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sis #Interview in Depth

"머지않아, 서울市 전체를 3D로 복제할 날 옵니다"

황민규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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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7.05 03:00 수정 : 2019.07.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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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3D 설계 기업 '다쏘시스템' 버나드 샬레 회장


미국과 옛 소련의 서슬 퍼런 냉전 시대가 끝나갈 무렵인 1986년 항공·우주 산업 분야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미국을 대표하는 항공사였던 보잉이 당시 '항공기 없이 항공기를 만든다'는 디지털 설계 기반의 실험적인 생산 기법을 도입한 것이다.

비행기는 현존하는 기계 중 가장 복잡한 기계로 알려져 있다. 1%의 오차가 수많은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산업인 만큼 제조업 분야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과 안정성을 요구한다. 항공사들은 새로운 비행기 개발을 위해서는 수십만 장의 도면과 수많은 엔지니어가 투입돼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했다.

새로운 비행기 개발에 애를 먹던 보잉에 배짱 좋은 제안을 던진 건 당시 프랑스의 작은 컴퓨터 지원설계(Computer Aided Design·CAD) 회사였던 다쏘시스템이었다. 보잉 입장에서는 종이 도면을 단 한 장도 사용하지 않고 100% 디지털 작업으로 비행기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다는 다쏘의 3차원 컴퓨터 지원 설계 프로그램(CATIA)을 실험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보잉과 다쏘시스템이 완성한 CATIA는 보잉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비행기인 보잉777을 탄생시켰다. 육중한 실물 비행기를 일일이 조립하고 분해하며 테스트를 반복하는 번거로운 과정 없이 3D 디지털 설계로 시제품을 완성한 보잉은 연간 100여 대의 비행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후 보잉의 사례는 항공업계뿐만 아니라 자동차, 반도체 등 세계 제조업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됐다. 삼성전자, BMW, 벤츠, 현대자동차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제조 분야에 3D 디지털 설계를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3D 설계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업으로 꼽히는 다쏘시스템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노트르담 복원에 3D 기술 활용

다쏘시스템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안긴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후 노트르담 복원에 다쏘시스템의 3D 설계 기술을 제공할 의사를 밝혔다. 이미 파리 시내 전체와 노트르담의 복잡한 구조를 3D 모델로 구현해 데이터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WEEKLY BIZ는 최근 한국을 찾은 버나드 샬레(Charlès·62) 다쏘시스템 회장을 만나 3D 설계 기술의 동향에 대해 물었다.

―다쏘시스템의 강점인 3D 설계란 정확히 무엇인가.

"우리가 만든 3D 설계 플랫폼인 '3D 익스피리언스(경험)'는 말 그대로 플랫폼이고 도구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다. 플랫폼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이유는 클라우드, 5G, AI(인공지능) 등 데이터 중심의 기술을 통해 모든 것을 자동화해 소비자들의 삶을 간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3D 설계를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3D 설계를 통해 비행기뿐만 아니라 자동차 등 산업 영역 모든 곳에서 '예측적인 유지 보수'가 가능해진다.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사용해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언제 어떤 형태의 유지보수가 필요한지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령 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유로스타 같은 열차 안에서 느껴지는 진동 등의 데이터를 추적하고 수집해 열차의 상태를 파악하고 어떤 유지 보수가 필요한지 예측할 수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 사업에도 참여한다는데.

"파리 도시가 지난 수 세기 동안 어떻게 건설됐는지 재현을 한 '파리 3D'라는 프로젝트를 수년 전 진행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완벽하게 3D로 모형화됐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노트르담 대화재 이후 건축가들이 이 복잡한 건축물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건축 순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거와 동일하게 재건할 것인지, 새로 재건할 것인지 뜨거운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굉장히 복잡한 작업이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3D 플랫폼이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구조물의 모델링이 이미 완벽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모델링을 활용하는 차원에서, 건설의 순서를 적립하는 차원에서, 거대한 복원 작업 프로젝트의 조직과 복잡성을 관리하는 차원에서도 이 플랫폼이 활용될 것이다. 3D 플랫폼 기술을 통해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 사업의 속도를 2배에서 최대 4배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도시·국가도 '디지털 쌍둥이' 만들어

다쏘시스템의 3D 기술은 항공기에서 시작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확장을 거듭했다. 2014년부터는 파리나 싱가포르 등 도시나 국가 전체를 3D 모델로 구현하는 '트윈시티(쌍둥이 도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가령 싱가포르 도시에 건물, 다리 등을 신축할 계획이 있다면 미리 구축해둔 3D 모델을 통해 시뮬레이션을 거쳐 교통, 주거환경 등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알 수 있다.

―작년 싱가포르 도시 전체를 가상화하는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이 프로젝트가 향후 스마트 시티의 초석이 될 것으로 보는가.

"그동안 글로벌 IT 기업들이 내세워온 스마트 시티의 개념은 조명 관리 최적화, 교통 개선, 교통 동기화 시스템 등과 같은 매우 기본적인 기능들이었다. 우리가 구상한 도시 가상화 프로젝트는 이보다 훨씬 더 고도화돼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실제 도시, 국가의 '디지털 쌍둥이(트윈)'를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이다.

가령 도시에 새로운 건축물을 세울 때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한다. 도시 개발이 시민들에게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디지털 트윈은 사람들을 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통량, 유동인구, 소비의 흐름 등 많은 부분을 예상할 수 있고 자연재해에 대한 예상까지 가능하다. 현재 싱가포르, 대만, 중국 광저우 등 전 세계 다양한 도시에서 3D 설계 플랫폼을 도입하고 있다. 디지털 트윈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상황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다쏘시스템이 3D 플랫폼 기술을 적용해 재현한 20세기 초의 파리 시내 전경. 당시 도시 건설 과정을 3D 그래픽으로 재현했기 때문에 에펠탑 주변에 현대적인 건축물이 보이지 않는다. / 다쏘시스템 다쏘시스템이 3D 플랫폼 기술을 적용해 재현한 20세기 초의 파리 시내 전경. 당시 도시 건설 과정을 3D 그래픽으로 재현했기 때문에 에펠탑 주변에 현대적인 건축물이 보이지 않는다. / 다쏘시스템
한국, 3D 기술로 부가가치 높여야

―최근 한국에 매년 100억원을 투자해 3D 설계 플랫폼을 전파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개인적으로 한국을 매우 전략적인 시장으로 여긴다. 주요 이유 중 하나는 한국 기업들이 핵심 산업의 주요 선두 기업이기 때문이다. 지난 25년간 매년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데, 선도 기업들을 고객으로 모시는 것은 최상의 설루션을 제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중국 기업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우리의 설루션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에 큰 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한국은 지난 25년간 좋은 성과를 냈지만 3D 플랫폼 기반, 클라우드 기반의 설루션을 도입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작업에 가속도를 붙여야 한다."

―한국 정부와 서울의 디지털 트윈을 개발하는 논의도 진행했다는데.

"작년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세계도시정상회의(World Cities Summit 2018)에 참여해 박원순 서울 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관계자들을 만났다. 현재까지 서울시와 많은 대화를 하고 있다. 서울은 굉장히 발전된 도시다. 우리가 협업한 건축물들도 다수 건설돼 있다. 다만 도시, 정부 같은 경우에는 기업들에 비해 의사결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이들과 교류하고 교훈을 쌓아가면서 대화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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