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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장이 총무·구매까지… 투자는 아낌없이 신에츠·호야, 한국 겨냥 다음 저격수로 거론

이위재 기자 | 하미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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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8.09 10:39 수정 : 2019.10.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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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의 핵심 납품업체 日 신에츠 & 호야


일본은 기초 원천 기술이나 첨단 소재 부문에서 글로벌 초강자다. SEMI(국제반도체제조장치재료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소재 시장 전체 규모는 5조8000억엔. 그중 일본 기업 점유율이 50%에 달한다. 여기서 고성능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첨단 소재 분야만 따지면 일본 점유율은 80%에 이른다. 잇따른 일본의 '캐치올(catch-all)' 수출 규제 조치가 한국 산업계에 치명적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첨단 소재는 단가당 이익률이 높고 대체가 쉽지 않다. 가전이나 스마트폰과 달리 소재 분해·분석도 어렵다. 제조 노하우를 단기간에 따라잡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실리콘웨이퍼 생산업체 신에츠(信越化学工業·Shin-Etsu Chemical)와 포토마스크 원재료 블랭크마스크를 만드는 호야(HOYA)는 해당 분야 절대 지존(至尊)으로 평가받는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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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김란희
신에츠: '간결한 경영'으로 불황 돌파

반도체 제조 출발점은 규소(실리콘)를 얇게 잘라 만든 실리콘 웨이퍼(Wafer). 신에츠는 실리콘 웨이퍼 세계점유율 1위다. 지난해 한국 반도체 업체들 일본산 실리콘 웨이퍼 의존율(총 웨이퍼 수입액에서 일본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52.8%. 라쿠텐증권에 따르면 일본 신에츠와 섬코가 세계 웨이퍼 점유율 60%를 차지하고 있다. 웨이퍼를 만드는 실리콘 순도는 9가 9개인 99.999999999%로 표면에 굴곡이 없어야 한다. 신에츠는 감광제(포토레지스트) 주요 생산 업체이기도 하다.

신에츠는 원래 질소비료를 생산·판매하던 작은 화학 업체였다. 이후 주택 창문틀이나 외벽재, 파이프·배수관 등에 쓰이는 PVC(염화비닐수지) 생산에 집중하면서 글로벌 화학 기업으로 성장했고, 1990년 취임한 가나가와 지히로(金川千尋) 사장(현 회장)이 PVC와 실리콘웨이퍼를 세계 1위까지 끌어올렸다.

신에츠는 사업 포트폴리오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게 강점이다. PVC와 실리콘웨이퍼, 실리콘 재료 등 각 사업 부문 실적이 편중 없이 조화를 이룬다. 지난해 매출 1조5940억엔 중 PVC 부문은 5242억엔, 반도체 실리콘 3803억엔, 전자 재료 2260억엔 등 이었다. 최근에는 화장품 원료 등 실리콘 기술을 응용한 고부가가치 제품에도 집중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실리콘은 영업이익이 2017년 929억엔에서 지난해 1319억엔으로 40% 증가, 1065억엔인 PVC 부문을 앞질렀다.

가나가와 회장은 일본 재계에서 소수 정예 전략을 극대화하는 경영자로 유명하다. 다우케미컬 벤 브랜치 전 CEO가 "간결한 기업 경영의 대가"라고 치켜세울 정도다. 불황기에도 끄떡없도록 최소 인원으로 구성하는 조직이 핵심이다.

지난해 매출액 2956억엔을 기록한 PVC 자회사 신테크 재무담당 사원은 단 2명. 공장장이 인사와 구매, 총무 업무를 겸하고 사장 비서가 거래처 대금 회수를 맡는다. 가나가와는 "경쟁 업체에 이기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비용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제품을 만드는 최신 설비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면서도 인력과 조직은 마른 수건 짜듯 최대한 줄이는 데 힘썼다. 매년 600명 규모로 진행하던 신입 사원 채용도 중단하고 연구·제조 부문에서 매년 60명 정도 충원하는 데 그치고 있다. "1년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업계에서 중장기 계획처럼 쓸데없는 일도 없다"면서 이 역시 없앴다.

내부 인사이동도 제한적이다. 여러 직무를 경험하는 것보다 한 가지 분야에 오랜 기간 직무 경력을 쌓아 전문 지식을 깊게 파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호야: 차세대 핵심기술에 선제 투자

포토마스크(유리기판)는 실리콘웨이퍼 위에 회로 패턴을 그릴 때 사용하는 일종의 반도체 '설계도'. 블랭크마스크는 포토마스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재료다. 반도체뿐 아니라 액정 패널과 스마트폰에도 쓰인다. 지난해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한 블랭크마스크 규모는 1억2351만달러로 일본산 의존율은 65.5%에 달했다.

호야는 차세대 노광(露光) 분야인 극자외선(EUV·Extreme UltraViolet) 기술에 발 빠르게 투자, 경쟁 업체들을 따돌렸다. EUV는 기존 기술과 비교하면 더 미세한 반도체 회로를 그릴 수 있는 기술. 호야는 20년 전부터 차세대 반도체 공정이 더 미세해지고 고도화될 것으로 보고 이쪽에 집중했다.

세계 반도체 무역 통계국(WSTS)은 반도체 시장 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반면, 블랭크마스크 분야는 2014년 5% 미만에서 지난해 10%대로 상향 조정하고 있다. 올해부터 TSMC나 인텔,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 제조 업체들이 EUV 공정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호야는 안경 렌즈로 친숙한 광학 업체다. 1941년 도쿄 호야(保谷)에서 광학유리 업체로 시작, 1962년 안경용 렌즈 제조를 시작했고 1990년대 컴퓨터 저장 장치인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 사업으로 몸집을 불렸다. 아버지를 이어 2000년 호야 경영권을 맡게 된 스즈키 히로시 사장은 반도체와 디지털 기기 산업 등 첨단 부품 제조 기업으로 과감하게 변신을 시도했다. 기존 5대 핵심 기술(조성·용해, 성막, 연마, 세정, 성형·가공)을 기반으로 이를 교차 응용해 제품화하는 작업에 주력했다. 호야는 광학 비중이 지난해 기준 66%로 주력이긴 하지만 영업이익은 2015년 3분기 이후 블랭크마스크를 포함한 정보통신 사업 부문이 앞서가기 시작했다. 호야는 반도체용 블랭크마스크, 액정패널용 포토마스크, 비구면광학렌즈 품목에서 세계 점유율 1위이며, HDD용 디스크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90%를 넘는다. 안경 렌즈와 내시경 부문은 세계 점유율 2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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