. 이케아가 제품을 조립하지 않고 박스에 포장한 채로 팔거나, 소비자가 직접 창고형 매장에서 제품을 알아서 찾아가게끔 만든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가격을 낮추기 위해 분투 중이다. 새 소재를 개발하기도 하고, 가구 공장이 아닌 통조림 제조사에 금속 빨래 바구니 제작을 맡기기도 한다. 그 덕에 물가가 오르는데도 이전보다 값이 싸진 제품도 생겼다."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젊은 시절 밀라노 가구박람회를 방문했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시장을 수놓은 화려한 디자인의 가구들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캄프라드는 납득할 수 없었다. 박람회가 열리는 밀라노의 가정집에서조차 전시된 가구를 살 수 없다는 사실에 캄프라드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이케아가 '대중을 위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우기에는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가구 업체들과 경쟁이 걱정되지 않나.

"이케아는 이케아의 길을 간다. 저가를 표방한 다른 브랜드들과 가격으로 경쟁할 생각은 없다. 창립 이후 80여 년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케아가 생각하는 혁신은 더 싼 소재를 사용하거나, 인건비가 낮은 곳으로 공장을 옮겨 가격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쪼개진 대나무나 바다에 떠다니는 폐플라스틱을 모아 가구로 재활용하는 것이 이케아의 혁신이다. 이미 우유 갑을 이용한 부엌 장이 이케아 매장에 나와 있다. 2030년에는 이케아 전체 제품에 재생 가능한 재료와 재활용 소재를 100% 사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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