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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오는 삼각파도… 리더들이여, 겁먹지 말고 키를 움켜쥐어라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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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7.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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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나… 글로벌 장수기업의 교훈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우리나라 기업들에 '위기의 삼각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확산, 미·중 무역 전쟁 등 국제 무역 환경의 불안, 주 52시간 근무제 등 기업 정책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나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단발적인 외부 충격이었다면 지금 우리나라 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좀 더 복합적이고 만성적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문명의 질서가 바뀌는 가운데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 구조적인 문제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보면 늘 위기 속에 기회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 특산품 대신 쌀로 세금을 내도록 한 대동법은 임진왜란이라는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일본 근대화의 시발점인 메이지유신도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의 개항 요구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전환점도 1997년 IMF 경제위기였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혜가 필요할까.

①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라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올바른 대안을 도출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일은 뛰어난 리더에게도 쉽지 않은 난제다. "누구에게나 모든 게 다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밖에는 보지 않는다." 고대 로마제국을 중흥시킨 율리우스 카이사르(B.C.100~B.C.44)의 명언이다.

미국 해군의 제임스 스톡데일(1923~2005) 중령은 베트남 전쟁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하다가 대공포에 피격되어 8년(1965~1973) 동안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그는 수감 중 스무 차례의 고문에도 동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며 결국 살아남았다. 1973년 양국의 포로 교환으로 석방된 스톡데일은 해군 중장으로 퇴역했다. 그는 포로 생활 당시 막연한 낙관주의자가 가장 위험했다고 회고했다.

"불필요하게 상황을 낙관한 사람들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에는 나갈 것이라고 믿다가, 크리스마스가 되니 부활절(4월)이 되기 전에는 석방될 것이라고 하더라. 나중엔 추수감사절(11월) 이전엔 나가리라고 또 믿지만 다시 크리스마스를 맞고 결국 반복되는 상실감에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꼭 살아나가겠다는 믿음을 갖는 것도 좋지만 매일매일 당면한 가혹한 현실을 잊어버려선 안 된다."

이후 사람들은 극한 어려움을 이겨내는 합리적 낙관주의를 '스톡데일 역설'이라고 부른다. 자기 확신이나 믿음도 중요하지만 근거 없는 '정신 승리'는 오히려 위험하다는 뜻이다. 차가운 현실이 닥치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가 닥치면 리더도 불안하다. '잘되겠지' 하는 막연한 낙관론에 기대려는 심리도 생겨난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얄팍한 처세술에 현혹되기도 쉽다. 그러나 리더는 성공한다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눈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지혜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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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다운
②리더가 솔선수범해 정신 다잡으라

리더가 조직을 움직이는 데 돈·무기 등 물질이 필요조건이라면 사기·투지 등 정신은 충분조건이다. 조직이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정신적 가치가 중요해진다. 위기 상황에서 정신이 강한 조직은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고 생존 가능성을 찾아 똘똘 뭉친다. 반면 정신이 약한 조직은 공포에 휩싸여 상호 비방전만 벌이다가 귀중한 골든타임을 흘려보낸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는 이런 정신의 힘은 리더의 신념과 솔선수범에서 출발한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1964년 회사에 위기가 닥쳤다. 당시 일본은 호황이 끝나면서 그동안 잠복해 있던 문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파나소닉도 마찬가지였다. 마쓰시타의 관점에선 불황보다 임직원들의 정신 상태와 태도가 더 큰 문제였다.

전국 대리점 사장들의 모임인 '아타미 간담회'에 참석한 마쓰시타는 현장 직원들의 태도에 실망했다. 대리점 170곳 중 150곳이 적자에 허덕였지만 직원들은 느릿느릿 움직였고 간담회 준비도 부실했다. 이에 마쓰시타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대리점 사장들에게 "여러분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잘못 때문"이라며 사죄했다. 그러고 직접 최전선의 영업본부장직을 맡아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은퇴한 69세의 창업자가 일선 본부장으로 백의종군하겠다고 하자 조직에 다시 긴장감이 돌았다. 고객과 협력업체들도 파나소닉의 부활을 믿기 시작했다. 마쓰시타는 6개월간 영업본부장을 맡아 조직을 개편하고 판매 채널을 확대했다. 이런 체질 개선으로 회사는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마쓰시타는 평소 "호황은 좋다. 그러나 불황은 더 좋다"는 지론을 펼쳤다. 불황이 올 때마다 자신의 기업가 비전을 바탕으로 임직원의 정신을 다잡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기회로 삼았기 때문이다.

③판 바꾸는 혁신으로 기회 만들라

리더의 책무는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환경은 언제나 변화한다. 기술이 발달하고 소비자가 바뀌고 시장도 움직이기 때문이다. 약자의 의무는 창의적 전략이고, 강자의 의무는 겸손한 혁신이다. 약자는 강자에게 맞서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강자의 적은 자기 자신이다. 강자이기에 빠져들기 쉬운 교만·나태함·둔감함 등을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끊어내야 한다.

펩시콜라는 100년 동안 코카콜라를 뒤쫓는 약자였다. 그러나 펩시그룹(펩시코)은 2004년 전체 매출액에서 코카콜라그룹을 처음 앞질렀다. 2005년 12월에는 시가총액(984억달러)에서도 코카콜라(979억달러)를 제쳤다.

펩시그룹의 전략기획 담당 임원인 인드라 누이는 '판을 바꾸는 혁신'으로 콜라 산업이 쪼그라드는 위기를 타개하고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세계 음료 시장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웰빙 바람이 불었다. 그는 탄산음료 시장의 한계를 예측하고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 KFC·피자헛·타코벨을 매각하고, 과일 음료 업체 트로피카나를 인수했다.

기폭제가 된 것은 2001년 '게토레이' 브랜드를 가진 퀘이커오츠 인수였다. 당시 경영난에 빠진 퀘이커오츠에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1등 코카콜라였다. 하지만 코카콜라는 당시 코카콜라 이사였던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인수를 반대하면서 갈팡질팡했다. 펩시가 그 틈을 파고들어 게토레이를 낚아챘다. 이후 펩시는 스포츠 음료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했고 콜라 회사에서 종합 음료 회사로 성장했다.

숙적 코카콜라를 따돌리는 변화를 주도한 인드라 누이는 2006년 최고경영자(CEO)에 올랐고 지난해까지 12년간 장수했다. 인드라 누이는 지금도 미국에서 존경받는 여성 CEO 중 한 명으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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