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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기술 패권 경쟁, 최후의 승자는?

허 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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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7.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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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lumn]


허 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허 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지난달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지난 5월 초 이후 중단된 미·중 무역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그동안 첨예하게 대립해 온 중국 국유 기업의 보조금 문제나 지식재산권 위반 등 핵심 사안에 대한 논의를 추후 협상 과제로 미뤘다. 혹시나 기대했던 협상이 역시나 허무하게 끝났다. 대신에 양국은 작은 양보를 주고받는 스몰 딜을 맺었다. 미국은 3000억달러어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보복 관세 보류와 화웨이 제재 완화를 약속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기로 했다. 일시적 미봉책에 불과한 합의지만 전격적으로 타결된 데는 나름대로 각자의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1월 재선을 노리고 있다. 따라서 대선 일정에 최적화된 휴전 시기를 이번에 선택한 것이다. 이는 향후 정치적 필요에 따라 언제든 무역 전쟁에 재돌입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 주석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중국 경제가 끝없이 추락하는 상황에서 인권 탄압과 독재에 대한 불만이 고개를 들자 일단 확전이라는 급한 불부터 끄는 데 주력했다.

외화내빈인 중국의 기술 혁신

그렇다면 미·중 충돌, 특히 그 핵심인 기술 패권 경쟁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국은 '명예로운 항복을 위한 퇴로'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형식은 미국의 요구를 대폭, 그러나 단계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이 될 것이며, 시기는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일을 넘지 않을 전망이다. 이유를 알아보자.

2017년 중국의 특허 출원 건수는 약 130만건, 세계 1위이자 세계 전체의 40%이다. 같은 해 중국의 R&D 투자는 GDP의 2.13%이다. 이는 OECD 평균인 2.37%에는 못 미치지만 절대 금액이 4427억달러로 미국의 4837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이다. 겉으로만 보면 화려한 수치이다. 그런데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중국의 현 단계 기술 수준을 분석하면서 '기술의 질적인 문제'와 '높은 해외 의존성' 그리고 '취약한 사회구조'라는 세 가지 요인에 주목하고 있다.

기술의 질적인 문제는 중국이 아직 글로벌 기술 선도국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2010년 이후 중국 정부가 특허 출원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자 중국 기업들은 앞다투어 원천 기술이 아닌 기존 기술의 프로세스 혹은 디자인의 변경 등 상업적 활용을 중심으로 특허 수 늘리기에 나섰다. 양질의 특허로 분류되는 삼극특허(미국·EU·일본 등록 특허) 출원 건수의 경우 중국은 2016년 세계 전체의 6.9%에 불과했다. 일본의 31.0%, 미국의 25.4%보다 매우 낮은 수치이다.

그 결과, 중국 기업의 해외 기술 의존성 또한 높다. 2008년에서 2017년 사이에 중국이 외국에 지급한 지식재산권 사용료는 1650억달러인 반면, 중국이 해외에 판 지식재산권은 122억달러에 불과하다. 이 중 48억달러가 2017년에 발생했는데, 같은 해 미국은 중국의 27배에 달하는 1284억달러, 일본은 417억달러어치의 지식재산권을 해외에 팔았다.

기술 혁신 억압하는 사회구조도 문제

기술 혁신을 억압하는 중국의 사회적 구조도 문제다. 베이징과 상하이, 항저우에는 기업 가치 10억달러가 넘는 유니콘 기업의 75%가 입지해 있다. 하지만 근로자들은 '996' 문화, 즉 오전 9시에서 저녁 9시까지 주 6일 근무라는 열악한 작업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혁신적 아이디어의 창출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이다. 정부가 보조금을 통해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니 조직 문화나 고용 구조, 제도적 인프라 또한 취약하다.

중국 정부는 첨단 기술 개발의 또 다른 채널로 해외 기업의 인수·합병과 선진 외국 기업과의 합작 투자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미국이 투자 심사를 강화함에 따라 올해 중국의 대미 해외 직접 투자는 전무한 상태이다. 합작 투자도 미국과 EU가 강제 기술 이전의 금지를 강력하게 요구해 중국 기업의 기술 축적이 용이하지 않다.

이처럼 수많은 기술 기업에 발권력과 구매력까지 갖춘 미국이 중국의 거대 기업에 치명타를 날리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중국 지도부로서는 정치적 손상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중국이 아파하는 티베트, 신장, 위구르 소수민족이나 3억 농민공의 인권 문제, '하나의 중국 정책'에다 영유권 문제까지 건드리며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할 것이 뻔하다. 그리고 트럼프가 마침내 중국에서 받아낸 항복 문서를 트위터에서 흔들며 자랑하는 시점은 미국 대선 캠페인이 절정에 이를 내년 가을이 유력하다.

시 주석이 이끄는 중국 정부는 2015년 5월 '중국제조 2025 플랜'을 발표하면서 2035년까지 일본과 독일을 추월하고 2045년까지 미국을 추월하여 세계 최고의 기술 국가로 우뚝 서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기술 시장을 선도할 능력과 인프라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이라는 패권 국가를 자극한 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보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미래 역사책에는 중국의 기술 굴기 프로젝트가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치명적인 전략적 실수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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